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2019. 7. 1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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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연구원이었던 알렉스 팡(Alex Pang)이라는 분이 약 3년 전 책을 한권 썼습니다. 그 책의 제목이 <휴식>(Rest)입니다. 그 책에서 알렉스 팡은 미국 사회의 근로 문화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세계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많이 일하고 적게 쉰다. 경제학자들의 예측이나 통념과 달리 기술과 환경은 나날이 생산적으로 발전하는데 업무 시간은 짧아지기는 커녕 더 길어진다. 휴가는 고스란히 반납되기 일쑤이며 어쩌다 휴가를 가더라도 수시로 업무 이메일을 확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마치 한국의 현실을 기록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업무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술의 발전은 눈이 부실만큼 빠르지만, 직장인들의 하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바빠진다는 알렉스 팡의 지적은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지요. 직장인만이 아닙니다. 가사 노동을 돕는 생활가전이나 로봇의 기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며, 필요한 것을 핸드폰이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24시간 안에 우리 집 문 앞에까지 배달되는 서비스가 발달하고 있지만, 이곳에 계신 주부 여러분,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분의 가사 노동은 줄어들고 여러분의 육아는 여유로워지며 그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삶에는 쉼과 여유가 넘쳐나고 계십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기술이 얼마나 더 발전을 해야 우리에게 ‘여유’라는 것이 찾아오게 되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화와 재정을 소유해야 비로소 우리는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언젠가 참된 쉼,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기는 한 것입니까?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참된 쉼과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쉼이 없는 사람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주일에 단 하루는 모든 일을 멈추라고 명령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일주일에 하루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쉼과 안식을 누리도록 한 것이 안식일의 규정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매주 안식일을 맞이하지만, 매주 안식일을 맞아 안식일의 규례대로 아무런 노동을 하지 않고 회당을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매주 듣지만 그의 마음과 그의 영혼에는 참된 쉼과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로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여기에 한 남성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의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오른손 마른 사람’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사람의 직업은 벽돌공이었다고 합니다. 자,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전설에서와 같이 그가 벽돌공이었다면, 그는 벽돌을 쌓으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여 자신의 노동의 대가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벽돌공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안식일의 규정 – 곧 안식일에는 아무런 노동도 하지 말라 – 는 규정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안식일의 규정 때문에 공사 일정을 빨리 앞당기기도 하고, 안식일이 지난 후에는 그 날 하지 못했던 일을 하기 위해 또 열심히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왠 일입니까? 그의 오른 손이 시간이 흐를수록 마르기 시작합니다. 성경의 의미를 좀더 정확히 묘사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손이 말라서 고부라지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더욱 지나자 그는 오른손을 도무지 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벽돌공으로 일할 수가 없었지요. 직업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일주일에 하루 안식일을 지켜서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율법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아니, 일주일에 하루만 일을 쉬는 게 아니라, 일주일 내도록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안식일 규례대로 안식일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지만 그의 마음에는 쉼이 없습니다. 생계에 대한 걱정, 가족에 대한 걱정, 내일에 대한 절망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지요. 매주 안식일을 맞이하고 안식일의 규례대로 아무런 노동도 하지 못한 채 회당에 앉아있지만 그의 마음에는 안식이 사라졌고, 그의 영혼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한 가지 얻습니다. 안식일에, 혹은 주일에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참된 쉼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피곤하시죠? 지난 한 주 동안 생활 전선에서 최선을 다하여 수고하시고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니 우리의 몸이 피곤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난 일주일 동안 최선을 다해 수고했으니 이제 주일에는 좀 쉬어야겠다고 그저 집에 들어가서 방에 누워있으면 그곳이 여러분 영혼의 참된 쉼터가 될까요? 아닙니다. 오른손 마른 사람은 일을 못해요. 그래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은 너무 쉬워요. 그래도 그의 마음은 피곤하고 그의 마음은 곤고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에는 매주 안식일을 맞이하고 있지만, 안식일을 맞이하여 안식일의 규례대로 아무런 노동을 하지 않고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만, 그 마음과 영혼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쉼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먼저는 오른손이 말라 고부라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안식일에 쉼을 누리지 못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7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여기에 등장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누가 보더라도 그 어떠한 규정을 적용하더라도 그들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제 대답해 보십시오. 안식일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고, 안식일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회당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이 바리새인들은 마음에 참된 평화와 참된 휴식을 누리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의 몸은 아무런 노동을 하지 않고 회당에 들어와 있지만, 지금 그들의 마음은 너무도 분주하고 너무도 바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병을 고치나 안 고치나 감시하고 있잖아요. 겉모습으로는 안식일을 더 이상 잘 지킬 수가 없어요. 그러나 옆에 있는 사람들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지 못 지키는지 감시하느라 그들의 마음은 분주하고 바쁘요 그래서 피곤합니다. 

혹, 여러분 중에 오늘은 우리 구역 식구 중에 누가 예배에 빠진 사람은 없나? 내 옆에 앉아서 예배 드리는 사람이 오늘 헌금을 드리나? 찬양을 부를 때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은 없나? 뭐, 이런 것에 집중하다 보면 내 마음에 쉼이 없어요. 매주 주일만 되면 아침 일찍부터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참된 안식과 참된 쉼을 누리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 눈치만 보다 왔잖아요. 교회에서 사람은 많이 만났지만, 우리에게 참된 평화와 쉼을 주시는 하나님은 만나지 못했잖아요. 그 옛날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규정이라는 자신들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다가 정작 자신은 안식을 누리지 못했던 것처럼,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 교회를 위해 온갖 봉사는 다 하지만 정작 나의 영혼에 쉼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공허한 마음만 안고 집으로 향할 수도 있습니다. 


