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2021. 3. 14. 17:34

오늘 설교의 주제는 ‘거듭남’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죠.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의 ‘거듭남’은 너무도 중요해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거듭남의 중요성을 힘주어 강조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3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가 진리이고 예수님께서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예수님께서 특별히 강조하시네요. “진실로 진실로” 얼마나 중요한 내용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강조하겠습니까? 그러면서 말씀하시죠. “사람이”(누구든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조차 없느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거듭남’이 신앙생활의 부수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인 것이어서 거듭나지 않으면 신앙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1900년대 중반까지도 서유럽이나 북미의 나라들은 기독교 국가로 불릴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성탄절이나 부활절이 되면 교회를 출석하고, 결혼식과 장례식 등 인생의 중요한 모든 의식을 교회에서 진행하였지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과 이러한 대답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지요. 기독교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기독교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기는 하였지만 그 사람이 마음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지, 삶의 모든 과정 속에서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참된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는지는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참으로 그리스도인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는 질문에 한 가지 표현을 덧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거듭남이라는 표현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입이까?”(Are You a Re-born Christian?) 

매주 교회를 출석하며 예배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의 종교는 당연히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나 오늘 설교의 주제인 ‘거듭남’은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던집니다. 단지 교회의 성도 명부에 여러분의 이름이 등록되어 있는 것 말고, 단지 일주일에 한번 교회 예배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 말고, 단지 예배시간에 눈을 감고 기도하거나 조그마한 목소리로 찬송가를 따라 부르는 것 말고 여러분은 참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받았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있습니까? 한 마디로, 여러분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십니까? 


거듭남의 첫단계 _ 회개

거듭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중요한 주제가 많지만, 오늘은 거듭남의 세 가지 단계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먼저, 거듭남의 첫 번째 단계로 회개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죠. 한자말로 표현하면 중생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거듭남, 중생 혹은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면 모두 동의어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듭남을 건물로 비유하면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지속하려면, 아니 우리가 제대로 신앙생활을 시작이라도 하려면 나 자신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리모델링으로는 안 됩니다. 나의 삶이 처음부터 다시 태어나는 재건축, 곧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이 필요해요. 우리가 함께 읽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곧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나에게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으니 그러한 단점을 고치다 보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잘하는 점도 많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으니 그 부족한 것을 개선하면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해요. 처음부터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이 없이, 그저 일부분만 수정해서는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첫 번째 단계는 내가 하나님 앞에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의 절망적인 상태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회개로부터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회개를 이야기하면,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나, 왜 자꾸 나에게 회개하라고 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른다든지 강도짓을 한다든지 하는 그러한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모든 행위가 당연히 큰 죄악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이웃을 사랑하라거나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행하지 않는 것도 모두 죄가 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입술로 다른 사람에게 악독한 말을 하거나 거짓을 말하는 것도 다 죄입니다. 말과 행동으로 직접 행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마음에 악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교만한 마음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큰 죄가 됩니다. 그 무엇보다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큰 죄악이 무엇입니까? 피조물인 인간이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모든 것이 큰 죄악이지요. 이것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인간의 죄악된 모습이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르는 수많은 죄를 인식조차 못하고 지나가죠.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임하시면 나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죄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나의 행실의 일부분을 고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처음부터 구제불능이니 아예 다시 태어나야 하는구나, 거듭남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조차 없구나, 중생의 은혜가 없이는 나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구나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회개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지금까지 그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진심어린 회개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면,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그래도 내가 이 정도면 신앙생활도 잘해왔고 사람들에게 특별히 손가락질당할 일도 하지 않았으니 나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거듭남의 첫 번째 단계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거듭남의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런 소망도 없는 큰 죄인이라는 분명한 깨달음이요, 그로 말미암은 진실된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나 자신의 죄를 깨닫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내가 죄인이며, 내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간절히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는 사람에게 거듭남의 두 번째 단계가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두번째 단계 _ 믿음

