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제는 "사랑의 가정"입니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지난 이틀에 걸쳐 함께 생각해본 믿음과 소망과 함께 기독교의 3대 덕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의 마지막 구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지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먼저,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행복의 가정이 되기를 소원한다면, 우리 가정 안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기 위해 기도하셔야 합니다. 곧, 우리 가정이 믿음의 가정, 소망의 가정, 사랑의 가정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리는 행복의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은 계속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죠?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은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나를 마라라 부르라
오늘 본문은 나오미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오미의 가정은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배짱 좋게 고향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인 모압 땅으로 온 가족이 이주를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이 보기에는, 혹 자신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믿음의 결단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모든 것이 잘 풀리는 듯했지요. 두 아들은 모압 땅에서 결혼을 하고 번듯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은 바로 거기까지였습니다. 먼저는 나오미의 남편이 죽더니, 그 다음에는 첫 번째 아들도 죽고, 결국 둘째 아들도 죽었습니다.
남편이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났을 때까지만 해도 두 아들이 살아있으니 그래도 소망을 가지며 인내해보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첫째 아들도 먼저 떠나고 둘째 아들도 먼저 떠납니다. 제 아무리 소망을 가지고 인내해보려 해도 남는 것이 없어요. 모든 것이 다 떠나가고 맙니다. 그 어디에서도 소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초라하게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나오미의 가정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 19절은 믿음의 역사도 없고, 소망의 인내도 더 이상 힘을 잃어가는 나오미의 가정이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이미 모압 땅에서 남편도 잃어버렸고, 첫째 아들도 잃어버렸고, 둘째 아들까지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나오미가 고향 땅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니 주변 사람들이 놀려대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이 기쁨이라는 사람 맞아? 그러자 나오미가 대답하지요. 20절입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기쁨이라고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나를 괴로움이라고 불러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절 말씀도 함께 봉독 하겠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사람들이 나오미를 향해 놀려댑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요. 그저 수긍이에요. 그래 내가 나오미라는 이름이 안 맞지. 내가 무슨 기쁨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가? 그저 나를 괴로움이라고 불러라.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그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랑의 기적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결단하며 가정을 변화시켜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인내하며 소망을 가져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지속되는 환란 속에서 아무런 소망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음도 잃어버리고, 소망도 사라져 버린 나오미의 가정을 천국으로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룻기에서 너무나도 유명하고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 룻기 1장 16절을 함께 봉독 하겠습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이라는 덕목은 다른 모든 것들이 사라졌을 때 더욱 빛나기 시작합니다. 재물이 있을 때는 사랑이 보이지 않아요. 힘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이 가득할 때는 사랑이 보이지 않아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가정에는 사랑이 별로 빛을 발하지 못해요. 그러나 나오미의 가정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재물도 없어졌고, 남편도 없어졌고, 첫째 아들에 이어 둘째 아들도 없어졌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사라진 지 오래고, 소망의 인내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가정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으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남아 있는 끈끈한 애정이에요. 서로를 향한 사랑입니다. 비록 시어머니의 고향으로 돌아가도 농사를 지을 만한 밭 한 평 없지만 그 어머니의 곁을 지키며 다른 사람의 밭에 나가 이삭을 줍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사랑. 바로 그 사랑이 마라 - 곧 괴로움 - 의 가정을 - 나오미 - 곧 희락의 가정으로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 겹줄
사랑의 가정을 생각할 때 제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성경구절 하나가 있습니다. 전도서의 말씀인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구절이다 보니 심방을 할 때면 자주 나누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전도서 4장 12절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장 12절 말씀에 한 사람이면 어떻다고 말씀하죠? 패합니다. 여기서 이 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능력이 많은 사람이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든 상관이 없어요. 그 사람이 학식이 높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한 사람이면 패합니다. 제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한 사람이면 패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 곁에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사랑의 관계로 묶여 있으면 능히 맞설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나오미와 룻이 그 모진 시련을 견디어낼 수 있는 비결이 아니었겠습니까? 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패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오미 개인으로 보아도 그렇고, 룻 개인으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와 룻이 서로 사랑으로 함께 묶여 있으니 맞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서 4장 12절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두 사람 곁에 한 사람이 더 사랑으로 연합하면 든든한 세 겹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행복의 가정을 일구어가시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행복의 가정으로 변화시키는 도구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믿음의 가정이요, 둘째는 소망의 가정이요, 마지막 셋째는 사랑의 가정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우리 식구들이 한 사람씩 각각 마음이 나뉜다면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 가정과 우리의 자녀는 반드시 패합니다. 그러나 먼저 부부가 사랑으로 연합하여 두 사람이 된다면 어떠한 역경이 찾아와도 우리는 맞설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자녀들까지 사랑으로 묶여 있기만 한다면,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이 사랑의 가정이 된다면 그 어떠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꿈쩍하지 않는 든든한 세 겹줄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행복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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