시선을 바꾸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례에만 몰두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피곤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 8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한 가운데 서라” 그러자 손 마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합니다. 8절 마지막입니다. “그가 일어나 서거늘” 자, 이제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일어나 한 가운데 서 있는 그 사람을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회당에 있는 사람 가운데 누가 그 장면을 주목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시는 지 주시하고 있던 사람들, 곧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장면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장면을 기획하시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 보아라.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아라.” 물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지금까지 오른손 마른 사람을 수도 없이 보았지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사람이 손이 말라 고부라진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요. 그러므로 그들에게 오른손 마른 사람이 누구인지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자신이 그토록 잘 알고 있었던 손 마른 사람에 대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실, 반드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실에 대해 그들이 무관심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을 찾아보며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여러분, 찾으셨습니까?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이 손 마른 사람을 보면서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있으니, 그 사람의 생명이 죽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 사람의 죽어가는 생명의 다시 살아나지는 않는지를 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통해 예수님께서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자 하셨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지금 손이 마른 사람은 단지 손만 말라 꼬부라진 것이 아니라 그의 영홍이 메마르고 시들어 초라하게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라야 합니다. 그리고 오른 손이 마른 사람, 그의 가장 힘이 있는 오른 손이 시들어 비틀어 지고 있는 사람. 그것은 단지 회당의 중앙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고 있는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들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멀쩡해보이지만 실상은 그 사람의 오른 손이 말라 비틀어지듯이 안식일을 맞이하여 회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도 시들어 비틀어져 초라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 곧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로 하여금 손마른 사람의 모습이 곧 자신들의 영적인 상태임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예수님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또 하나의 장면이 있었으니, 그렇게 병들어 손이 마르고 시들어 비틀어진 그 사람을 예수님께서 치유하시는 장면입니다. 안식일이 돌아오고, 사람들은 회당에 앉아 말씀을 듣지만 그 안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마음과 영혼이 시들어가고 있던 바로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른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시고 그에게 새로운 쉼과 안식을 주시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로 대표되는 그들의 시선이 더 이상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향하지 않고 오직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시며 우리에게 새로운 쉼과 안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선을 고정하도록 예수님은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참된 쉼과 안식을 누리기 원하신다면 여러분의 시선을 돌리십시오.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던 시선,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와 사람들의 칭찬에 관심을 두었던 여러분의 시선을 거두십시오. 그리고 먼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십시오.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얼마나 쉼 없이 달려왔는지, 얼마나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오른손 마른 사람과 같이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영혼이 얼마나 피폐해져 있는지를 보십시오. 그리고 또 한가지, 지금도 여러분을 찾아오시며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쉼과 안식을 주셔서 다시 한번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힘차게 달려가게 하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시선을 돌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선을 맞출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곧 쉼과 안식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너의 손을 내밀라

예수님께서는 오른손 마른 사람을 회당의 중앙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라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이제 손 마른 사람을 바라보며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너의 손을 내밀라’ 오른손이 말라 구부러진 채로 회당에 앉아 있던 한 사람, 매주 안식일을 맞이하여 회당을 찾았고 회당에서 말씀을 들었던 한 사람, 그리하여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안식일의 규정을 자의든 타의든 철저히 지켰던 사람, 그러나 그의 마음에 참된 쉼과 참된 안식이 없었던 바로 그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너의 손을 내밀라.’ 

그런데 여러분, ‘너의 손을 내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이 사람은 오른 손이 말라서 꼬부라져있습니다. 지금 이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는 손을 쭉~ 펼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의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손을 내민다는 것은 손을 펼친다는 뜻으로, 대부분의 영어성경에서는 ‘stretch out’으로 번역하고 있어요. 아직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고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말라 있고, 그의 손은 여전히 꼬부라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손이 마른 그 사람에게 너의 손을 쭉 펴서 내어 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신이 손을 펼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손이 꼬부라져 너무도 오랜 세월 손을 펴본 적이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내가 손을 펼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가지고 오른 손과 팔에 힘을 주어 펼치려는 행동. 바로 그것을 예수님께서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이 말랐던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자신의 손을 예수님께 내어 밀었고 그의 손은 회복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 지금 오른손이 말라 꼬부리진 사람과 같으신 분은 안 계십니까? 주일을 맞아 예배는 드립니다. 예배에 참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옆에서 보면 주일을 참 잘 지키는 것 같지만, 여전히 마음에는 참된 쉼과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은 안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질병의 문제 때문에 마음에 쉼이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재정의 문제 때문에 마음에 쉼이 없어요. 또 어떤 분들은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로 마음에 쉼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지요. 만일 우리 가운데 그와 같은 분이 계시다면, 지금도 여러분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너의 손을 나에게 내밀라.’
‘너의 마르고 시들고 비틀어진 바로 그 손을 믿음으로 나에게 내밀라’

지금도 여러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여러분의 손을 쭉~ 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내어 놓으십시오. 지금도 여러분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어 주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주님 앞에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내어 놓으십시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회복시켜 주시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풍성한 안식과 평안을 부어 주십니다. 

 

 

누가복음 4장 38-44절 "예수님의 선물" – 치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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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장 10-17절 “예수님의 선물” – 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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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