거듭남의 첫번째 단계로 회개를 말씀드렸지요. 자, 거듭남의 두 번째 단계는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등장하지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이 구절이 유명한 이유는 이 하나의 구절 안에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어디까지 사랑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시기까지 우리 모두를 사랑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주셨다”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매우 특별한 단어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누가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을까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로마의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모든 책임이 직접 그 행위를 한 로마의 군인들에게 있을까요? 그 모든 책임과 잘못을 예수님의 손과 발에 직접 못을 박은 군인들에게 돌리는 것은 적절한 평가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군인들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당시 유대지방의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넘겨주었지요. 성경은 이 장면을 묘사할 때 “넘겨주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헬라어로 ‘파라디도미’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빌라도와 그의 명령을 따른 로마의 군인들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올바른 평가인가요? 결코 아닙니다.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미움의 감정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잖아요. 어디 그뿐인가요? 대제사장들을 비롯하여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찾고 있을 때,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주겠다고 제안한 사람도 있었지요?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인 가룟 유다였습니다. 

신약성경이 강조하는 ‘넘겨주다’는 단어를 추적하다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유대인들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로마의 군인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준 빌라도, 예수님을 향한 시기와 미움이 가득하여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대제사장들과 유대교 지도자들, 예수님을 수년간 따라다녔지만 주님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은 삼십에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었던 가룟 유다가 그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우리가 묵상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예수님을 넘겨준 또 한 분이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장면을 깊이 묵상하였던 어느 신학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주었는가? 
돈을 위하여 유다가 넘겨준 것 아니다. 
두려움 때문에 빌라도가 넘겨준 것도 아니다. 
시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넘겨준 것도 아니다. 
바로 사랑 때문에 성부께서 넘겨주신 것이다.  

성도 여러분, 거듭남의 두번째 단계는 믿음입니다. 무엇을 믿는 믿음일까요? 십자가에 담겨 있는 성부 하나님의 이 사랑을 믿는 것이지요. 곧,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도저히 치유할 수 없었던 나의 죄악을 대신 지신 대속의 죽음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은 죄악으로 점철된 인생에서 벗어나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영생의 선물임을 믿을 때, 우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내가 도저히 용서받을 길이 없는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거듭남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한 자책에 머물러 있는 것은 여러분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어요.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셨다면,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여러분의 그 무거운 죄의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여러분은 과거의 죄악 된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시 태어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 믿음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이 마주할 최종 목적지는 영생입니다. 


거듭남의 세번째 단계 _ 거듭난 삶

이미 말씀드린 회개와 믿음의 단계를 통해 우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는 거듭남의 단계를 세 가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마지막 단계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단적인 예로, 이미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들에게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질문하면 당황하면서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회개와 믿음의 과정을 거쳐 분명히 거듭남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까?’라는 질문 앞에 자신이 없어지는 이유는 이제 말씀드리려는 거듭남의 마지막 세 번째 단계를 지속적으로 밝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 거듭남의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 대한 말씀은 본문의 마지막 구절인 21절에 등장합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장 21절)

여기에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른 자”는 복음의 진리를 믿어 거듭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회개와 믿음의 과정을 통해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은 빛을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거듭난 이후 자신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안에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따라가야 하는 삶의 대원칙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말씀 드리는 거듭남의 세 번째 단계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내가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셨잖아요.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도 믿으시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까?’ 질문하면 우리는 왜 이렇게 자신이 없어질까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그 이유를 분명히 알려줍니다. 거듭남을 체험하기는 했지만,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안에서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이미 거듭남을 체험하셨다면 이제는 다시 태어난 사람답게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의 은혜가 가득히 임하기를 바랍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아직 거듭남을 체험하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바로 이 자리에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거듭남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미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다시 한번 여러분의 마음에 거듭남의 은혜가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이 어둠이 아닌 빛으로,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슬픔이 아닌 기쁨의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새로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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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