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읽기2022. 9. 1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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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ho Would Be Trump: 
Win or lose, Jair Bolsonaro poses a threat to Brazilian democracy
in The Economist, 10th Sep. 2022. 

브라질의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브라질 대통령인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패배가 유력해 보인다. 그런데 브라질의 현재 상황은 보우소나루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2022년 9월 10일 자 이코노미스트는 표지 기사의 제목을 "트럼프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The Man Who Would Be Trump)이라고 붙였다. 도날드 트럼프는 미국 대산에서 패배한 후 자신의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좌시할 뿐 아니라 선동하였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쪽 편의 사람들이 선거에서 오직 두 가지 결과 - 그들이 승리하거나 그들이 사기를 당하거나 - 만을 인정한다면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제 바이든의 이야기가 미국의 경계를 넘어 브라질의 현실을 대변하게 되었다.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은 아직 현실이 아니라 우려일 뿐이다. 그러므로 브라질의 대통령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될지, 보우소나루가 패배할 경우 브라질에 어떠한 상황이 펼쳐질지 아직은 분명히 알 수 없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에 끼친 위험보다  보우소나루의 불복이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더 큰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브라질의 정치 시스템이 미국에 비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반이 약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브라질은 오랫동안 군부가 통치하였는데 그들은 지금도 정부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여전히 투표 시스템에 의문을 품고 있다. 

21세기, 세계의 대부분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이를 위한 정치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민주주의 가치관에 대체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감대가 언제나 개인의 가치관과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잡은 개인이나 집단은 언제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에 역행하려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 이때 개인이나 집단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는 사회 정치적 기반이 필요하게 된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하듯 민주주의의 역사와 문화가 미국에 비해 빈약한 브라질은 현 대통령의 선거 불복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쯤 되어 궁금증이 발동한다. 과연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의 정치적 기반은 미국과 브라질 사이에 어느 정도 위치일까? 

 

 

 

The man who would be Trump | Sep 10th 2022 | The Economist

The man who would be Trump – Weekly edition of The Economist for Sep 10th 2022. You've seen the news, now discover the story.

www.econom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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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잡지 읽기2022. 9. 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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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ited states: 
Far from being laboratories of democracy, Americal states are now Petri dishes of polarisation. 
in The Economist, 3rd Sep. 2022. 


2022년 9월 3일 자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표지 기사는 미국의 정치적 갈등과 분열에 대해 다루었다. 미합중국을 나타내는"The United States of America"를 비틀어 "The Disunited State"라는 제목이 흥미롭다. 

미국 정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연방주의(federalism)다. 모두 50개의 주(州)가 연방의 형태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한다. 정치적 자율권을 소유하고 있는 50개의 주는 정책적 실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새로운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연방정부가 아닌 주(州) 차원에서 새로운 정책을 채택하여 정책의 실효성을 실험해볼 수 있다. 이러한 실험은 주변의 주(州) 정부 혹은 연방정부가 보다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을 세울 수 있는 귀중한 사례가 된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 정치에서는 주(州) 정부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연방주의의 장점보다 단점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문제가 되는 연방주의의 부작용으로 "새로운 갈등의 정치"(a new politics of confrontation)를 지적한다. 50개의 주(州)에게 부여된 자율성이 다양성을 포괄하는 타협과 대안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치적 극단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른바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 민주당 지지 州)와 레드 스테이트(Red State, 공화당 지지 州)의 정책이 상보적 관계를 통한 합리적 타협과는 거리가 먼 경쟁과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국가의 경제와 기업 활동에도 악영향을 끼치지만, 무엇보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민주주의, 특별히 연방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정치 주체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그들 사이에 합리적 타협을 도출하는 것을 이상적인 정치 활동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정치에서 극단주의 현상이 일어나는 핵심 원인으로 주(州) 의회와 주(州) 정부를 하나의 당이 장악하는 현상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일당 주'(One-Praty States)라고 부르는데, 50개의 주(州) 가운데 37개가 일당 주로 이는 30년 전에 비해 그 숫자가 두 배에 달한다. 주(州)라는 정치체계 내부에 권력자를 견제하는 세력이 없어 협상이나 협치보다 극단주의와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는 분석이다. 

