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2016. 2. 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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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무엇을 생각합니까?

 

과거의 일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과거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2:12)

 

바울은 11절과 12절에서 우리의 과거 상황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때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 13절에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합니다. 바로 ‘이제는’입니다. ‘그때는’ 이방인이요, 외인이요,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19)

 

 

출애굽기의 구조

 

구약 출애굽기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구조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먼저 야곱이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애집트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언급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물론이요, 그의 아들인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모두 죽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애굽을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왕은 애굽에 거주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이라는 이방 땅에서 완전히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종이 되었습니다. 학대받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출애굽기 1장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인 40장이 어떻게 끝나는지 기억하시나요? 출애굽기 4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만나는 장소인 회막 만드는 일을 완성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회막 제작을 완성했다는 기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회막 제작이 마치니,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그 성막 안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40장의 마지막절인 38절은 이렇게 끝이납니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만든 성막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회막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서 이스라엘은 애굽 땅의 이방인이었지요. 노예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었지요. 희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가 마치는 40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모든 백성의 눈앞에 활짝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러므로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말의 원래 의미는 ‘기억하다’에 가깝습니다. 여러분이 지나온 지금까지의 삶을 기억해보십시오. 출애굽기 안에 다양한 사건과 사고가 많이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도 슬픔과 기쁨이 마구 혼재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과거에 우리가 이방인이요, 외인이요, 하나님도 소망도 없이 살아가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날마다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한 식구로 변화시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손길도 이와 동일하다고 확신합니다. 비록 과거에 출애굽기 1장과 같은 모습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손길과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바라보는 현실은 출애굽기 1장이고, 최근 며칠, 몇 주에 일어난 상황은 출애굽기 1장의 장면일 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넓은 손길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지금도 출애굽기 40장으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의 화해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 때에 이방인이요, 외인이요, 하나님도 소망도 없이 살던 우리를 지금은 하나님의 시민, 하나님의 한 식구라고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과거의 삶, 곧 ‘그때에’의 삶과 ‘이제는’의 삶은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그 차이점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화해’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2:13)

 

멀리 있던 두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여기에서 멀리 있던 두 대상, 곧 화해하지 못하고 서로 나뉘고 다투던 두 대상은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이렇게 구별되어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 되셔서 둘로 하나를 만드시고, 중간에 막힌 담을 자신의 몸으로 헐어버리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상황, 곧 출애굽기 1장의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도요, 거룩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한 식구가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물론, 우리가 과거의 죄악으로부터 깨끗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우리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세상의 풍속을 쫓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 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지금의 상태로 옮겨왔다는 그 사실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뛰어 넘습니다. 무엇입니까? 내가 그 전에 다투고, 시기하고, 분열하고, 싸우던 대상과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입니다.

 

 

화해의 근거 - 예수 그리스도

 

사도 바울은 과거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었던 지독한 분열과 다툼과 미움의 막힌 담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으로 허무셨다고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자신의 몸으로 허무시고, 그들이 화평하도록 하셨습니까?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16-18)

 

예수 그리스도께 오셔서 첫째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곧 이방인이었던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곧 유대인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전하다’라고 번역된 단어의 원래적 의미는 좋은 소식, 혹은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원문 헬라어 단어에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가 분명히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의미를 살려 표현하면 ‘평안의 복음을 전하셨다’는 말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이었던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도 평안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도 동일한 평안의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먼 데 있었던 이방인들과 가까운 데 있었던 유대인들이 한 성령 안에서 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교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고 희망도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애굽의 종노릇하고 있던 출애굽기 1장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그러니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다듬어질수록 점차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교회 안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노예든 자유인이든 구별이 없이 하나님 안에서 화해하고 평화합니다. 과거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서로 싸우고 대적하고 미워하고 시기하였지만 그 모든 막힌 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허물어지는 바로 그 현장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선언하지요.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3:28)

 

그 하나 되는 장소, 그 현장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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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