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2020. 5. 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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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사건은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사건이 된다. 
이것이 이야기, 곧 내러티브가 부리는 마법이다. 

 

직지 1
국내도서
저자 : 김진명
출판 : 쌤앤파커스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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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2
국내도서
저자 : 김진명
출판 : 쌤앤파커스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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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느 노 은퇴교수의 살해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책의 중심 이야기는 고려에서 시작된 금속활자 기술이 조선 시대 주자공의 딸로 태어난 한 여인의 발걸음을 따라 독일의 구텐베르크에게까지 전달되는 여정이다. 노 교수의 살해 사건과 이를 추적하는 여기자의 이야기는 직지와 훈민정음, 그리고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 이야기를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직지와 훈민정음, 그리고 금속활자의 전파라는 과거의 이야기만으로도 작가 김진명이 우리 시대에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될 터, 그러나 작가는 현대적 인물인 김기연 기자의 입을 통해 그 의미를 보다 명시적으로 서술하고 싶은 듯하다. 

"직지는 인간 지능의 승리입니다. 맹수에게 이빨과 발톱이 무기이듯 인간에게는 지식과 정보가 무기입니다. 그 지식과 정보를 가장 정확하고 깔끔하게 기록하고 전달하는 장치가 바로 금속활자입니다. (중략) 직지와 한글은 그 존재 자체가 소수의 독점으로부터 지식을 해방시켜 온 인류가 손잡고 동행하자는 지식혁명입니다. 이기심에서 벗어나 이타심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위대한 메시지가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2권 263쪽) 

인간이 역사를 서술하고 읽는 이유,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읽고 자신의 묵상과 기도로 바꾸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의 사건과 과거의 서술이 오늘날의 독자에게 이야기로 되살아 날 때 과거의 이야기는 오늘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석의 권위를 가진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과거의 이야기는 시간이라는 굴레와 소수의 독점이라는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김진명, <직지:아모르 마네트>

기독교인으로, 그리고 목회자로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모습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오로지 하느님이 하라는 대로 할 테니
천국에만 보내주십시오. 하는 건 얼마나 천박한가" (2권 89쪽) 

바티칸에 막 도착한 은수는 재판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으면서도 마지막까지 당당했던 한 죄인의 목소리가 가슴에 남았다. 질문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며 그저 맹종을 요구했던 중세 가톨릭 교회의 천박함을 당당히 지적한 음성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이, 그리고 중세 유럽에서는 가톨릭이 책으로 대표되는 지식을 독점하고 이를 이용하여 종교권력을 행사했지만, 그러한 시대에도 지식혁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의 세종이 그러했다면, 중세 유럽에서는 쿠자누스가 그와 같은 인물로 이 책에서는 그려진다. 작가 김진명은 과거의 은수와 현대의 김기연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었지만, 기독교 목회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는 쿠자누스에게 관심이 가는 것이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코리의 임금이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고, 금속활자로 인쇄하려 한다는 먼 나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쿠자누스가 그 자리에서 올린 기도는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이 되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신 건 어리석은 우리에게 희생을 가르치려 하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땅의 권력자들은 약하고 가난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희생할 줄 모릅니다. 도리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이적을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섬기게 하는 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 대열의 맨 앞에 서 왔음을 고백하오니 저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멀리 코리의 왕이 자신들의 백성을 위하여 글자를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을 통해 오늘 하느님 아버지께서 제게 일깨워 주신 뜻을 깊이 깨닫고자 합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저를 섬기게 하지 말고 저로 하여금 백성을 섬기게 하라는 소명임을 직관하였는 바, 저는 당신께서 카레나를 통하여 제게 계시하신 대로 금속활자를 퍼뜨리는 데 소임을 다하고자 하나이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2권 181-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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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