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과 말씀묵상2018. 1. 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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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룹 영성 (0) - 프롤로그

소그룹 영성 (1) - 소그룹 목회의 보편성 (1) "성경적 근거"

소그룹 영성 (2) - 소그룹 목회의 보편성 (2) "방법론적 특징"

소그룹 영성 (3) - 감리교 운동과 속회 (1)

소그룹 영성 (4) - 감리교 운동과 속회 (2)

소그룹 영성 (5) - 순복음 교회와 구역 (1)

소그룹 영성 (6) - 순복음 교회와 구역 (2)

소그룹 영성 (7) - 21세기 한국 개신교회의 소그룹 목회

소그룹 영성 (8) - 개혁교회와 소그룹



지난 몇 차례의 포스팅에서 한국 개신교와 관련이 있는 몇몇 소그룹 형태를 살펴보았다. 감리교의 속회는 그리스도인의 완덕을 추구하는 영성을 반영하는 다층적 구조의 소그룹 형태를 탄생키셨다. 한국의 순복음교회는 조용기 목사의 오순절적이며 번영신학적인 영성을 실제로 경험하는 현장으로서의 구역을 계발하였다. 랄프 니버(Ralph Neighbour)는 목회적 돌봄과 전도에 강조점을 두면서 교회 조직의 권위와 지도를 받는 구역 모델을 체계화하였고, 칼 조지(Carl George)는 평신도의 목회사역 리더십을 계발할 수 있는 목회팀을 구성함으로써 메타 모델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닐 콜(Neil Cole)은 소그룹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교회라고 주장하며 가정 교회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영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유형의 소그룹이 등장하고 있지만, 개혁교회 전통에 서 있는 소그룹 목회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개혁교회에서 소그룹에 대한 전통을 찾아보기  어려운 역사적 배경 가운데 하나는 재세례파에 대한 칼뱅의 비판이다. 16세기,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el)이나 펠릭스 만츠(Felix Mantz)를 비롯한 재세례파들은 개인 가정에서 모여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성경공부를 근거로 유아세례는 성경적이지 못하며 세례는 성인이 자신의 믿음을 고백할 때에만 주어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레벨은 만츠의 집에서 이미 유아세례를 받은 조지(George)라는 사람에게 재세례를 주었다.  칼뱅은 유아세례를 성경적이라고 인정하면서 재세례파를 교회의 일치를 파괴하는 분리주의자들이라고 정죄하였는데, 칼뱅의 비판에 의하면 재세례파의 행태는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도나투스주의자들이 범했던 잘못, 그리스도의 양떼를 흩으는 일과 동일하였다.  칼뱅은 재세례파의 출현을 목격하면서 소수의 사람들이 개인 가정에서 사적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가르침이 확산될 위험성이 있음을 인식하였고, 이것은 평신도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소그룹이 개혁 교회 전통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소그룹 목회에 대한 개혁 신학의 부정적인 자세는 개혁 신학의 인간론과도 연관성이 있다. 소그룹 목회에 대하여 긍정적인 자세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가 이끄는 소그룹 모임이 대체적으로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건전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인간론)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행하는 은혜가 모든 사람들신자든, 불신자든 상관 없이에게 주어졌고, 선행하는 은혜 위에 인간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그리스도인의 완덕(Christian Perfection)에 이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인간론을 견지하였던 웨슬리의 부흥운동에서 속회라는 소그룹 전통이 발현되었던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데 웨슬리의 인간론과 대비되는 개혁 교회의 인간론은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자세를 표현하는데, 그 대표적인 가르침이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지지하는 개혁교회의 신학으로서는 평신도들이 인도하는 소그룹이 건전한 결론과 선한 열매로 맺어지리라는 기대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더욱이, 20세기 소그룹 운동의 진앙지가 되었던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구역이 오순절적이며 번영신학적인 영성을 담지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혁교회의 입장에서는 소그룹에 대한 가능성보다는 위험성에 더 비중을 둘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면 소그룹은 개혁교회 전통와 양립이 불가능한가?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한국의 모든 장로교회는 소그룹을 거부해야 하는가? 상술한 바와 같이, 칼뱅은 재세례파가 개인의 가정에서 사적으로 모이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칼뱅이 믿는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힘이 되어주는 기독교 공동체의 역할까지도 거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신자의 어머니로서의 보이는 교회를 강조하면서 교회의 보호와 돌봄을 받지 않고는 그 누구도 생명의 길에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그가 지적한 교회의 역할에는 성도들 사이의상호 돌봄도 포함된다.  비록 칼뱅이 개인 가정에서의 사적인 모임을 반대하였지만, 성도들 사이의상호 돌봄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던 그는 공적인 장소에서 모이는 목회자들의 모임은 오히려 지지하였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당시, 추리히에는 프로페차이(Prophezei)라는 이름의 성경연구 모임이 있었고, 슈트라스부르에서도 추리히의 프로페차이와 유사한 성경연구 콘퍼런스가 있었는데, 칼뱅 역시 목회자들이 지속적으로 만나 함께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을 콘그리게이션(congregation)이라는 이름으로 조직하였다. 칼뱅은 콘그리게이션의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목회자들 사이에 교리의 순수성과 일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목회자들이 매주 특정한 시간에 함께 모여 성경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합당한 이유가 없이는 그 누구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된다. 만일 누군가 이 모임에 태만해지면 그는 책망을 받아야 한다.”  콘그리게이션에서는 목회자 각자가 성경을 연구한 뒤 함께 모여 성경에 대해 토론하면서상호 학습이 가능하도록 하였는데, 제네바의 목회자들은 매주 금요일을 함께 모여 성경을 토론하는 데 할애하였다.  최대 십여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현대적 소그룹의 관점에서 볼 때, 칼뱅이 제안하였던 제네바 목회자들의 콘그리게이션은 규모 면에서 소그룹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소그룹이 가지는 장점들 가운데상호 돌봄상호 학습이 중요한 요소라면 칼뱅의 콘그리게이션은 소그룹의 주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칼뱅이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들이 인도하는 개인 가정에서 사적으로 모이는 소그룹은 반대하였을 지라도, 신학교육을 받은 목회자들이 공적인 장소에서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모임은 지지하였던 것이다.

