절기설교2023. 2. 2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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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을 맞이하면서 중세 스콜라 신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안셀무스를 인용하는 것이 유익할 듯합니다. 안셀무스의 대표적인 저서는 <하나님이 왜 인간이 되셨는가?>(Cur Deur Homo?)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질문에 답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곧,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한다는 것이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면, 단순히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한다고, 이제 너희 모두가 구원을 받았다고 선언만 하시면 될 것인데 왜 굳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그 모든 고통을 받아야 했느냐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안셀무스는 꽤 통쾌한 대답을 해줍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자신이 지고 있는 죄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숙고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모든 고통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우리의 죄가 너무도 심각하여, 하나님께서 그저 너희의 죄를 용서한다고 선언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안셀무스의 표현대로 우리가 지고 있는 죄의 짐이 크고 무거웠던 만큼 예수님은 그토록 모진 십자가를 지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성도들은 나의 모든 죄악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용서를 받았다는 감격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십자가의 은혜는 자신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크고 무거인지 진지하게 숙고해보지 못한 사람, 그래서 하나님이 언제라도 가볍게 너희의 죄를 용서한다 선언하면 모두 끝나는 일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 깊이를 충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사순절의 첫번째 주일을 맞이하며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첫 번째 단계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죄악을 깊이 되돌아보는 일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지 살펴보는 일이지요. 바로 그때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은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의 깊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죄 용서의 복

본문 시편 32편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시편입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 시편을 인용하기 때문이지요.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본문을 인용하였던 이유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을 자격이 전혀 없지만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신 그 복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어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2절) 

다윗이 노래하는 신앙의 참된 축복이 무엇입니까?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를 용서받는 것, 나는 하나님 앞에 수많은 죄악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신앙의 참된 축복입니다. 

다윗은 구약시대의 인물인데, 구약 시대에도 사람들이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는 길이 있었을까요? 구약의 율법에 따라 범죄한 모든 인간은 용서가 아니라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네,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의 율법도 죄를 저지른 인간이 하나님께 용서받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예를 들어, 가축을 끌고 와 그 머리에 안수하고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를 위한 속죄가 되게 하셨습니다(cf. 레 1:4). 신약 성경으로 넘어오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드려 우리 모든 성도들의 죄악을 모두 씻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죄 용서의 방법에 있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조금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구약 성경도 그리고 신약성경도 한결같이 강조하는 바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은 바로 우리의 죄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죄용서의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떠한 복을 받으셨습니까? 마음의 평안, 가정의 화목, 교우들과의 교제, 물질의 축복 등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축복을 받았지요.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한가지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리는 최고의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하나님께 용서받는 죄 사함의 축복입니다. 


입을 열지 아니할 때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죄 용서의 축복을 노래하는데, 자신의 경험을 통해 죄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선포합니다. 본문 3절부터 이제 다윗 자신의 경험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3절) 

여기에서 입을 열지 아니했다는 표현은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께 토설하며 회개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큰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죄의식이 그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백하지도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다윗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하루 종일 신음하였고 뼈가 쇠할 정도로 몸과 마음과 영혼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다윗이 지금 묘사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크게 죄를 범하였지요. 곧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한 사건입니다. 죄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번의 잘못이 지나간 사건으로 사라지지 않고 씨앗이 되어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맺게 되었습니다. 곧, 시간이 조금 흐르자 밧세바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들립니다.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는 오랫동안 전쟁터에 나가있었습니다. 그러니 밧세바가 임신한 아이는 당연히 다윗 자신의 아이였지요. 그런데 다윗은 오늘 본문 3절의 표현 그대로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윗은 명령을 내려 전쟁터에 있던 우리아를 왕궁으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이것저것 전쟁에 대해 질문하는 듯하더니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우리아에게 집에서 쉴 수 있도록 하룻밤 휴가를 줍니다. 다윗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밧세바가 임신한 아이는 분명히 다윗 자신의 아이입니다. 그런데 우리아에게 휴가를 주면서 그 아이를 다윗 자신의 아이가 아닌 우리아의 아이로 바꾸려는 시도였지요. 그런데 우리아는 그날 밤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다윗의 시도가 이렇게 실패합니다. 그때 다윗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본문 3절 그대로이지요.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3절) 

자신의 죄를 숨기려는 다윗의 첫번째 시도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전히 입을 열어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두 번째 시도를 하게 되지요.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명령하여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입니다. 그렇게 밧세바는 사별하였고 다윗은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이렇게 행동한 다윗의 의도는 또 무엇이었을까요?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마치 다윗과 밧세바의 합법적인 결혼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인 것처럼 꾸미려는 노력이었습니다. 

