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2020. 4. 9. 17:53

예수님은 산상보훈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6장 1절에서는 참된 신앙과 거짓 신앙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려주셨지요. 잠시 앞으로 넘어가셔서 6장 1절의 말씀을 우리가 한 목소리로 봉독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참된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입니다. 그렇다면 거짓 신앙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입니다. 아울러, 마태복음 6장 1절의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참된 신앙과 거짓 신앙의 차이를 한 가지 더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께 상을 구하는 신앙이라면 참된 신앙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신앙생활이 사람들에게 보상을 받으려 한다면 그것은 거짓 신앙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의 믿음과 우리 모두의 신앙이 거짓 믿음, 거짓 신앙이 아니라 참된 신앙이요, 참된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을 하지 마십시오. 누군가 사람들에게 보상을 받으려는 마음을 던져버리십시오. 그것은 모두가 거짓 신앙입니다. 오직 나의 믿음과 나의 신앙이 하나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하나님께 보상을 받기 위해 하십시오. 그것이 참된 신앙이요, 참된 믿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된 신앙과 참된 믿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씀하신 뒤에, 오늘 본문부터 참된 신앙, 참된 믿음을 방해하는 사탄의 매우 강력한 공격 세 가지를 지적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만 보이고, 하나님께만 보상을 받으려는 참된 믿음과 참된 신앙의 자세를 견지하는 데 방해가 되는 거대한 장애물이 세 가지있다는 것입니다. 그 첫째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재물에 대한 욕심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 재물에 대한 탐심이 자꾸 우리의 마음을 이 땅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상을 받는 일에 관심을 두게 하더라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신앙의 장애물, 그 두 번째는 오늘 본문에 바로 이어 등장하는 말씀으로 ‘세상의 염려’입니다. 뭐 그렇게 염려할 것이 많은지,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고 자꾸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상을 구하는 신앙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참된 신앙의 길을 가로막는 그 세 번째 장애물은 마태복음 7장 1절부터 등장하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태도’입니다. 내가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하고, 내가 하나님께 상을 받기 위하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데, 자꾸 다른 사람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신앙을 내가 평가하려는 유혹, 바로 그것이 참된 신앙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참된 신앙을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경계하신 이 세 가지 장애물을 잘 피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에 대한 욕심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내일에 대해 염려하는 대신, 그 모든 것을 오직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일에서 돌이켜 나 자신을 돌아보며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가 하나님께만 보이고, 하나님께만 상을 구하는 참된 믿음과 신앙을 향해 달려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원한 하늘의 것을 바라보라 

오늘은 세 가지 장애물 가운데 ‘재물에 대한 욕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19절의 말씀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 쌓아둔 재물’과 ‘땅에 쌓아둔 재물’을 비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땅에 쌓아둔 재물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9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여기서 좀은 벌레를 의미하고 동록은 곰팡이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이 땅에 쌓아둔 재물은 곤충이 먹어버리기도 하고, 곰팡이가 피어서 못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특징이지요. 예수님은 계속해서 두 번째 특징을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을 보시면,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네 이것이 이 땅에 쌓아둔 보물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물론 우리시대에는 예수님의 시대와 달리 재물을 창고에 쌓아두지는 않고, 은행 계좌에 맡겨 놓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은행 계좌에 벌레나 곰팡이가 생길 리 없고, 도둑으로부터도 비교적 안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진리가 아닌가요? 마치 시간이 흐르면 창고 안에 있는 곡식에 벌레가 생기고 곰팡이가 피듯이 우리의 돈을 은행 계좌에 넣어두면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 있을 것만 같은데, 물질이라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 그렇지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어느덧 없어지고 사라져 버려요. 어디 그뿐인가요? 나의 돈을, 나의 물질을 은행 계좌에 넣어두면 안전하게 보존될 것 같은데, 몇 푼 되지도 않는 나의 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도 많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의 재물은 유한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요. 물질만 있으면 우리 가정에 행복이 올 것 같고, 은행계좌에 예치금의 액수가 커질 수록 나의 노후는 보장되는 것 같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이 세상의 물질은 지나갑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재물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예수님은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신 뒤에,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쌓아둔 보물과 대조되는 하늘에 쌓아둔 보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늘에 보물을 가득가득 쌓아둔 사람이 있고요, 하늘에 보물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가면 누구나 다 똑같이 풍성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하늘에 보물을 쌓아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당연히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요. 


