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18. 3. 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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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고인의 육신을 조그마한 관으로 모시는 입관이 모두 마쳤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유족들은 큰 슬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고인을 조그마한 관에 모실 수 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요 이제는 살아생전에 고인의 얼굴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이들은 대궐과 같은 넓은 집에 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조그마한 단칸방에서 대부분의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세상이 좁다하며 살아가지만 또 어떤 이들은 그저 조그마한 동네, 조그마한 마을을 온 세상으로 알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 모두가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 그러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은 한 가지 바꿀 수 없는 사실이 있다면 우리의 인생 마지막에는 그 누구도 예외없이 자신의 육신을 누이기 위해 조그마한 관, 조그마한 상자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일진대 예수님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는다면 또한 나를 믿어라

비록 이 세상에서는 몸을 누일만한 넓은 집 한채 없어도,

비록 인생의 마지막에는 조그마한 상자 하나에 들어가야 하는 인생이라도

나의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고인께서 조금전 그 좁디 좁은 관에 몸을 누이셔야 했지만, 그리하여 더 이상은 살아생전 고인의 얼굴을 뵈올 수는 없게 되었지만 우리가 알고 믿는 분명한 사실 한가지. 지금 고인께서 누우신 그 좁은 관은 고인께서 영원히 거할 처소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니, 고인께서 들어가신 그 좁은 관은 하나님께서 고인을 위해 예비하신 그 아름다운 처소로 들어가는 통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천국이라는 본향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탑승해야 하는 조그마한 이동수단인 것이지요.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우리 인간은 고인의 육신을 위해 좁은 관만을 준비할 수 있었고, 우리 인간은 고인의 몸을 그저 좁은 관에 모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인의 영혼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고인을 영접하여 주시고 예수님께서 계신 그곳에서 영원히 살도록 인도하여 주십니다.

 

고인을 좁디좁은 관에 모셔야 하는 유가족들, 나아가 고인의 입관예배로 함께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조금 전 고인의 육신을 모신 좁은 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배해 놓으신 저 천국의 본향을 바라보는 영의 눈이 활짝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간이 좁은 관에 고인의 육신을 모셨지만,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고인의 영혼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바라보아 모든 유가족들과 우리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가 가득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어찌 고인뿐이겠습니까?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어리석은 인간의 마음이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육신이 누울 곳은 결국 조그마한 관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 아무리 넓고 화려한 처소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도 이미 정해진 이 운명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처소, 하늘의 거처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예수님만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조그마한 관이 인생의 마지막 거처가 아니라 저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이동수단에 불과합니다.

 

모든 유가족들, 오늘의 입관예배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고인의 믿음을 본받아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날 조그마한 관을 나의 몸을 누이는 마지막 처소로 삼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관을 통과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으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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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