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2020. 11. 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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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진 피터슨의 유고집이다. 그는 그의 아들 에릭 피터슨 목사와 자주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목회의 사명을 성찰하는 편지를 교환하였다. 그의 사후, 그 편지들이 묶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아들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편지였기에 이 책에는 목회에 대한 유진 피터슨의 진솔한 심정이 진하게 배어있다. 


상품화된 목회 프로그램 

유진 피터슨은 목회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영성 형성이라고 말한다. 목사 자신의 영성을 형성하는 과정, 그 위에 성도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목회 여정이다. "영성 형성은 우리가 일하는 기반이며, 적어도 목회 소명이 가장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리는 기반이지,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것을 가볍게 무시하는 것 같구나."(p. 70) 영성 형성이 목회 사명의 기반이지만, 실제로 많은 목사가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푸념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중요한 이유로 유진 피터슨은 소비지상주의를 지적한다. "목회와 교회 생활을 너무나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두루 퍼져 우리 삶을 지배하는 소비지상주의인 것 같다.... 우리는 요람에서부터 소비자로 키워졌지, 소비자는 수동성과 물성의 전형이다. 이 소비자성이 교회 생활을 포함하여 사회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의 분위기를 조성한단다."(p. 49) 

현대 문화의 핵심인 소비지상주의는 목회 영역에서는 프로그램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포장된 상품을 사는 일과 프로그램에 동원되는 일을 잘 안다. 그리고 그것을 좋아하지. 그것이 관계에 충실한 인간이 되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상품으로 제공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프로그램으로 제시하는 교회로 향하며 그런 교회를 좋아한다. .... 어찌 보면 상품 교회, 프로그램 교회가 번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소비문화에 맞게 재편된 복음이라 할 수 있지."(p. 51) 

현대 문화의 소비지상주의와 목회 현장의 프로그램 중심 현상은 너무도 거대한 흐름이어서 쉽게 거스르기 어렵다. 문제는 상품과 프로그램이 인격성을 그 중심에 두어야 하는 목회를 물화시킨다는 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날의 목사가 이와같은 거대한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까? 유진 피터슨의 글에는 상품화와 프로그램화의 경향을 변화실 수 있다는 희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목사 개인이 이러한 흐름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가 할 일은 포장하기와 프로그램 운영을 계속 경계하고 (물론 그것들 없이 교회 일을 해나갈 순 없겠지) 인격적 요소를 내세울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인 듯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름을 부르고 단어 선택이나 메시지 전달 방법에서 비인간화된 형태의 대화를 최대한 피하도록 하자. '효율성'이 모든 것을 좌우하도록 허용하지 말자꾸나."(p. 53) 


목사의 길 

소비지상주의와 프로그램 중심의 목회 현장은 목회의 인격성을 추구하는데 큰 방해물이다. 그러나 목회의 인격성을 손상시키는 위험은 목사 자신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목사라는 직업 자체가 오히려 영성 형성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룩한 단어와 거룩한 대상을 많이 다룰수록,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우리 전 존재의 근거가 되시는 삼위일체의 신비하고 거룩하고 충만한 행위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둔해진단다."(p. 44) 

목사는 목회의 인격성을 상실하고 모든 대상이 물화되는 현실을 겪으며 그 돌파구로 사역지를 옮기는 방법을 간구하기도 한다. "목회자가 경력 중간에 찾아오는 침체형 피로와 그에 따른 권태감을 다루는 표준적 해결책 하나는 교회를 옮기는 것이다."(p. 151) 그러나 유진 피터슨은 이것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거의 언제나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손쉬운 해결책이고, 결국 네 삶이 성령 안에서 인격적, 소명적으로 깊어지는 것을 가로막는단다."(p. 151) 

유진 피터슨은 그 대안으로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사가 묵묵히 걸어야 할 길은 보여준다. "남을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성공을 추구해서도 안된다."(p. 216) "이천 년에 걸친 목회 전통의 공통 요소는 '일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인간 및 하나님과 관련하여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 일은 구체적인 현장에서 일어나고 철저히 인격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p. 217) 