 

만일 칼뱅의 교회론과 그가 제안했던 콘그리게이션이 현대적 의미의 소그룹을 지지한다면, 개혁교회의 소그룹이 지향해야 하는 소그룹 영성의 특징도 분명해진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웨슬리 신학과 개혁 신학 사이에는 인간론적 차이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인간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관점을 견지하였던 웨슬리(아르미니안주의)는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들이 함께 모여 신앙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속회를 조직하였지만, 인간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칼뱅(전적 타락)은 신학교육을 받은 목회자들만이 콘그리게이션에서 자유롭게 성경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인간론적 차이로부터 비롯된 이와 같은 차이는 전략적 차이로 나아가는데,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전략과아래로부터 위로의 전략이다. 옥스퍼드에서홀리클럽”(Holy Club)이라는 이름으로 엘리트들의 모임을 조직한바 있었던 웨슬리는 역설적으로아래로부터 위로의 전략을 선택하였다. 다시 말해, 웨슬리는 일반 대중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문맹이었다을 주된 대상으로 사역을 함으로써 보다 빨리 교회의 각성을 촉구하려던 전략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칼뱅은 제네바 아카데미 와 콘그리게이션을 통해 목회자들의 교육에 힘을 다하였고, 그들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개혁교회의 영성을 전파하려는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전략은 선택하였다.

 

현대적 의미의 소그룹에 대한 개혁교회 전통은 구역으로 대표되는 한국 순복음교회의 소그룹과도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구역은 조용기 목사의 오순절적이며 번영신학적인 영성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장로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영성이다. 아울러, 랄프 니버(Ralph Neibough)가 체계화한 구역 모델은 목회적 돌봄과 전도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지만, 개혁교회의 소그룹은 개혁교회의 영성인경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성/가치의 차이는 소그룹이 초점을 맞추는 참석자의 차이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목회적 돌봄과 전도는 주로 평신도(그것도 초신자)에게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지만, 경건의 훈련에 강조점이 있는 개혁교회의 소그룹에서는 초신자만이 아니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이미 복음을 믿어 신자가 된 사람들이 지속적인 경건의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서로를 지지하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구역 모델에 익숙하여 소그룹을 평신도특별히 초신자에게 목회적 돌봄을 제공하는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소그룹은 그것을 채택한 기독교 공동체의 영성을 반영하기 마련이며, 개혁교회의 영성은경건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장로교회라면 조용기 목사의 오순절적이고 번영신학적인 영성이나 니버가 주장하는 목회적 돌봄과 전도의 가치를 뛰어넘어, 소그룹의 초점을 초신자를 포함한 평신도는 물론이요 목회자들까지도 참여하는경건의 훈련에 맞춰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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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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