예수님께서 하루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는데 그의 밭에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스스로 말합니다. ‘내가 이제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야지, 그 안에 곡식을 가득 채워 넣어야지, 이제부터는 내가 평안히 쉬고 즐겨야지.’ 그 부자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리고 이 비유의 말씀을 다 말씀하신 뒤에, 예수님께서 이 부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십니다. 예수님의 이 평가를 귀 기울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여러분,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에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 땅에는 많은 재물을 쌓아두었지만 정작 하나님께 대해서는 가난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께 대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는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대단한 재물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재물을 주셨다면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경제적 궁핍하여서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풍성한 응답을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조금 더 풍성하게 살아가는 것, 이 세상에서 조금 궁핍하게 살아가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다 과거의 이야기가 됩니다. 이 세상의 물질과 재물은 유한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세상에서 부유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조금 부요하신 분도 계시고, 조금 궁핍한 분도 계시지만,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하나님께 대하여 궁핍하신 분이 계셔서는 안 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 가운데 단 한 분도 예외 없이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이 세상의 재물과 이 세상의 물질은 유한한 것이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 땅의 재물을 모으는 일에 그토록 골몰해 있을까요?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22절과 23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예수님은 지금 재물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인간의 신체 가운데 하나인 ‘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눈이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과연 어떠한 의미일까요? 재물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예수님은 왜 갑자기 인간의 눈이 몸의 등불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실까요?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우리의 눈이 밝아 저 하늘의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우리는 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이 이 세상의 것들, 이 세상의 물질과 이 세상의 쾌락과 이 세상의 유혹에 어두워지면 우리는 저 하늘에 재물을 쌓지 못한 채, 그저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이 땅의 것들만을 쫓아가다 인생을 마감하고 말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이 세상의 것은 덧없는 것이고, 저 하늘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설교를 듣고 얼마나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요? 이유는 간단해요. 저 하늘의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이 세상의 것이거든요.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할 기도의 제목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제발 저의 영의 눈이 열려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제발 저에게 믿음의 눈이 열려서 세상의 관점이 아닌 믿음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날마다 기도로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의 눈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세상의 것을 바라보게 되요. 그래서 자꾸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을 인식하는 거짓 신앙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대하여 깨어있으십시오. 바로 그때만이 우리의 눈이 이 땅의 것에 함몰되지 않고 저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하나님께만 상을 구하는 참된 믿음과 참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참된 신앙을 위해서는 물질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오늘 본문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도 없습니다. 한 손으로는 물질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잡으려는 자세는 불가능하다고 예수님이 분명하게 못을 밖고 계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소개했던 재미있는 이야기 한 가지가 생각납니다. 어느 농부가 목장에서 일을 하다가 얼굴에 매우 기쁜 표정을 하고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집에 도착한 그는 당장 아내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여보, 오늘 너무도 좋은 일이 있었어. 우리 소가 새끼를 두 마리나 낳았어. 한 마리 새끼는 흰색이고, 다른 한 마리 새끼는 얼룩무늬야.” 두 마리의 어린 송아지가 생겼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리고는 이 농부가 아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지금 태어난 두 마리 송아지를 잘 키워서 한 마리는 팔아서 하나님의 사업에 씁시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팔아서 우리와 우리 식구들을 위해 씁시다. 그러자 이 아내가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소를 주님의 사업을 위해 쓰면 좋을까요?” 그 남편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아직은 송아지들이 어리니 잘 키워서 나중에 어떤 소를 주님께 드릴지 생각해 봅시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몇 달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농부가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얼굴에 슬픈 빛을 띠고 집으로 달려옵니다. 그리고 아내를 부르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보, 여보, 큰일 났어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러나 아내가 다도기며 말합니다. “여보,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그러나 농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바친 주님의 소가 죽었어.”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 머뭇머뭇하면, 어제나 주님의 소는 죽고 나의 소는 살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것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주님의 사업을 위하여 여러분의 물질도, 여러분의 시간도, 여러분의 정성도 쏟아 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큰 액수, 많은 액수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담겨있는 우리의 보물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담아 여러분의 손에 있는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십시오. 그것이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서 잠시 있다 사라질 이 땅의 재물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여러분의 재물과 보물을 가득가득 쌓아놓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는 비록 가난하고, 이 땅에서는 비록 풍족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대해서는 풍요로운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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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