이 책에 수록된 서른일곱개의 편지에는 날짜가 기록되어있고, 그 시간의 순서에 따라 편집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이 소개하는 유진 피터슨의 편지를 한통씩 읽으며 어느 진실한 목사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듯했다. 비록 세상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목사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발자취는 편지를 읽는 나도 익명으로 그 길에 동참하라고 초청하는 듯했다. "매일매일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다. 너, 우리 W 목사님, 너의 회중에 있는 린다, 책을 쓰는 나, 그리고 다른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있기에 교회는 산산조각 날 위험이 없다."(p. 160) 

 

젊은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국내도서
저자 :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 홍종락역
출판 : 복있는사람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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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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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2020. 11. 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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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예측'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이후, 그리고 최근의 디지털 혁명으로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 무한에 가까운 정보는 보다 정확한 예측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촉진하였는가? 네이트 실버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정보의 양은 무한정 늘어났지만, 그 안에서 신호와 소음을 구별하고 신호에 근거해 보다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여전히 초라한 성적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른바 각 분야의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의 예측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다. 네이트 실버는 전문가의 예측이 가장 크게 실패하는 영역으로 정치와 경제를 꼽는다. 정치평론가들이 수많은 예측을 내어 놓지만 그 가운데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는 무작위로 내어놓는 예측이 현실이 될 확률보다 그 다지 높지 못하다. 심지어 전문가들이 복잡한 계산으로 내어 놓은 경제 분야의 예측도 현실이 되는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전문가들도 소음에 섞여 있는 신호를 정확히 구별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측의 실패 요인 

 

예측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분야가 있다. 날씨는 지진보다 예측의 정확도가 높은데, 기상을 측정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많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데 반하여 현재의 기술로도 여러 지층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료가 풍부할 때에도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는 무수히 많은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과잉적합(overfitting)이다. 과거에 일어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도하게 복잡한 모델을 만들면, 과거의 현상을 잘 설명하기에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미래를 예측하기에는 부적절한 모델이 되는 현상이다. 

 

이 책에는 신호와 소음을 혼돈하는 많은 이유가 등장하지만,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예측이 빗나가는 결정적인 원인은 예측가의 자만심이다. 많은 전문가가 자신이 제시한 예측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모든 모델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양질의 정보에 근거하여 최선의 예측을 내어놓으면서도 예측이 빗나갔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예측은 빗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얼마나 빗나가는지 그리고 빗나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또 빗나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예측과 관련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p. 345) 그럼에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주장에 확신을 가지고 예측을 하는 경우가 많다. 네이트 실버는 이와 같은 예측을 평가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복잡한 현상을 예측하면서 지나친 확신을 보이는 건, 이 예측이 해당 문제를 철저하게 고찰한 뒤에 나오지 않았거나 통계 모델에 대한 과잉적합의 오류를 범하고 있거나 또는 진리에 다가서는 것보다 명성을 얻는 데 더 큰 관심이 있다는 징표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p. 592) 

 

 

보다 정확한 예측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에서 네이트 실버가 제시한 보다 정확한 예측법은 크게 두 가지로 통한다. 먼저 여우의 법칙이다. (pp. 101-110) 

 

여우의 법칙 1 - 확률적으로 생각하라 

여우의 법칙 2 - 날마다 새로운 예측을 하라 

여우의 법칙 3 - 집단 지성을 활용하라 

 

여우의 법칙과 함께, 네이트 실버는 베이즈 정리가 모든 예측의 기본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마스 베이즈(Thomas Bayes)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은 무결점의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인간이 진리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확률을 무지와 지식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지점으로 이해하게 됐다. '확률'을 더 철저하게 이해하는 일이 과학(진보)의 필수 요건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p. 364) 

 

베이즈 정리의 수학적 형식에서는 '사전 확률'과 '사후 확률'의 개념이 등장한다.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의 추론이 사전확률이라면 그 사건을 겪으며 확률을 새롭게 수정한 것이 '사후확률'이다. 그러니 베이즈 정리는 네이트 실버가 강조하는 여우의 법칙과 일맥상통한다. 베이즈 정리는 먼저 진리를 확률적으로 접근하고(여우의 법칙 1), 사전 확률에 새로운 사건을 받아들여 사후 확률을 도출하며(여우의 법칙 2), 이 과정에서 집단 이성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여우의 법칙 3). 여기에 베이즈 정리의 장점이 등장하는데, 확률의 개념으로 예측 활동에 불확실성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지나친 자만심과 확신을 배격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증거가 등장할 때마다 사전확률을 수정하여 조금 더 정확한 사후확률을 도출한다. 

