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2016. 3. 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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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에게 언젠가 어느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일반 사람들이 멸시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마더 테레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죠. “만약 저에게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1]

 

기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E. M. 바운즈는 자신의 책,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기계나 더 좋은 기계도 아니요, 새로운 조직도 아니요, 기발한 방법도 아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사람, 즉 기도의 사람, 기도에 능한 사람이다. 성령은 방법을 통해서 흘러나오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성령은 기계에 임하지 않고 사람에게 임하신다. 성령은 계획에 기름을 붓지 않고, 사람에게 그것도 기도의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신다.[2]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 곧 에베소서의 마지막 권면의 말을 적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마지막 권면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하라’입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권면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도하라고 권면하면서 어떻게 기도하라고 말씀합니까? ‘항상’, 그리고 깨어 기도하라고 명령한다는 점입니다.

 

항상 기도한다는 것, 혹은 깨어 기도한다는 것은 어느 한 순간 기도에 집중하였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기도 생활이 나태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죠. 사실, 우리의 삶에 집중적으로 기도가 필요한 시기가 있습니다. 내 삶의 중요한 문제를 놓고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러나 성경이 기도에 대한 교훈을 주실 때 언제나 강조하는 것은 ‘항상’ 기도하라는 것이고,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해 가면서 기도의 생활이 슬럼프에 빠지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영적으로 슬럼프에 빠져계시면 그때 더욱 기도해야 하고요.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나태해지려 할 때 기도의 줄만큼은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하지 않는 바로 그 부분을 파고들어 사단은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런 점에서 어느 한 순간 뜨겁게,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문제는 뭐지요? 지속적으로 기도에 힘 쓴다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습니까? 아니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어쩌면, 한 순간 내 인생에 큰 어려움이 찾아올 때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의 삶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나, 나의 삶이 평안할 때나 상관 없이 지속적으로 기도 생활에 힘쓰며 하나님과의 관계의 끈을 이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까?

 

바로 여기에 교회가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한 개인이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의 의지력을 가진 사람으로는 거의 불가능해요. 그런데 교회 안에는 지속적인 기도 모임이 있고, 그 모임에 참여하면서 내 마음에 기도의 불이 지펴지면 항상, 그리고 깨어 기도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거든요. 왜 교회 안에 다양한 기도의 모임이 있어요? 왜 교회는 모든 모임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칩니까? 그 이유는 단순해요. 교회에는 언제나 정기적인 기도 모임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성도들이 언제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편안하게 교회를 찾을 수가 있잖아요.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물론 성도 개개인이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포함합니다. 물론 교회에 속한 성도들 개개인이 기도에 능한 사람들이 된다는 사실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되고, 기도에 능한 교회가 된다는 의미는 우리 교회 안에 다양한 기도의 모임이 있고, 그 모임에서 뜨거운 기도의 열기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깨어서’ 기도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지, 곧 기도의 내용이 무엇으로 채워져야 하는 지를 설명합니다.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어느 목사님께서 자신의 기도 생활에 대해 참으로 진솔한 고백을 하신 적이 있어요. 교회에서 새벽기도가 끝나면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남아서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목사님은 새벽기도가 끝나고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에 더 많이 기도하고 싶고, 더 깊이 있게 기도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더라는 거에요.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순서에 따라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개인이 오랜 시간을 갖고 깊이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는 진솔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목사님께서 새벽 시간에 오랫동안, 그리고 깊이 기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간구하였고, 그 가운데 가장 확실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하나 찾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것이 무엇일까요? 새벽기도가 끝나면 성경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찬송가를 다시 펴는 것도 아니고, 바로 교회 수첩을 꺼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역별로 중보기도를 시작하는 거에요. 교회 수첩을 보고 기도하다 보니, 오늘 기도해야 할 목록이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더랍니다. 시간만 빨리 지나는 게 아니라 기도의 깊이가 더해지더라는 겁니다. , 그렇습니다. 이것이 중보 기도의 능력입니다.

 

 

목회자를 위한 기도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깨어서’ 기도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내용으로는 서로를 위한 중보기도를 말씀하셨죠. 그리고 중보기도의 중요한 대상으로 누구를 이야기합니까? 바로 사도 바울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6:19-20)

 

바울의 이름 앞에는 하나의 호칭이 따라다닙니다. 그 호칭은 바로 ‘사도’라는 것이죠. 사도는 예수님의 사역과 그 분의 십자가 죽음,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마디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부족하지 않은 실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구약성경에 능통하였고, 로마의 시민으로서 로마의 통치권이 유효한 지역에서는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며, 그의 편지를 보면 그의 언어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도 받았고, 그 개인에게 충분한 능력과 자질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요청하는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성도들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부르심도 중요하고, 자신의 능력이나 열정도 중요하지만, 성도들의 지속적인 기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던 것이죠.

 

오늘 본문에 근거하여 저 역시 여러분에게 동일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자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이 복음의 진리를 분명하게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회자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지요. 목회자들은 신학교에서 복음의 일꾼으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고, 신학교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았다고, 그래서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목회자들이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데 충분한 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1] 이한진 편역, 『열매 맺는 기도』 (서울: 겨자씨, 2006), p. 13.

[2] E.M.바운즈, 이정윤 역, 『기도의 능력』 (서울: 생명의말씀사), p.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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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