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설교2020. 5. 1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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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선지자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예언서를 천천히 읽어보면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에게로, 선지자에게서 백성들에게로 일방통행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선지자들도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며 기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인공인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받은 선지자가 분명한데 하박국서 전체를 잃어보면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하신 말씀보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이 더욱 많습니다. 하박국은 마음속에 있는 답답함,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으로 해답을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처한 상황과 상관 없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바로 그 상황에 꼭 필요한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바로 그 말씀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고, 힘이 있고, 우리의 믿음을 성숙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신학생 한 명이 어느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나의 신앙에 도움이 됩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나의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신학을 공부하면 나의 신앙에 엄청난 유익이 됩니다.” 저는 이 목사님의 대답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내용을 공부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머리에 쌓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이 나의 삶과 유리되어 있다면 그 지식은 비록 성경에 대한 지식이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라 할지라도 나의 신앙에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유익은 나의 간절한 기도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든 상관없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처해있는 바로 그 상황에 꼭 필요한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릴 것입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능력이 되고,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여러분의 믿음을 더욱더 확고한 반석 위에 세워놓게 될 것입니다. 


비록 더딜 지라도 기다리라 

하박국서는 하박국이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듯 질문하는 기도로 시작됩니다. 하박국 1장 2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박국이 아무리 기도하여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하박국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였던 내용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시면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죄악이 가득한 모습, 패역이 가득한 모습이 하박국의 눈 앞에 펼쳐지는 바로 그 상황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나타나도록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죄악이 난무하고, 패역이 가득한 현실이었습니다. 

하박국이 말하는 죄악이 가득하고 패역이 난무한 현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한 의견들 가운데 우리가 참고할 만한 것, 하나를 소개한다면 하박국 선지자가 ‘요시야 왕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요시야 왕은 남북 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선한 왕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요시야 시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보수하였는데, 성전 관리를 맡은 사람들이 성전 안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요시야 왕에게 가져오죠. 요시야 왕은 율법책의 내용을 듣고는 옷을 찢으며 깊이 회개합니다. 그리고 율법책에 근거하여 당시의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고 남 유다 전체의 영적인 개혁운동을 펼쳤던 사람이 바로 요시야입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은 요시야 왕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합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그런데 여러분, 이토록 우상숭배를 비롯한 죄악으로 달려가는 남 유다를 율법책에 근거하여 개혁하려했던 요시야 왕의 최후를 기억하시나요? 애굽의 바로 느고라는 왕이 앗수르 제국을 공격하기 위하여 팔레스타인 땅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때 요시야 왕은 애굽 편에든, 앗수르 편에든 가담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요시야는 애굽이 아닌 앗수르를 선택하여 애굽 군대와 맞서 싸웠습니다. 므깃도 전투로 알려진 이 싸움에서 요시야는 전사하고 맙니다. 의로운 왕, 율법에 따라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이켰던 왕, 바로 그 요시야 왕은 전쟁터에서 죽고 말지요. 그런데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요시야를 이어 남 유다를 다스렸던 여호와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그리고 남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통치 하에서 요시야 왕이 추구했던 그 위대한 개혁의 운동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춰버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을 배반하고, 율법을 저버리며, 죄악을 저지르는 왕 중에는 오랫동안 장수하며 호의호식하고, 그 기간에 나라는 더욱 우상숭배와 죄악에 빠지는데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국가를 새롭게 세우기 위하여 노력했던 요시야 왕은 39세의 나이에 전쟁터에서 어의 없이 죽음을 맞이하더라는 거죠.  39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지라도 요시야 왕의 개혁 운동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 모든 백성들이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요시야 왕이 죽자, 여호와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그리고 시드기야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오는 왕이 없어요. 이 장면을 놓고 하박국은 슬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에 대답하십니다. 유다 땅에 존재하는 모든 죄악을 하나님께서 익히 보고 계시며, 그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갈대아인들, 곧 바벨론 제국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하박국이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마음으로 ‘아멘’하였나요? 아닙니다. ‘아멘’이 안 나와요. 오히려 하박국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유대 민족을 심판하시면서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조금도 섬기지 않는 바벨론 사람들을 들어 사용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박국 선지자의 두 번째 질문에 하나님은 또다시 대답하십니다. 결국 때가 되면 바벨론 제국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하박국 2장 3-4절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은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지금 당장은 부당하고 불의가 공의를 압도하는 것 같을 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는 분명히 존재하며, 하나님의 스케줄에 따라서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펼쳐나가고 계시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뭡니까? 바로 그 다음에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하나님은 속히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세요. 그러나 조급한 인간의 마음에는 더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바로 그때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4절에는 매우 유명한 말씀이 등장하죠.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 하박국이 하나님과 기도하면서 깨달은 진리가 무엇인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악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섭리는 알고 있어요. 이미 역사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라면 왜 그토록 의로웠던 요시야 왕은 젊은 나이에 전사해야 하고, 요시야의 개혁운동은 왜 그토록 빨리 시들어야 했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하박국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면 비록 지금 당장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기다려야 한다는 거죠.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면 비록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현실에서조차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듣는 설교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거죠.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세계의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우리 삶의 생사화복 역시 하나님의 손 위에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 노력해도 때로는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지를 않아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으로 이끌어 가시리라는 믿음이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하여 세계 열방에 복음을 전파하실 위대한 비전을 품고 계시다고 확신하지만, 과연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있다니까요. 바로 그때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를 여전히 붙잡고 계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에서 듣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죄악과 패역이 가득할 지라도 참고 인내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크리스천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쁨과 찬양의 기도 

하박국은 현실 속에서 의로운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지 않자 하나님께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 가운데 하박국은 하나님의 귀중한 음성을 들었지요. 비록 마음이 조급한 인간의 눈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지 않을 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공의로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마음에 확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오늘의 본문, 하박국의 기도는 기쁨과 찬양의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 하박국 3장 2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은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여기서 부흥이란 유다 민족이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는 것을 말하죠. 하박국은 유다 땅에 죄악과 패역이 가득한 문제를 안고 하나님께 나아갔잖아요. 여전히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아직 유다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된 것이 아닙니다. 아직 하나님의 섭리가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박국은 여전히 기도하고 있어요. 그런데, 하박국의 기도는 이제 바뀌었습니다. 오늘 본문 하박국 3장 3절입니다.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하박국은 3절부터 창조주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절 뒷부분을 보시면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기도는 오늘 본문 16절까지 계속됩니다. 하박국이 처해있는 현실은 여전히 죄악과 패역이 가득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가 눈에 보이지 않고, 여전히 부흥을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 하박국은 기도 가운데 바로 그 순간에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집중하고 나니, 17절 이후부터 시작되는 위대한 믿음의 고백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여러분,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러분의 삶을 붙잡고 계신지 알 수가 없으세요? 
여러분,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가정을 붙잡고 계신지 알 수가 없으세요? 
여러분,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자녀의 삶을 붙잡고 계신지 알 수가 없으세요? 

만일 그렇다면, 하박국과 같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시각이 바뀝니다. 현실은 지금 당장 바뀌지 않아요, 현실은 지금 당장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순간이라 할지라도,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기도 가운데 지금도 나의 삶을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현실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 역시 하박국과 같이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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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