 

 

이 책의 주제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그러나 예측이 현재 주어진 정보에서 소음을 거둬내고 신호를 조합하여 의미있게 실체를 찾아낸다는 점에서, 이 책이 말하는 예측은 현실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인식과 평가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예측은 기본적으로 정보 처리의 한 유형, 즉 새로 나타난 자료를 이용해서 세상에 대해 더 진리에 가깝고 더 정확한 개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한 마디로,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여우의 법칙이나 베이즈의 정리는 진지하게 참된 것(진리)을 찾고 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소중한 지혜라 하겠다. 

 

 

신호와 소음
국내도서
저자 : 네이트 실버(Nate Silver) / 이경식역
출판 : 더퀘스트 201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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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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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2020. 10. 2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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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독교는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충분히'라는 어정쩡한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기독교의 공적 역할에 있어 그 방향과 범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든 그렇지 않든, 기독교의 공적 역할에 대한 생각이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한국 기독교가 공적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공감대를 이룬 듯하다. <광장에 선 기독교>(A Public Faith)에서 미로슬라브 볼프가 지적하는 문제의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의 신학적 배경은 분명히 서구의 기독교이지만 기독교가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현실 인식은 한국의 기독교와 다르지 않다. 

 


기독교의 기능장애 

미로슬라브 볼프는 공적 역할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하는 기독교의 모습을 '기능 장애'라고 표현한다.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예언자적 종교가 공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상승'(ascent)과 '회기'(return)가 바르게 일어나야 하는데, "기독교 신앙이 신비주의 종교처럼 실천되어서 상승이 창조적인 회귀로 이어지지 않고 황량한 회귀가 될 때 기능장애가 일어난다"고 설파한다(p. 30). 볼프는 기능장애의 현상을 두 가지로 묘사한다. 그 하나는 나태함이고 다른 하나는 강요다. 나태함이란 신앙을 개인의 내면으로만 간직한 채 공적 영역에서는 세속적 가치관을 따라가는 신앙을 말하며, 강요란 기독교 신앙을 공적 영역에서 드러내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신앙을 강요하는 태도다. 

신앙의 기능장애인 나태함과 강요는 서로 상반된 개념인 듯 보인다. 이른바 신앙이 약하면 신앙을 그저 마음에만 간직하는 나태함에 빠지고 신앙이 강하면 다른 사람에게까지 신앙을 주입하려는 강요로 이어지는 듯 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양 극단의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는 하나의 범주에 속한다는 지적은 이 책이 선사하는 매우 탁월한 식견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볼프는 두 개의 대조적인 개념을 표층적 신앙과 심층적 신앙으로 제시한다. 신앙의 기능장애로서 나태함과 강요는 정반대의 현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표층적 신앙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기독교의 폭력에 대한 치유책은 기독교 신앙에 덜 충실한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정의된 의미에서의 기독교 신앙에 더 충실해지는 데 있다." (p. 70) 

"표층적이면서 열정적인 신앙의 실천은 폭력을 촉진하기 쉬우나 심층적이면서 전적으로 헌신된 실천은 평화의 문화를 낳고 유지된다." (p. 71) 


심층적 신앙 

기독교의 기능장애, 곧 나태함과 강요를 극복할 수 있는 심층적 신앙인의 공적 기능은 어떠해야 하는가? 기독교의 공적 역할에 대한 대안을 묻는 이 질문에 답하는 대목이 <광장에서 선 기독교> 제 5장 "정체성과 차이"다. 여기에서 미로슬라브 볼프가 제시하는 대안은 '내부적 차이'다. 

"기독교를 구분하는 차이는 늘 주어진 문화 세계에 내부적이어야 한다." (p. 132) 

저자가 주장하는 내부적 차이는 예시를 통해 보다 분명해진다. 

