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2023. 3. 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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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는 관광 도시답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Boudin이라는 이름의 빵집이지요. 언듯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빵집이 그토록 유명한 데에는 그 빵이 맛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곳이 미국의 독특한 역사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848년은 미국 역사에서 서부개척이 본격화된 연도입니다. 바로 그해에 미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켈리포니아 주에서 황금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지요. 캘리포니아에서 황금이 발견되었던 1848년 직전까지만 해도 샌프란시스코의 인구는 대략 1,000명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서부에 황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매년 수만 명의 개척자들이 그 도시에 정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해인 1849년 조금 전 말씀드린 Boudin이라는 이름의 빵집이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 중앙에 세워지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일확천금을 노리고 그 머나먼 서부개척의 길에 합류하였습니다. 그러나 매년 수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서부로 넘어왔지만, 그들 가운데 금광을 발견하고 큰 부자가 된 사람은 정말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토록 원하던 금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지요. 사람들이 금을 찾아 헤매고, 저 멀리 서부 어딘가 있을 법한 보석을 찾아 헤매고 있을 그때, 바로 그들의 옆에서 열심히 맛있는 빵을 구웠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 있을 금광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은 그 손에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하루 세 번씩 매일 먹어야 하는 빵을 열심히 구웠던 사람들은 15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면 한 번쯤 꼭 찾아가는 유명한 명소가 되었던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황금을 찾아 나섭니다. 아직 내 손에 없어요. 그래서 저 멀리 찾아갑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너무 가까이 있기에 언제부터인지 그 소중함을 잊어버린 우리의 가족이 그러하고, 처음 함께 모여 예배하였을 때는 그토록 기쁘고 즐거웠는데 그것이 일년 이년을 넘어 십 년 혹은 그 이상이 되니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우리의 교회와 함께 신앙생활하는 교우들이 그러하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복음. 그 복음 안에 담겨있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우리 삶에 가장 귀한 보물이건만, 우리는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가장 귀한 보물은 뒤로한 채 저 어딘가에 있을 신기루와 같은 금광을 찾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날마다 공급하는 따뜻한 빵이 내 곁에서 구워지고 있건만,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황금과 보석을 찾기에 헤매었던 19세기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의 참된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가장 귀한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임이요, 또한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복음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들으셨다고요? 이제는 복음 이외에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원하신다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코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들고 우리의 인생을 풍성한 은혜로 가득하게 만드는 교회와 성도의 참된 보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교훈, 새로운 가르침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지 않기 위해,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복음의 말씀을 반복해서 듣고 복음의 말씀을 반복해서 선포해야 합니다. 찬송가 205장은 이렇게 노래하지요.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나의 마음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반복하여 귀를 기울일 때,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풍성한 선물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쁜 소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문자 그대로 복된 소식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음은 매우 나쁜 소식으로 시작한다는 사실도 잊지 마십시오. 복음은 먼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이라는 사실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른다든지 강도짓을 한다든지 그렇게 사람들에게 지탄받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X2)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많은 잘못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큰 죄악이 되기 때문입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는 주인공 크리스천이 세상의 지혜자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세상의 지혜자가 크리스천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지금 커다란 죄의 짐을 지고 있는데, 그 커다란 죄의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그때 크리스천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손에 있는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무엇일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르는 수많은 죄를 인식조차 못하고 지나가죠.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나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죄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내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조그만 소망이나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기준이나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기준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고백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평가할 때 우리는 나의 양 어깨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죄의 무거운 짐이 지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께 진심 어린 회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지금까지 그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진심어린 회개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면,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내가 이 정도면 신앙생활도 잘해왔고 사람들에게 특별히 손가락질당할 일도 하지 않았으니 나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복음의 첫 번째 메시지도 바르게 깨닫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마가복음 2장 17a절)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2장 17b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건강한 자는 정말로 건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몸은 아파요. 몸은 큰 질병에 걸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의사가 아무리 많아도 쓸데없지요. 아무리 의술이 뛰어난 의사도 그러한 사람은 고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 서면 커다란 죄인입니다. 그런데 그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나는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감당하신 대속의 십자가가 그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나 자신의 죄를 깨닫는 은혜가 먼저 임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 지적하는 것 말고,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고 싶은 것들 말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내가 죄인이며,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간절히 필요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곧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내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절망하게 되지요. 그런데 여러분,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16a절) 

여러분, 우리에게 복음, 곧 복된 소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었습니까?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신 것으로 나타났어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안에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담겨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에서 “주셨다”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매우 특별한 단어입니다. 자,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누가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을까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직접 못 박은 사람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로마의 어느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요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모든 책임이 직접 그 행위를 한 로마의 군인들에게만 있을까요? 그 모든 책임과 잘못을 예수님의 손과 발에 직접 못을 박은 군인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적절한 평가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군인들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당시 유대지방의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넘겨주었지요. 성경은 이 장면을 묘사할 때 “넘겨주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헬라어로 ‘파라디도미’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모든 책임을 빌라도와 그의 명령을 따른 로마의 군인들에게만 묻는 것은 올바른 평가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준 사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미움의 감정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잖아요. 어디 그뿐인가요? 대제사장들을 비롯하여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찾고 있을 때,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주겠다고 제안한 사람도 있었지요?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인 가룟 유다였습니다. 

이처럼 신약성경이 강조하는 ‘넘겨주다’는 단어를 추적하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유대인들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로마의 군인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준 빌라도, 예수님을 향한 시기와 미움이 가득하여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대제사장들과 유대교 지도자들, 예수님을 수년간 따라다녔지만 주님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은 삼십에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었던 가룟 유다가 그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우리가 묵상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예수님을 넘겨준 또 한 분이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장면을 깊이 묵상하였던 어느 신학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누가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주었는가? 
돈을 위하여 유다가 넘겨준 것, 아니다. 
두려움 때문에 빌라도가 넘겨준 것도 아니다. 
시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넘겨준 것도 아니다. 
바로 사랑 때문에 성부께서 넘겨주신 것이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 믿음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이 마주할 최종 목적지는 영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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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