다윗의 두번째 계획은 성공하는 듯 보였습니다. 왕이라는 자신의 신분과 권력을 이용하여 우리아를 처리하고 그의 아내였던 밧세바와 합법적인 혼인관계를 맺었으니, 이제는 그 누구도 이스라엘의 절대 권력자인 다윗 왕을 공개적으로 비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다윗의 죄악은 감추어지는 듯했지요.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감출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도 숨길 수가 없잖아요. 다윗이 큰 죄악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다윗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감히 나아가지 못합니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4절) 

다윗은 하나님의 손이 주야로 자신을 짓누르고 계신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때 다윗의 영적인 상태는 한 마디로 무엇이었습니까? 메마름입니다(4절). 나의 죄악을 말하지 않고 깊이 숨겨두면 사람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결코 감출 수 없으니 우리의 영혼은 메마름, 곧 영적 기근과 영적 고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영적인 침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어요.  몸에 큰 질병이 찾아온다거나, 삶의 환경이 급격히 변해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거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 침체를 겪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에게 큰 죄악이 있다면 우리의 영혼은 순식간에 바싹 메말라 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그때 우리가 취해야 할 바른 자세는 나의 죄를 숨기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 회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은 피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숨길 수 없기에 회개하지 않고는 우리의 영혼이 되살아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복할 때

다윗이 자신의 죄악을 숨기려 할 때 그의 영혼을 메말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죠. 선지자 나단을 보내셔서 그의 죄악을 드러내어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악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었을 다윗은 얼마나 큰 수치와 모욕을 느꼈을까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사람들 앞에서 수치와 모욕을 받더라도 회개할 수 있다면 바로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5절) 

다윗이 자신의 모든 허물을 하나님께 다 자복하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다윗이 회개하지 않을 때, 그리하여 죄악이 그의 마음에 가득할 때는 하나님의 손이 주야로 그를 짓누르는 듯했습니다. 다윗이 회개하지 않을 때, 그리하여 죄악이 그의 마음에 가득할 때는 그의 뼈가 쇠하고 그의 진액이 다 빠져나가서 그의 영혼이 바싹 메말라 버렸습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회개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시고 그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6a절) 

이 구절에서 “주를 만날 기회”라는 번역에 미주가 되어 있지요. 미주를 보면 이 구절을 어떻게 번역할 수 있다고 나와있습니까? “죄를 깨달을 때에 주께 기도할지라” 죄를 깨달았을 때에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할까요? 당연히 회개의 기도지요. 다윗은 계속해서 회개가 가져오는 놀라운 변화와 축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6절)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거대한 홍수를 마주치는 경우가 너무도 많지요. 그런데 나의 죄악을 하나님께 모두 회개하고, 그리하여 하나님께 나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홍수를 만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홍수가 그 사람을 삼키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과 막혔던 모든 담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홍수가 와도 두렵지 않고 홍수가 그 사람을 쓰러트리지 못합니다. 이것이 죄 용서를 받은 사람의 특권이지요.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7절) 

아니, 앞에서는 하나님의 손이 자신을 짓눌러서 뼈가 쇠하고 진액이 빠져 몸과 마음이 완전히 메말라 버렸다면서요.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나의 은신처가 되어 모든 환난에서 자신을 보호하신다고 노래하네요. 그 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지요? 딱 한 가지가 변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막혔던 모든 담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 되니 이제는 환난이 찾아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의 축복을 받은 사람의 고백입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죄 용서의 축복입니다.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며 동행합니다. 인생의 수많은 환란이 찾아오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 그 모든 것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 용서의 축복을 얻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회개라는 과정을 지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시작된 사순절 기간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회개하십시오. 우리의 회개가 깊어질수록 사순절을 보내며 누리는 십자가의 은혜는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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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