"식생활의 예를 계속 들자면, 식사라는 것은 꼭 개인 또는 공동의 본능적인 만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눔과 예배의 표현이 될 수 있다." (p. 135) 

"환대의 장소가 되려면 안방은 좀 줄이고 손님용 방을 만들고 거실을 크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문화 안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두번째 방식을 깨닫게 해 준다." (p. 135) 

식문화 및 주거문화와 같은 우리 사회의 문화로부터 기독교인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미로슬라브 볼프는 기독교의 공적 영역이 우리 시대 문화의 외적 요소를 거부하거나 변화를 강요하는 외적인 차이와 정체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지만 그 안에 기독교의 정체성을 담지하는 내적인 정체성과 차이를 말한다. 그러니 이러한 변화는 나태함이나 강요와 다르고, 표층적 신앙을 넘어 심층적 신앙으로 들어가야만 가능한 공적 역할이다. 

"그리스도인이 한 문화에서 갖게 되는 정체성이란, 크고 작은 거부, 차이, 전복들, 그리고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대안 제시와 시행을 통해, 많은 문화적인 제약을 수용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가는 복잡하면서도 유연한 네트워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p. 137)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어진 문화 속에서, 문화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으면서 그 문화에 이질적인 것을 계속해서 도입하는 것이다."(p. 138) 

 

광장에 선 기독교
국내도서
저자 :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 김명윤역
출판 : IVP 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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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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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2020. 10. 2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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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복음의 진리를 교회 안에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가 확신하고 선포한 복음은 이신칭의로 알려져 있다. 곧, 행위나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다. 그러나 마틴 루터의 초기 작품 가운데 복음에 대한 이해가 명료하게 드러난 <크리스천의 자유>는 복음의 진리를 두 가지 명제로 요약한다. 그리고 이신칭의는 두 가지 명제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개신교회가 이신칭의에만 집중한다면, 루터가 발견한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계승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마틴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는 공개장'(서문)에서 자신이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걸은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루터가 보기에 가톨릭교회의 도덕적 타락도 문제였지만, 그 모든 것의 뿌리는 불경건, 곧 신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었다. 

사실 나는 불신적(不信的) 교훈을 날카롭게 공격했으며 나의 대적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부도덕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불경건 때문이었습니다. [각주:1]

나는 어느 사람과도 그의 도덕에 관해서 싸우지 아니하고 다만 진리의 말씀에 관해서만 싸운다고 말할 때 나를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다른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에게나 무엇이든지 양보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려는 힘이나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대해서 달리 생각한다면, 그는 내가 실제 말한 바를 올바로 생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틴 루터가 그토록 수호하기 원했던 '경건'의 내용은 무엇인가? 마틴 루터는 <크리스천의 자유>에서 복음을 다음의 두 명제로 요약한다. 

(1) 크리스천은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만물의 주(主)이며 아무에게도 예속하지 않는다. 
(2) 크리스천은 더할 수 없이 충의로운 만물의 종(從)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한다. 

루터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의인이면서 죄인'이라고 정의하였는데, <크리스천의 자유>를 저술하면서도 두 가지 명제로 구성된 역설을 사용한다. 역설이란 언듯 보기에는 논리적 충돌로 보이나 실상은 진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루터는 크리스천의 자유는 '만물의 주'이면서 동시에 '만물의 종'이라고, 아무에게도 예속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예속한다고 역설의 기법을 사용한다. 물론 루터에게 있어 첫 번째 명제가 두 번째 명제보다 우선한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는 길은 오직 언약의 말씀을 신앙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무와 열매가 따로 떨어질 수 없듯이 마틴 루터가 제시한 두 가지 명제는 함께 있을 때에만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표현한다. 그러므로 마틴 루터의 주장은 분명하다. '선한 열매를 원하는가? 그러면 좋은 나무를 심으라.' '좋은 나무를 심었는가? 그러면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크리스천은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하지 않는다. 이것은 복음이 선사하는 놀라운 크리스천의 자유이지만, 복음의 한쪽 측면이다. 복음의 다른 측면은 크리스천이 더할 수 없이 충의로운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한다는 사실이다. 루터는 이것을 그리스도와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로 설명한다.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는 모든 만물의 주가 된다. 그러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만물의 종이 된다. 

크리스천은 그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고 우리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신앙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사랑으로 그의 이웃 안에서 산다. 신앙에 의하여 그는 그 자신 이상으로 하나님에게 올리워지며, 사랑에 의하여 그는 그 자신 이하로 이웃에게 내려간다.