2022년 현재, 한국의 정치권에는 협치가 사라졌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것이 협치라는 사실은 모두가 인식하고 있지만, 정치 현실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여소야대라는 한국 정치의 지형도 협치를 위한 환경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듯하다. 미국의 정치 시스템과 한국의 정치 시스템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존재하지만, 이 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력 하나는 정치 주체의 기초 단위 안에 견제 세력이 사라진다면 협치나 타협이 사라지고 극단주의와 그에 따른 갈등이 증폭하게 된다는 점이다. 


 

The disunited states of America | Sep 3rd 2022 | The Economist

The disunited states of America – Weekly edition of The Economist for Sep 3rd 2022. You've seen the news, now discove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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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잡지 읽기2019. 7. 24.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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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린다 퍼킨(Linda W. Perkins)이라는 작가가 미국의 목회자 이중직 사례를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한국 교회 내에서도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아직은 더 많은  사례를 조사하고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서, 한국 교회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면서도 여전히 거리가 있는 미국 교회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에 린다 퍼킨의 "목회자 이중직이라는 소용돌이치는 부르심"(The Turbulent Calling of Bivocational Ministry)에 소개된 사례를 짧막하게 요약해본다. 

 

 
CT에 게시된 린다 퍼킨의 아티클 첫화면 (https://www.christianitytoday.com/)
 

파나 메이(Panha Mey) - 필요에 따른 이중직 

휴스턴에 있는 캄보디안침례교회의 파나 메이 목사는 대학에서 회계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직장에서 회계관련 업무를 하였다. 결혼 후 목회의 소명을 받았지만, 일을 그만둘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4일은 근무를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신학교를 다니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저는 시간과의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한 주 설교준비에 20~30시간을 떼어놓으라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메이 목사의 말이다. "회계사로 일했기에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는 있었지만, 근무시간의 일부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목회 업무를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결국, 아내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메이 목사는 전임 목회의 길로 접어들었다. 

 

데이브 프레드릭(Dave Frederick) - 선택에 의한 이중직 

프레드릭 목사는 이중직을 선택할 때 이미 링컨가성서교회의 담임 목사였다. 그는 지역과의 연관성을 위해 경찰서의 채플린으로 자원하였다. "경찰관들과 순찰을 돌면서, 저는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보게되었습니다. 그 경험이 저의 눈을 열어 주었습니다." 프레드릭 목사는 선교사와 목사로 10년 정도 사역을 한 후, 목회직을 사임하고 거리 목회(street ministy)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모일 장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커피 오아시스>라는 공간을 발견하여 그곳을 거리 목회를 위한 공간으로 구매하였다. 커피 오아시스는 카페 및 커피 로스팅 사업과 함께 젊은 노숙자를 위한 직업 교육, 멘토링, 쉼터 등의 용도로 사용하되 있다. 

 

데이브 프레드릭이 운영하는 커피오아시스의 홈페이지 화면(https://thecoffeeoasis.com)
 

베키트 그리피스(Beket Griffith) - 이중직을 넘어 코보케이션으로 

베키트 그리피스는 목사이면서 동시에 <시즌하비스트카페>의 공동 창업자이다. 한때 그리피스는 세가지 일을 함께 했는데, 교도소 목회, 교회 목양, 그리고 레스토랑 메니저다. 그런데 레스토랑 사업이 성공하면서 시즌하비스트카페 경영에 집중하게 되었다. 지금은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작은 가정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사람들과 연관을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힘든 사람도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많이 만납니다. 우리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레스토랑을 통해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피스 목사는 자신의 이중직(bivocation)을 코보케이션(covocation)이라고 묘사한다. "전통적인 이중직에서는 목회적 소명과 직업적 소명을 구분합니다. 여기에서는 목회를 하고 저기에서는 일을 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코보케이션(covocation)은 동시에 한 가지 영역 이상의 것을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린다 퍼킨은 위의 세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서 브래드 브리스코(Brad Brisco)의 말을 인용하는데, 그는 목회자가 이중직을 선택하는 원인을 세 가지로 지적한다. 곧 재정적, 시간적, 그리고 관계적 자원이다. 목회자가 이중직을 선택한다면 관계적 재정적 자원을 확대할 수는 있지만 시간적 자원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목회자가 사역에 전념한다면 시간적 집중력은 높아지겠지만 관계적 확대가 어려울 수도 있다. 목회적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어떻게 재정적, 시간적, 그리고 관계적 자원을 균형있게 확보할 것인가?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논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어야 한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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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