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성경공부2023. 1. 3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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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블레셋에게 행하신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언약궤를 찾아오는 데 그들이 행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역사였다. 


벧세메스의 기쁨 

하나님의 언약궤가 이스라엘의 벧세메스에 도착하였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3절) 

언약궤가 도착했을 때, 벧세메스 사람들은 환영 준비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 그들은 생업을 위해 밀을 베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눈을 들어 궤를 발견하였고, 그들에게 기쁨이 찾아왔다. 언약궤의 귀환은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사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4-15절)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 가운데 제사를 드렸다. 다만, 법궤는 레위인들만 다루어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에 따라 레위인들이 궤와 금 보물이 담긴 상자를 처리하였다. 


언약궤를 모시는 방법

벧세메스는 뜻하지 않게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그들의 마을에 도착하였고, 블레셋 사람들이 속건제로 드렸던 금 보물도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두었다(18절). 이처럼 벧세메스는 언약궤가 도착하여 큰 복을 받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19절) 

율법의 규정은 성소의 모든 기구를 레위인 가운데 고핫 자손이 메고 옮기게 되어 있다. 이때 고핫 자손 역시 성소의 기구를 보거나 만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고핫 자손이라도 성소의 기구를 만지거나 심지어 보기만 하여도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민 4:15, 20) 그래서 제사장이 성소의 성물을 모두 덮어두면 고핫 자손이 들어와 어깨에 멜 수 있었다(민수기 4장 "레위 지파의 가문별 역할"). 본문에서 벧세메스 사람들은 레위인조차 보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언약궤를 들여다보았고,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참고로, 사무엘상하를 계속 읽다 보면 성소의 성물을 만지면 죽게 된다는 규정에 따라 생명을 잃은 사람도 등장한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는 과정에서 그 궤에 손을 대었던 웃사가 그 주인공이다(삼하 6:6-7).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20절) 

많은 사람의 죽음은 벧세메스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과연 거룩하신 하나님을 누가 모시며 살아갈 수 있는가? 시편 24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성도들이 동일한 질문을 던지는 장면을 노래한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시 24:3)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언제나 이렇게 질문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상 숭배에 찌든 이스라엘, 하나님의 궤만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헛된 기대만 품었던 이스라엘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 물론, 헛된 우상인 다곤을 섬기는 블레셋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 그러면 과연 누가 하나님을 모시며 살아갈 수 있는가? 율법의 규정을 어기고 언약궤를 들여다본 벧세메스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한 장면(19절)이 역설적으로 그 대답을 제공한다. 율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시며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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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