신앙으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얻는 자유도 그리스도인의 자유요, 사랑에 근거한 선행도 그리스도인의 자유다. 그런데 오늘날의 개신교가 신앙으로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는 크리스천의 자유만 중요하게 여기고, 사랑으로 이웃과의 관계에서 만물의 종이 되려는 자세를 포기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것은 루터가 강조한 크리스천의 자유에 있어 절반에만 해당하는 데도 말이다.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
국내도서
저자 : 말틴 루터 / 지원용역
출판 : 컨콜디아사 200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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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에서 인용문은 지원용이 번역한 <종교개혁 3대 논문>을 사용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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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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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2020. 8. 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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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재앙을 맞이할 때 기독교인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톰 라이트의 <하나님과 팬데믹>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하나의 신학적 응답이다. 


쉽게 떠오르는 반응 

코로나 바이러스를 비롯한 거대한 재앙을 해석하는 신앙인의 일반적 관점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앙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생각이다. 아울러, 종말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징조라는 관념, 인간의 교만을 꺾으시려는 하나님의 교훈이 담겨있다는 주장, 심지어 고난을 통해 축복을 주시려 한다는 해석 등이다. 톰 라이트는 이러한 생각과 해석을 비신학적, 심지어 이교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피상적인 해석과 반응을 비판하며 톰 라이트는 '자판기 신학'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하는데 죄 하나를 넣으면 벌 하나가 나온다는 의미다. 

톰 라이트는 거대한 재앙을 해석하는 고대 철학자들의 자세도 기독교 안에서 발견한다. 고통스러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러한 세상에 순응하려는 스토아 학파,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오늘의 쾌락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 학파, 그림자에 불과한 현세보다는 내세의 기쁨을 추구하는 플라톤 학파가 그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 모든 자세도 기독교적이거나,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하여 톰 라이트는 이 책을 시작하며 이렇게 단언한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마음 속에 쉽게 떠오르는 자동적인 반응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8쪽) 


온라인 예배의 위험성

코로나의 확산으로 교회는 시설을 폐쇄해야 했고, 그 대신 많은 교회가 온라인으로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교회마다 온라인 콘텐츠 경쟁에 뛰어드는 양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코로나 이전과 이후 비기독교인의 교회 코텐츠에 대한 관심도는 전혀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보다 시선을 끌만한 영상을 제작하여 업로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이 위기의 시대에 기독교 안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할 뿐, 그 모든 노력이 교회 바께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 

톰 라이트 역시 이 책에서 온라인 예배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지적한다. 이는 예배당에 모이지 못하니 불완전한 예배라는 둥, 가정에서 예배하기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못한다는 둥의 피상적인 분석이 아니다. 그가 지적하는 치명적인 위험성은 이미 서구 기독교가 안고있는 문제점이며 수많은 신학자들이 지적한 '종교의 사유화'다. "대중의 사고에서 기독교 신앙은,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듯 공적인 삶에는 전혀 자리가 없다는 의미에서 '사적인' 운동으로 축소되어 버렸다."(120-121쪽) 그러니 예배당의 문을 닫아야 하기에 온라인 콘텐츠로 경쟁하려는 교회의 현실은 '마음 속에 쉽게 떠오르는 자동적인 반응'의 하나일 뿐, 재앙을 맞이한 그리스도인의 대안적 자세일 수 없다. 


탄식, 그리스도인의 시대적 사명 

마음 속에 쉽게 떠오르는 자동적인 반응을 거부해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톰 라이트의 대답은 '탄식'이다.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해 보라.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던 모습, 겟세마네 동산에서 탄식하셨던 모습,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울부짖으셨던 모습에서 기독교는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를 발견한다. 로마서 8장은 하나님의 섭리를 힘 있게 선포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러나 이 구절 바로 앞에 사도 바울은 모든 만물이 지금도 탄식하며, 우리 그리스도인도 탄식하고, 우리의 탄식은 성령의 탄식과 연결된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탄식하며 기도하는 것, 이것이 톰 라이트가 신약성경에서 발견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다. "기도하는 것, 고통받는 세상에서 말없이 기도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소명이다."(85쪽) 

하나님과 팬데믹
국내도서
저자 : 톰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 / 이지혜역
출판 : ㈜ 비아토르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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