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2016. 3. 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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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5:18b).

 

여러분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여러분의 가정 가정이 성령 충만한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의 공동체적(교회, 가정) 차원

 

저는 먼저 성령 충만에 대해 한국 교회 안에 있는 오해 가운데 하나를 지적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많은 한국 크리스천들이 성령 충만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성령의 충만은 개인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는 초대교회가 역사상 처음으로 7분의 집사님을 선출하는 과정이 나오지요. 바로 그때 교회는 집사님으로 선출할 사람의 조건을 어떻게 정하였습니까? 가장 첫 번째 조건이 ‘성령이 충만한 것’입니다. 그래요 초대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보다 성령에 더욱 민감하고, 성령이 더욱 충만한 분들이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에는 개인적인 차원이 있어서, 같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어떤 분들은 성령이 충만한데 어떤 분들은 그렇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령 충만은 단지 개인적인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께서 초대교회에 강력하게 임하시는 장면이 등장하지요. 120명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어요. 그 자리에 함께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얻게 된 것이죠. 그래서 교회가 됩니다. 다시 말씀 드려 성령의 충만함이 교회 차원으로도 임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조금 더 읽어 내려가다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공의회에서 심문을 받은 뒤, 온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4장인데요. 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던 베드로와 요한이 심문을 받는 등 교회가 핍박을 받으니 성도들이 진심으로 뜨겁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성령의 충만을 주시는데, 그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물론 그 자리에 있는 개개인, 각 사람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시죠. 그러나 성령 충만이 단지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온 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져서, 성령 충만한 교회를 이루더라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충만이 교회 차원에서 임했던 장면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령의 충만함이 가정의 차원에서 임하는 장면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바와 같이,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베드로를 초청하지요. 동일한 시점에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또 하나의 환상을 보여주시며 고넬료의 초청에 응하도록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세요? 베드로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기 위하여 사람을 욥바로 보낸 고넬료는 베드로가 오는 동안 자신의 모든 친척과 주변 친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 장면을 또한 사도행전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고넬료는 자신의 가정에 베드로를 초청하면서 모든 식구들, 모든 친척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까지도 함께 초대했습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사도행전 10장은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하나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개인의 성령 충만함을 소원하십시오. 여러분 개인의 성령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간절히 여러분의 가정에 성령의 부어주시는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식구들 전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그 놀라운 장면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향해서도 동일한 소원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각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모든 가정 가정마다 성령 충만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가정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가정의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 충만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한 교회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5:15-17)

 

바울은 지혜가 없는 자와 지혜로운 자를 구별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삶은 달라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알기에,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지혜로운 선택이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흔히 오해하는 바와 같이,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아낀다’라는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구원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이 살아가지만, 크리스천은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 순간의 시간을 구원한다는 의미인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 크리스천 된 우리가 성경의 명령과 같이 이 악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되고, 교회를 출석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까? 예수님 믿고, 교회에 출석하고. 시간이 흘러 교회에서 직분을 받으니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던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할 수 있는 지혜는 바로 성령 충만으로부터 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5:19-21)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라고도 말씀하죠.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라고 명령합니다. 크리스천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감사의 찬양의 말이 크리스천의 입술에서 떠나면 안 되요. 그런데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하나님께 드리고’라고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화답하며’라고 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교회가 성령이 충만할 때 예배가 살아나고, 찬양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가 가득하고 그 안에서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성도들 사이에 찬양과 감사와 기도와 예배 안에서 서로 마음이 나누어지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죠. 그뿐이 아닙니다.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과 비전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바로 그 모습, 바로 그 모습이 성령 충만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충만하여서 매주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예배 안에서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바로 그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우리 교회에 성령이 충만하여,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성도들 개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그러한 교회, 그러한 성령 충만한 교회가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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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