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2020. 4. 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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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전도서 7장 2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정직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양심은 무엇이 옳은 지, 무엇이 옳지 않은 지를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기 위해 많은 꾀를 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적절한 시점에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만들어졌기에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깨닫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말씀을 피하고 싶어요. 그래서 잔꾀를 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나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비판하지 말라

우리는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정직한 율법의 말씀에 자신의 목적을 위한 꾀를 덧입혔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의 율법, 특별히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은 ‘분명하게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의하면 살인한 자는 그가 살인을 저지른 의도가 무엇인지를 평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마음에 앙심을 품고 의도적으로 사람을 죽였다면 그는 사형에 처해집니다. 그러나 만일 의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우연히 실수로 누군가를 죽였다면 도피성이라는 장소에 피해서 또 다른 보복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일어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도피성에 대한 제도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의 말씀을 조금 변형시켰습니다. 어떻게 바꾸었지요?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고, 머저리라고 욕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무시와 멸시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정직하게 만드셨기에, 그들도 자신의 마음에 다른 사람을 향한 악한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요. 그래서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은 최소한 살인하지 않았으니 심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간의 얕은 꾀였습니다(마 5:21-26).   

 

마태복음 5장 21-26절 / 그리스도의 형제

하나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을 움직이셔서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의 형제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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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간음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지요. 구약의 율법, 특별히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은 ‘간음하지 말지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박사들이라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현재 자신들의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간음을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정직하게 만드셨어요.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양심에 비추어볼 때 간음이 죄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또다시 꾀를 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간음에 대한 율법의 예외 조항을 찾아냅니다. 이혼에 대한 예외조항입니다. 율법은 이혼을 금지하지만 만일 이혼을 하게 된다면, 여자에게 이혼 증서를 써 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예외 조항을 이용해서 자신의 아내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내어버리고 새로운 여자를 맞이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정직하게 만드셨고, 하나님은 정직한 율법을 주셨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많은 꾀들을 내었습니다(마 5:27-32).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어떻게 왜곡하였는지 정확하게 지적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산상보훈의 말씀을 지금 누가 듣고 있습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듣고 있나요? 아닙니다. 산상보훈의 말씀을 듣고 있는 청중들은 율법의 박사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도 아니요, 예수님으로부터 음식을 얻어먹거나 병 고침을 받은 많은 무리들도 아니요, 예수님께서 직접 택하시고 부르신 제자들입니다(마 5: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산상보훈의 말씀을 전하시는데, 그 내용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어떻게 정직한 율법에 인간의 잔꾀들을 포함시켰는지를 지적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5장 1-12절 / 축복의 사람

하나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주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는 팔복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 가운데 가득한 시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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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잘못을 지적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하나님의 정직한 말씀에 인간의 잔꾀를 첨가하지 말라는 예방 차원이었겠지요. 제자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길을 따르면 안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직하게 만들어 놓으신 인간은 그가 제 아무리 예수님의 제자라 할지라도, 그가 제 아무리 교회의 중직자라 할지라도, 그가 제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한 성도라 할지라도 많은 꾀를 내는 본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시십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1-2절)

예수님으로부터 산상보훈의 말씀을 전해들은 제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는 못하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비판하는 데에만 탁월한 사람들이 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상보훈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으로 우리 가족들, 나의 자녀들, 나의 친구들을 비판하는 탁월한 무기는 갖추었지만, 동일한 논리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못할 수 있는 위험이 우리들에게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산상보훈의 말씀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잔꾀를 지적하고 있지만, 그 말씀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위해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제자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매주 교회에서 듣는 하나님의 말씀, 여러분의 개인적인 경건 시간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누군가를 향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바로 여러분들을 위한 말씀이요, 여러분들이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나의 잘못에 더욱 민감하라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행하는 예를 세 가지 보여주셨습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외식으로 구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회당과 거리에서 구제를 했습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외식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였습니다. 셋째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외식으로 금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얼굴을 우거지상으로 만들고 머리를 풀어헤치거나 옷을 땅에 질질 끌면서 다녔습니다. 

회당이나 큰 거리에서 기도하고 또 구제하는 사람들, 얼굴을 흉하게 하면서 구제하는 사람들은 사실 당시 백성들에게 존경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야, 참, 저들이야 말로 경건한 사람들이구나’라고 사람들은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회당과 거리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구제하는 사람들, 얼굴을 흉하게 하면서까지 금식하는 사람들은 외식하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하십니다. 분명하게 그들의 속마음을 꼬집으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 제자들은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요? 그래, 인간은 똑같구나. 저들이 민족의 지도자들이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기 위한 심산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무시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의 원래 모습을 정확하게 꼬집으신 이유가 제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마음으로부터 무시하라는 의도였나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들과 동일한 잘못, 곧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행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교만해서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것을 가지고 나의 삶을 돌아보기 이전에 꼭 다른 사람을 평가한단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직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담스러운 하나님의 말씀을 피하고 싶어서, 그 말씀을 내가 잘 아는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3-4절)

예수님의 이 말씀에 의하면,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었던 잘못된 마음, 곧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행하고 싶은 외식하는 마음이 제자들에게도 있었다는 말씀인가요? 물론 그렇습니다. 아니. 당시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의 외식하고자 하는 마음이 어쩌면 더 크게 제자들에게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이지요.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지만 내가 열두 명의 제자로 뽑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 종교 지도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행하고 싶은 마음이 티끌 하나만큼 있었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보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의로운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티끌과 같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택함 받은 제자라고 우쭐대고 싶은 마음이 티끌과 같다면, 오늘날 교회에서 믿음 좋다고 칭찬받는 우리들,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우리들에게는 그와 같은 마음이 들보와 같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5절)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니 고린도전서 8장 1절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참으로 그렇습니다. 참으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어요. 그 지식이 설령 성경 지식이요, 하나님의 대한 지식일 지라도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말씀을 들었으면, 먼저 나에게 적용해야 할 텐데. 예수님의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으로 받아야 할 텐데. 우리는 자꾸 잔꾀를 내요. 그래서 나에게 들리는 말씀, 바로 나를 위한 말씀, 내 눈에 들보가 들어 있다고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은 우리 가족을 위한 말씀이요, 그 말씀은 나의 친구를 위한 말씀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갈등의 씨앗이 되다 

예수님께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6절) 

예수님께서 참으로 답답하셨던 것 같습니다. 오죽 답답하시면 이런 비유를 다 드시겠습니까? 지금 나에게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마치 무엇과 같습니까? 진주를 개와 돼지에게 주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십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는 개나 돼지와 같다는 의미가 아니지요. 자신에게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은 어찌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하는지, 그것이 너무도 답답하셔서, 나에게 주신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마치 개나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주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대목이 있습니다. 진주를 개와 돼지에게 던져주면 개와 돼지가 그것을 귀한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죠.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고 아무리 일러주어도, 그 말씀은 나를 위한 말씀이기에 그 사람에게는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이 우리의 주목을 끕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그 다음 구절입니다.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나를 위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자신이 깨달은 말씀을 전합니다. 내가 전해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 것을 물론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여기에서 발견하는 하나의 교훈이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는 인간의 잔꾀가 교회 안에, 그리고 가정 안에 분란이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여러분들에게 들렸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말씀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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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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