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강해2018. 1. 2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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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8장으로 넘어오면서 바울은 새로운 주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음식에 대한 문제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8장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이라고 시작합니다. 지금 바울의 편지를 받아보고 있는 성도들이 살았던 지역, 곧 고린도에서는 시장에 나온 거의 모든 고기가 이방 신전에서 제물로 바쳐졌던 제물이라고 생각하면 별로 틀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가축을 잡으면 먼저 자신들이 섬기는 이방 신들의 제단에 그 고기를 올렸고, 그 뒤에 고기를 먹기도 하고 시장에 내다 팔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린도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시장에서 고기를 사 먹는 것은 그나마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더 큰 문제는 10절에 등장합니다.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당시 고린도에 있었던 이방 신전들은 정기적으로 마을 잔치를 열었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지요. 대부분의 사회생활이 신전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당시 고린도에서는 신전에서 가축을 잡아 신전에서 이방의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그 고기로 동네 잔치를 열었던 것이지요. 실제로 아스클레피온이라는 신전을 조사해보면 신전 안에 식당이 있었고, 그 식당은 공동으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지역 주민에게 고기를 제공하였던 것이지요.[1] 쉽게 말해 오늘날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식당에서 무료 식사를 나눠주는 형태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정기적으로 고기를 섭취하고 싶으신 분들이 우상의 신전에서 베푸는 식사 초대에 참여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들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그들의 구호가 등장합니다. 여러분 혹시 기억하시나요? 고린도전서 6장에서 음행을 행하는 사람들의 표어가 등장했지요? “모든 것이 가하다고린도전서 7장에서는 부부관계를 멀리하는 사람들의 표어가 등장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이제 고린도전서 8장에는 우상의 신전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식사를 하였던 사람들의 표어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1b)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지식이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지식의 내용이 4절에 등장하는데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4)

 

여러분이 산에 가셨다가 점심 식사 때가 되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여러분의 눈에 산 속에 있는 사찰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곳에 들어갔더니 점심을 주는 거에요. 여러분이 사찰에서 한 끼 식사를 든다고 여러분의 믿음이 흔들릴까요? 여러분이 절에서 점심 한끼 드셨다고 우상숭배에 동참하는 건가요? 아니죠.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지식이 바로 그런 겁니다. 세상에 많은 신들이 있지만 많은 우상들이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분명한 지식이 있습니다. 온 땅에 참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온 땅에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구세주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없어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주장, 곧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교회에 지식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1b)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 지식이 한 사람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풍성하게 하고 열매 맺게 합니다. 신앙생활에 유익을 주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정기적으로 우상의 제단에서 제공하는 만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변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교우들을 향한 사랑이지요. 그들의 행동은 지식의 차원에서는 비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의 행동을 사랑이라는 측면에서는 비판합니다.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9-11)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힘은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 신학적인 지식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에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하는 비결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11절의 표현과 같이 지금 내 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마음, 곧 십자가를 통하여 교우들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의 마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교회의 귀한 지체요 일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새벽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에 지식을 넣어주시기 보다는 우리의 마음에 사랑을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우리가 사랑의 마음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성도들을 바라보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의 연수가 늘어날수록 지식이 증가하여 교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연수가 늘어날수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마음이 풍성하여져서 우리가 속한 가정과 교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우상 신전의 식사 초대에 대해서는 최승락, “고전 8~9: 그리스도인 권리의 올바른 사용”, <고린도전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145-146을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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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