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2024. 2. 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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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 교단과 우리 교회의 표어는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입니다. 이 표어에는 치유와 회복이라는 중요한 주제가 담겨 있지요.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고 위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명이라는 주제도 담겨 있습니다. 

지금은 기독교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은 헨리 나우웬의 저서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의 주제가 바로 치유와 회복, 그리고 사명입니다. 이 책에서 헨리 나우웬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의 정체성으로 책의 제목인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를 제시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사역자는 치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온몸과 마음이 튼튼하여 상처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사람도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사명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고 다른 사람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온몸이 상처로 가득하여 그 자신이 날마다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헨리 나우웬이 서술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하나의 고정관념을 수정해줍니다. 그 고정관념이 무엇일까요? 지금 나를 아프게 하는 그 상처가 모두 치유되어야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먼저 나의 질병이 치유되어야, 그 이후에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다는 착각이지요. 나는 여전히 몸이 병약하고 마음에도 큰 상처가 남아 있기에 아직은 다른 사람을 아픔을 보듬는 치유자가 될 수 없다는 자기변명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몸이 여전히 병들어 아프다 하더라도, 아니 나의 몸과 마음이 병들어 큰 아픔을 겪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는 것이요, 나아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참된 치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안식일 사역 

오늘 본문을 포함하여 마가복음 1장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하루의 사역, 보다 구체적으로 어느 안식일 하루에 행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해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1절부터 안식일에 행하신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됩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1) 

아마도 안식일의 오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위있는 새 교훈에 깜짝 놀라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그 회당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시며 “나오라” 명령하시니 그 즉시 귀신이 쫓겨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바라보며 회당에 있었던 가버나움 사람들이 다시 한번 예수님의 능력과 권위에 대해 깜짝 놀라게 되지요. 

같은 날이었습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던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회당에서 나와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서도 제자들에게 천국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을 가르치셨지요. 그런데 그 집에도 병자가 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었지요. 예수님께서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시자 그토록 심했던 열병이 그 즉시 나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등 섬길 수가 있었습니다. 

같은 날 일어난 이 두 가지 사건은 몇 가지 측면에서 서로 대조를 이룹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귀신을 내어 쫓아주셨던 사람은 남자였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서 고쳐주신 사람은 여자였지요.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고쳐주셨던 사람은 귀신이 들렸습니다. 곧 그의 마음과 그의 영혼에 큰 상처가 있었습니다. 반면,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고쳐주셨던 시몬의 장모는 열병, 곧 몸에 발생한 질병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 쫓으신 장소는 회당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공공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신 장소는 그의 개인 집으로 사적인 공간이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같은 날에 행하신 두 사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두 사건의 중요한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남자든 여자든 구별 없이, 귀신이 들려 마음과 영혼에 큰 괴로움을 겪는 사람이든 몸에 병이 들어 아파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회당이라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공적 장소는 물론이요 안식일에도 회당을 찾아가지 못한 채 여전히 병상에 누워있는 개인의 가정집에서도. 예수님은 모든 질병과 모든 아픔을 치유하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귀신들린 사람도 고쳐주시고, 같은 날 시몬의 장모도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루의 해가 저물자, 가버나움에 있는 모든 병자와 모든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오늘 본문 32절입니다.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모든)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2절) 

이 구절에서 “모든 병자와 모든 귀신 들린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오네요. 어떤 질병이든 누구의 아픔이든 상관없이 가버나움의 모든 병자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본문 34절입니다.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34a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치유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육신의 질병으로 괴로워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히 치유하여 주십니다. 우리 가운데 마음과 영혼에 큰 상처와 아픔이 있어 괴로워하는 분들이 계신가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우리의 모든 약함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지금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들만이 아니라, 주일이 되었음에도 몸이 너무도 아파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예배할 수밖에 없는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하는 능력은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어제의 치유와 오늘의 사명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이하여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그곳에서 귀신을 쫓아내셨지요. 이후 시몬의 집에 들어가서 또다시 병자를 치유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게 저녁이 되었는데, 가버나움 동네의 모든 병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은 그들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그렇게 안식일 하루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병자를 치유하시며 말씀을 가르치시는 사역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입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5절) 

