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인문학2016. 6. 1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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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는 고귀한 희생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순교는 필연적으로 ‘죽음’이라는 개념을 내포한다. 그러나 모든 죽음이 순교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죽음을 당한 이유– 곧, 죽음의 원인, 그들의 사명, 그들의 활동 – 가 그들을 순교자로 만든다.[1] 그런 점에서 순교에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지만, 그들을 순교자로 만드는 더욱 중요한 요인은 그들의 삶이다. 베드로전서 219-20절은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말씀한다. 고난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삶이 고난을 아름답게 만든다. 그러므로 순교자의 흔적을 찾아가는 일은 그들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죽음까지 이어지는 ‘삶’에 대한 탐구이다. 죽음의 한 순간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을만큼 그들의 기나긴 삶의 여정을 통해 추구하였던 궁극적인 가치를 쫓아가는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바와 같이, 순교자(martyr)라는 영어 단어는 증인(witness)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단어로부터 유래하였다. 사도 요한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언명하였을 때, 요한은 여전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점에서 그는 이미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었다( 1:9).[2] 뿐만 아니라, 죽음으로 순교한 사람들 곁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음을 피할 수 있었지만 순교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증인의 삶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다. 리비아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인 선교사 로니 스미스(Ronnie Smith)의 순교가 있은 후, 그의 아내 애니타 스미스(Anita Smith)는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한다는 공개 서한을 발표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미국 애쉬랜드대학교(Ashland University)의 종교학 교수 크레그 호비(Craig Hovey)순교자는 한 사람이지만, 증인은 두 명”(one martyr but two witnesses)”이라고 평가한다.[3] 동일한 논리를 전라남도 신안군에 증동리교회를 비롯한 10여개의 교회를 설립한 문준경 전도사에게 적용할 수 있다. 그녀는 기독교의 신앙을 끝까지 지키다가 공산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순교자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한 사람의 순교자로 마치지 않았고, 그의 사역은 수많은 증인들 – 김준곤, 이만신, 정태기, 이만성, 이봉성 등 – 을 배출하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길은 순교에 대한 각오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순교자들의 삶을 탐구하는 이유는 그들을 순교자로 만든 참된 이유, 곧 그들의 증인된 삶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1] Craig Hovey, “Being and Witnessness: Minding the Gap between Martyrs and Witnesses,” Anglican Theological Review, 97 no 2 Spr 2015, 265-6.

[2] 요한계시록 1장에 등장하는 증인 의미에 대해서는 N. T. Wright, Revelation for Everyone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1), 4 참고하라.

[3] Craig Hovey, “Being and Witnessness: Minding the Gap between Martyrs and Witnesses,”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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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