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2016. 2. 22. 07:30

신앙의 귀소본능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에게 소위 ’귀소본능’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귀소본능이란 동물이 자신의 서식지나 산란 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가도 다시금 자신의 서식지나 산란 장소로 돌아오는 성질을 말하지요. 개는 아무리 먼 길을 떠나도 그 집을 다시 찾아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비둘기도 자신의 서식지에서 1000km나 떨어진 곳에서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어는 산란을 위해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동물들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 때 우리는 사람들의 귀소본능을 보게 됩니다. 오랜 시간 외지에서 살던 분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도 귀소본능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지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은 받았는데, 그래서 과거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을 받았는데, 지속적으로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찾으라면 전 ‘데마’라는 사람을 꼽겠습니다. 디모데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데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4:10). 데마는 분명 사도 바울을 따랐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바울에게서 복음의 깊이를 교육받았을 거예요. 그러나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의 곁에 있던 사람도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과거의 자신이 빠져 살았던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버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에도 ‘귀소본능’이 작용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귀소’본능’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제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되었을 지라도 우리가 마음을 집중하고 예수님께 붙어 있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의 본성은 과거로 회귀하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가득한 세상이 아니라, 아직은 악이 횡횡하고 악인들이 득세하는 것 같고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세상의 탐욕과 술수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본성은 지속적으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4:17)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과거에 예수님도 모르고, 율법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던 이방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지금은 구원받은 크리스천이잖아요. 그러나 그들에게는 여전히 신앙의 귀소본능, 곧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나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신앙의 휘귀본능이 없나요? 세상은 하나님 없이 살아갑니다. 세상은 물질이 하나님이고, 욕망이 하나님이고, 쾌락이 하나님이지요. 그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성경에 근거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세상의 유혹이 이처럼 강한데, 귀소본능은 또한 우리의 본성이에요. 우리가 주의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세상의 풍조대로 휩쓸리는 것이 우리의 본래적인 특성이라고요. 우리 교회를 비롯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위협하는 강력한 사탄의 무기가 있다면 그 가운데 하나는 신앙의 회귀본능입니다.

 

성도는 신분상 새사람이지만 

실존적으로 옛사람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

 

에베소교회가 신앙의 ‘귀소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거세지자, 바울은 이방인의 옛 모습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간곡히, 간곡히 당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의 모습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크리스천의 모습이 얼마나 확연히 다른 것인지를 오늘 본문 전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방인

크리스천

목표

목표상실(허망함, 17)

진리(21)

분별력

총명이 어두워짐(18)

그리스도에게 듣고 배움(21)

행위

방탕, 욕심대로 행함(19)

의와 진리의 거룩함(24)

Basic Source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남(18)

하나님을 따라(24)

 

왜 사도 바울이 이방인과 크리스천의 차이를 이렇게 자세히 이미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지만, 그래서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우리의 신분에 합당하지 않게, 곧 하나님의 백성답지 않게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과 사단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크리스천이 되었지만, 여전히 죄와 사망과 사단의 권세 아래에 있는 종과 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모습과 크리스천의 모습을 분명하게 구별하며 제발 너희 신분, 곧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에 맞게 행동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았던 때를 기억하라

 

바울이 예수님을 믿어 이방인에서 크리스천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마치 옷을 갈아입는 장면으로 그려주고 있습니다. (22, 24) 초대교회의 전통에서 보면 옷을 벗고 옷을 입는 것은 세례의식과 관련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라는 이 말씀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말씀이에요.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21)

 

여기서 ‘듣고’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메시지를 들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는 세례를 받기 위해 세례 교육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초대 교회의 세례 교육은 우리 시대의 교육과 전혀 달랐거든요. 그들은 최소한 40일을 교육받았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사순절 기간은 초대교회에서 부활절에 세례를 받기 위해 세례 교육을 받았던 기간입니다. 바울은 지금 세례교육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신앙의 귀소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과거의 옛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이 세례 받았을 때를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세례’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된 사건을 분명하게 확증하는 제도입니다. 우리는 평생에 세례를 한 번만 받아요.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그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치 인류 역사상 단 한 차례만 일어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을 우리가 두고두고 기억하며 묵상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었다는 그 사실을 지속적으로 기억하면서 우리는 신앙의 귀소본능을 이길 수가 있는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세례를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맞게 우리의 삶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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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