예수님께서 새벽부터 기도하시네요.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이른 새벽부터 기도하시는 모습을 목격하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7절)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 곧 지금 예수님을 찾고 있는 그 “모든 사람”은 어제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치유를 경험했던 가버나움 동네의 모든 사람입니다. 그들이 지금 또다시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제와 같이 오늘도” 말씀을 전해주시고 그들의 몸과 마음의 질병도 돌보아 달라는 요청이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을 단번에 거절하십니다. 본문 3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8절)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전도”라는 단어가 우리의 시선을 이끕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다”거나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라고 표현하지 전도하셨다고는 잘 표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신약성경에서 전도라는 단어는 제자들 혹은 이후 사도들이 예수님을 전하는 활동을 묘사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전도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말씀하시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자들을 전도의 여정에 초대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38절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시지요. “그곳에서도 전도하자” 지금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말씀하십니까? 제자들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에게 무엇을 권하시죠? 다른 마을로 가서 그곳에서도 전도하자고 초청하십니다. 안식일이었던 “어제는” 제자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경험시켜 주셨습니다. 안식일이었던 “어제는”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치유와 회복의 사건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다른 마을로 가서 그곳에서 전도하자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명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설교를 시작하며 언급한 헨리 나우웬의 책 <상처 입은 치유자>에는 하나님께 사명을 받아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는 참된 사역자의 모습을 매우 인상적으로 비유로 묘사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잠이 인용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한꺼번에 다 풀었다가 
다시 한꺼번에 싸매지만, 
[참된 치유자는] 자신의 상처를 한 번에 한 군데씩 풀었다가 
다시 싸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하게 될 거야. 
그때 잠시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나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해”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가 가장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나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상처를 한 번에 다 풀어놓고 “하나님 나의 상처를 완벽하게 치유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우리를 치유해주셔서 우리의 아픔과 상처가 하나도 남지 않도록 완벽하게 치유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명자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나의 상처를 한 번에 한 곳만 풀어서 치료합니다. 그런데 아직 나의 몸에서 많은 상처가 남아있거든요. 그러나 어제 예수님께서 나의 상처 한 곳을 치료해 주었으니, 오늘은 주님과 함께 사명의 자리를 향해 떠날 수 있도록 자신의 남은 상처를 모두 싸매어 두는 사람이지요.

자신의 장모님이 예수님에게 치유를 받은 베드로를 비롯하여, 모든 제자들과 모든 가버나움 사람들이 예수님께 기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제” 우리를 치유해 주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돌보아 달하는 요청입니다. “어제” 권위 있는 새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로운 말씀을 또다시 들려달라는 요청입니다. 헨리 나우웬의 비유를 인용하면, 그들은 자신의 모든 상처를 다 풀어놓고 그 모든 아픔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치유해 주셔야 주님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서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제안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제 이미 치유를 경험하지 않았느냐고, 어제 이미 권위 있는 새 교훈을 듣지 않았느냐고, 언제까지 나에게는 더 큰 은혜와 더 큰 치유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전도의 자리 사명의 자리를 외면하겠느냐고. 여전히 상처가 남아있지만, 이미 하나님의 치유하는 손길을 경험하였으니 그 정도는 다시 싸매어두고 나와 함께 사명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자는 제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기 시작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채찍에 맞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는 성경의 말씀을 정말 믿으시나요? 여러분은 모든 아픔과 모든 질병을 치유하시는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질병과 아픔도 치유하여 주실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의 남은 상처를 이제는 싸매고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와 회복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전도자가 되십니다.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괴롭지만, 어제의 은혜를 오늘도 요청하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마시고, 어제의 은혜를 받았으니 오늘은 주님과 함께 새로운 사명을 위해 전진하십시오. 바로 그것이 여러분에게 치유와 회복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교회는 매월 첫번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성만찬을 거행합니다. 성만찬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위대한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는 시간이지요. 나아가 성만찬은 지금도 우리에게 하늘의 풍성한 양식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또한 성만찬은 온갖 질병과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던 우리를 온전히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예식입니다. 이처럼 성만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돌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만찬에는 나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넘어, 이제는 내가 받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는 ‘전도’의 의미 곧 사명의 의미도 담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나요? 성만찬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고린도전서 11장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 11:26) 

오늘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에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하늘의 식탁인 성만찬에 참여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은혜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주일을 맞이한 “오늘” 우리 모두가 치유의 은혜를 누리고, “내일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위해 힘차게 달려 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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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