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2016. 2. 23. 07:30

오늘 본문은 지난번 본문에 대한 적용입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 가운데 이미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이방인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거센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바울은 이미 예수님을 믿어 크리스천이 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이방인의 옛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말 것을 강력하게 호소하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24)곧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말씀에 대한 적용입니다.

 

우리에게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께서 설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우리 가운데 말씀하세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나의 마음에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없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새사람의 구체적인 삶(윤리)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4:25-29)

 

바울이 권면하는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언어의 문제입니다.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는 것이죠. 거짓말을 멀리하는 것은 물론이요, 우리의 언어를 통해 교회에서 은혜가 되고, 덕이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가장 많이 상처를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월급을 적게 주어서인가요? 아닙니다. 교회에서 너무도 많은 일을 시켰기 때문이에요?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교회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죠. ‘언어’에요.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시하는 말을 들었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죄하는 ‘언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언어가 세례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두 번째로 분노의 문제를 다룹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매우 깊이 묵상한 나머지, 분을 내고 화를 내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다만 화를 내면서도 죄를 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설명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마땅히 버려야 할 것들을 나열하면서 ‘악독’ 다음에 ‘노함’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30) 분노는 버려야 할 덕목입니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면, 그날 저녁까지 지속적으로 분을 품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의 날짜 계산법에 따르면 저녁부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향한 분한 마음을 품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4:27)라고 말씀합니다. 마귀가 틈을 타서 교회를 공격하고, 가정을 공격하는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라는 말씀이지요? 바로, ‘분노’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 그 누구도 교회에서 화를 내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성도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에 분노가 생기고, 화가 나기 시작하면 마귀는 바로 그 틈을 이용해서 우리 교회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도둑질 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하면서 오히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도록 수고하고 선한 일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행위가 과거 이방인의 모습이었다면, 이제 예수님을 믿고 크리스천이 된 사람은 단지 도둑질을 멈추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손으로 일하여 번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지금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옛사람을 벗어 새로운 사람으로 옷 입었다면 그 증거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사람에 대한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는 것이에요.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일에만 최선을 다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옛사람을 벗어 새로운 사람으로 옷 입었다면 그 증거는 무엇이 될까요? 자신의 탐욕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필요에 민감한 사람이 되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 성도들의 삶에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의 말이 변화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언어에 거짓이 사라지고, 그 대신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다른 사람의 믿음에 힘을 주는 언어가 우리의 입술에 있기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분노를 참지 못하는 나의 성품이 변하여 분노를 다스리는 성품이 되게 하시고,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것과 같이 우리 안에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면 변화되어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사람으로 변화되는 그 놀라운 역사가 우리 교회 성도들의 삶에 가득히 나타나도록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윤리의 근거 –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30-32)

 

사도 바울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모두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서 빚어질 때 기뻐하시고, 우리가 크리스천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할 때 슬퍼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해야 하는데, 바울은 그 근거를 소개하면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너희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누구 안에서? 바로 ‘그리스도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바로 그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크리스천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크리스천입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의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옛 습관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가 달라지고, 우리의 품성이 달라지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는 것은 우리 개인의 열심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믿게 하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지금도 계속해서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더욱 깊이 체험하면 할수록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조금씩 또 조금씩 빚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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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