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TV 드라마 가운데 <동백꽃필무렵>이 있습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도 작년 말 열심히 이 드라마를 챙겨 보신 분들이 적지 않게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기회에 회개하는 심정으로 고백하자면, 마땅히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야 하는 목사인 저도 이 드라마를 참 열심히 챙겨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설교는 TV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내용을 언급하며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 드라마의 여 주인공 동백이는 7살 나이에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고 보육원에 맡겨진 것으로 나오지요. 그래서 드라마의 초반부에는 주인공 동백이의 엄마는 딸을 버린 무정한 엄마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드라마의 후반부로 가면 동백이 엄마의 입장에서 지난 34년의 이야기가 새롭게 구성됩니다. 여기 34년이라는 것은 현재 여자 주인공인 동백이의 나이입니다. 자, 동백이의 엄마는 술주정뱅이 남자를 만나 딸을 출산하였지만, 그 남자의 폭력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갓난 아이를 데리고 거리로 나와야 했습니다. 그때로부터 7살 먹은 딸을 보육원에 버리기까지의 여러 가슴 아픈 사연들이 등장하죠. 엄마는 7살 동백이에게 딱 일녀만 기다리라고, 일년 동안 돈을 벌어서 다시 찾으러 오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 엄마는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딸을 버린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딸을 되찾기 위해 보육원으로 돌아가지요. 그런데 문제는 일년만 기다리라는 엄마의 부탁을 잊어버린 이 동백이는 이미 멀리 입양이 되었고 엄마는 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주인공 동백이는 입양되었던 가정에서 파양되어 다시금 고아의 신세가 되었는데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동백이의 엄마는 다시금 딸을 찾아나서죠. 그리고 엄마는 질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된 그 순간까지 딸에게 못다한 사랑을 베풀어주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동백이의 입장에서 7살 이후, 34살이 되어버린 지금까지 엄마는 자신을 버린 무정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며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편지를 통해 딸을 보육원에 버리는 한 순간의 실수는 범했을 지라도 딸에 대한 엄마의 마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가 주인공 동백이에게 남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7년 3개월이 아니라
지난 34년 내내
엄마는 너를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어.
바로 이 장면을 보면서 저의 마음에 떠오르는 성경구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서의 말씀이었지요.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시온성, 곧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시온성,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잊어버리셨구나. 하나님께서 더 이상 나의 하나님이 되기 싫어 우리를 버리셨기에 우리 유대인들이 이방민족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했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의 초반부에 여주인공이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과 동일하죠. 7살된 딸을 보육원에 버리는 무정한 엄마의 모습 말입니다.
그러나 읽어드린 이사야서 말씀의 바로 다음 구절은 예루살렘 백성들의 생각을 교정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장 15절의 말씀입니다.
TV드라마에서 엄마는 자신의 딸 동백이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7년 3개월이 아니라
지난 34년 내내
엄마는 너를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어.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10절입니다.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세례를 받으신 후 예수님께서 온 몸을 물에 흠벅 적신 상태에서 땅으로 올라오고 계셨어요. 바로 그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주목하십시오. 10절을 다시 보세요.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그 다음,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여기서 하늘이 갈라졌다는 것은 마치 극장에서 무대를 가리고 있던 커튼이 좌우로 갈려지면 커튼 뒤에 있는 장면이 비로소 드러나는 것처럼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천상의 모습이 드디어 드러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 예수님께서 인간의 언어를 말씀하시고 인간의 행동을 하시는 그 겉모습만을 바라볼 때는 결코 드러나지 않았던 영적인 세계가 활짝 열리는 장면이지요. 오늘 본문 10절을 다시 보십시오.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그 다음에 무엇이라 말씀하시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예수님의 겉모습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성자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에 대한 영적 실체를 바라본다면 그분은 언제나 홀로 계신 분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아직 오순절의 성령강림이 임하기 이전에요.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으신 분, 구체적으로 이 장면에서는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인간을 구원할 구세주, 곧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자, 하늘이 열리면서 예수님에 대한 영적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먼저는 성령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께 임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향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그분의 영적인 실체를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셔서 온 세상의 구원자, 곧 메시아를 인치시는 분이요 성부 하나님께서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언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마가라는 분이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하면서 그 첫번째 사건으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그분의 영적인 실체가 드러나는 이 사건을 매우 중요하게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 – 특별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시며 성부 하나님께서 친히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이 장면을 –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실체를 다 뒤로하고 그저 겉모습으로만 바라본다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한 거에요.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딱히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시는지 잘 모르겠는 경우가 너무도 많은 것이죠. 마치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엄마에게 버려진 이후, ‘고아’라는 낙인이 찍힌체 살아갔던 어느 TV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모습만을 본다면 너무도 초라해요. 바로 그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의 장면을 끝없이 이야기하면서 그 장면을 기억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의 겉모습은 그저 이 땅을 살았던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하늘이 열리고 영적인 실체가 드러나기만 한다면 그분은 성령께서 임하시는 온 세상의 구원자이시며 성부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부르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적인 실체가 너무도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모습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 험한 세상에서 별볼일 없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길을 뒤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이기에 하늘이 열리고 영적인 실체가 드러나기만 한다면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성부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나의 사랑하는 딸이여’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적인 실체가 너무도 분명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기는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저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분들이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이 장면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하나님은 여러분 개개인을 따로 떼어놓고 바라보시지 않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라 바라보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향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나의 사랑하는 딸이여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성령의 인도하심 그리고 천사의 수종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영적인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지요. 성령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께 임재하셨고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에 대한 영적 실체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임하시는 메시아, 성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바로 그 다음 장면에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십니다.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지금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성령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신 예수님께 이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오늘 본문 13절입니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그 다음에 무엇이죠?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이 쉽게 수긍이 되세요? 성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이라 선포하셨고 성령께서 친히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셨는데, 그 장소는 광야요, 그곳에서 일어난 일은 사탄에게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의 영적인 실체, 곧 성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요 성령께서 늘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영적인 실체는 시험이나 위기나 아픔을 조금도 겪지 않는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도, 성령 하나님도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갈보리로 걸어가시는 그 길은 막지 않으셨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은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당하셨다는 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2절부터 다시 보십시오. “성령이”,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성자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그리하여 13절을 다시 보시면,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지요. 그러나 여러분, 오늘 본문은 여기서 멈추지 낳고 너무도 의미 있는 장면을 묘사해줍니다.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그 다음이 뭐죠?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성부 하나님도, 성령 하나님도 성자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받는 것을 내버려주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의 갈보리의 십자가 길을 걷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도, 성령 하나님도 그 모든 순간에 성자 예수님과 함께 하시며 천사로 하여금 예수님을 수종들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간직한체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시험을 넉넉히 이기며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험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고난이 있다고요? 여러분의 삶에 시험이 찾아온다고요? 여러분의 삶에 십자가를 지는 듯한 아픔이 있다고요?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장면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눈을 열어 영적인 실체를 바라보며 다시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이십시오. 성자 예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 안에 함께 거하시며 여러분의 인생을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하여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나의 사랑하는 딸이여,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의 이 변하지 않는 사랑을 마음에 간직할 때 우리는 어떠한 시험이 찾아와도 넉넉히 이길 수 있으며, 마침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https://m.blog.naver.com/practicaltheologian/223286866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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