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믿음의 모습
바울은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을 때의 모습과 믿음이 성숙했을 때의 모습을 비교하며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은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믿음입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어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 말을 하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이 저 말을 하면 그 말이 또 맞는 것 같아요. 복음 안에서 나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세상의 온갖 유혹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 바로 그것이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가도, 내 곁의 어떤 사람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봐야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그저 적당히 하라고 한 마디만 하면 마음이 흔들려요. 그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반면에 바울은 성숙한 믿음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13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15절) 여기에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라는 말씀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라’이고, 두 번째는 ‘사랑 안에서 참된 일을 하라’입니다. 정리하면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고 참된 것을 행하여 모든 일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것, 그것이 믿음의 성숙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의 성숙한 믿음이 우리 교회 안에 있기를 바라십니다. 아니, 이미 우리 교회 안에 이러한 믿음의 성숙을 허락해주셨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성숙한 믿음은 무엇보다 주변의 유혹과 속임수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들 속에서 교회를 무너트리려는 유혹과 속임수가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교회를 무너트리려는 모든 유혹과 속임수 속에서도 우리 교회 성도들은 한마음이 되어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도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얼마나 성숙한 믿음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어요.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더욱 믿음이 자라고 성장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믿음의 성장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를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이미 성숙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앞으로도 더욱 성장해야 합니다. 더욱 자라야 해요.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성숙을 위한 훈련
저는 이따금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성경을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한 저의 대답은 언제나 듣는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줍니다. 왜냐하면 저의 대답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얼마나 두껍습니까? 그 성경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잘 배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죠. 우리의 신앙이 자라기 위해서는 성경을 잘 아는 것이 꼭 필요한데, 그 과정에는 오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자라나기 위해, 이 두꺼운 성경을 폭넓게 공부하고 깊이 묵상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시간과 더욱 많은 노력을 요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의 깊이를 더하는 것입니다. 그저 식사하기에 앞서 1분 이내로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의 깊이를 더하여 하루에 최소한 한 시간 이상 하나님과 기도로 교감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기도의 깊이를 더하는 것은 성경 66권을 폭넓게, 그리고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보다 더욱 어렵고 고단한 과정인 듯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바꾸어나가기 위해, 성경 66권을 폭넓게, 그리고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보다, 아울러 기도의 깊이를 더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과정이 하나 더 남아있는 듯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진심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과정입니다. 기도의 깊이를 더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편에 속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의 하루하루의 삶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지성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아가는 것, 우리의 감성적인 측면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감을 갖는 것, 우리의 의지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오랜 시간 훈련 받지 않고는 성장하는 측면이 없습니다. 만일, 이러한 훈련의 시간을 그 누구의 도움이나 협력이 없이 저 혼자 해내야 한다면 저는 포기하고 말 것 같습니다. 우리 가운데 제 아무리 의지가 강하여 결심한 바는 반드시 행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본인 혼자서 지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감성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감을 갖고,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요, 그것이 바로 교회의 직분입니다.
직분의 제정자 예수 그리스도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1-12)
여기에는 교회의 직분이 다섯 가지로 등장합니다. 곧,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다섯 가지 직분은 무엇이며, 그것을 오늘 우리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 지를 논의하는 것은 교회에 별로 유익이 없어요.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항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직분을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분을 세우신 목적입니다. 직분을 받은 사람의 역할은 성도들이 온전하여 지도록 성도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말의 주어는 5가지의 직분자들이 아니라 ‘성도들’이라는 것이 성서주석가들의 중론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흔히 직분자들만이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졌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직분자들은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교회에서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웁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직분을 세우신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로 세워진 사람은 물론이요, 그렇지 않은 성도들까지도 한 마음이 되어서 서로 힘을 북돋아주고 교회의 성장과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서로서로 도움이 되는 것, 이것이 교회 안에 직분이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4장 16절)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고, 또 연결됩니다. 이것은 교회를 인간의 몸에 비유한 설명이지요. 성도들 개개인 모두가 다 연결이 되어 서로에게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교회의 각 지체들, 각각의 성도들이 자라납니다. 이것이 교회에 직분이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에베소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베소서 4장 25-32절 / 교회를 위한 기도(17) - 변화된 삶 (0) | 2016.02.23 |
---|---|
에베소서 4장 17-24절 / 교회를 위한 기도(16) - 세례 공동체 (0) | 2016.02.22 |
에베소서 4장 1-10절 / 교회를 위한 기도(14) - 하나되는 교회 (0) | 2016.02.20 |
에베소서 3장 20-21절 / 교회를 위한 기도(13) 능력으로 역사하실 하나님 (0) | 2016.02.18 |
에베소서 3장 14-19절 / 교회를 위한 기도(12) - 기도의 사명 (0) | 2016.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