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면, 더욱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곤 합니다. 특별히 한반도의 국제 정세가 시시각각 변할수록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던 느헤미야의 기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6절은 이렇게 말씀하지요. “이제 종이” 여기에 등장하는 ‘종’은 느헤미야 자신을 가리킵니다.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곧 느헤미야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보문 느헤미야 1장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느헤미야의 간절한 기도인 것입니다. 이 시간 느헤미야의 기도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느헤미야와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우리의 기도 역시 느헤미야의 기도처럼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바른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민족의 형편을 살피다
느헤미야 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아닥사스다 왕이 다스린지 20년째 되는 해 기슬르월입니다. ‘기슬르월’은 양력으로 하면 11월에서 12월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매우 추운 겨울이지요. 그때 느헤미야는 수산 궁에 있었습니다. 수산 궁은 페르시아 황제들이 사용하던 겨울 궁전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그때는 매우 추운 겨울이었기에 아닥사스다 왕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수산 궁에 있었던 것이지요. 느헤미야는 유대인이었지만 이방 나라 페르시아의 고위 관료가 되어서 아닥사스다 왕을 보좌하는 고위 공무원으로 황제와 함께 수산 궁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직업의 종류가 무수히 다양해진 지금 시대에도 한 나라의 고위 관료가 된다는 것은 높은 지위와 명예를 거머쥐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물며, 직업군이 단순했던 고대사회에서, 그것도 전 오리엔트 지역을 다스리던 페르시아의 고위 공무원이 되어 황제와 함께 겨울 궁인 수산 궁에 있었다는 것은 느헤미야가 누리고 있었던 명예와 권력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느헤미야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작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2절을 보시면 “내 형제들”, 곧 유대인 가운데 한 사람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대에서 수산 궁으로 왔습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질문을 하죠.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에 대해 물어봤어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3절입니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3절)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형편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그 지방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는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 전해 들은 지금은 이미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많은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간 이후입니다. 스룹바벨을 필두로 한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그곳에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재건되었다고 그들의 생활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전이 있고 예배는 드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은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었던 것이죠. 그 이유가 3절 뒤쪽에 등장합니다.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성벽이나 성문은 성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시설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은 불탔으니 예루살렘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방어 수단이 그 무엇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칼과 창으로 무장한 소수의 무리들이 침입을 해도 막아낼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주변 나라들도 예루살렘의 이와 같은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침략하고 약탈해갔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느헤미야가 하나니로부터 전해 들은 예루살렘 백성들의 형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의 형편을 전해 들은 느헤미야의 반응이 4절에 등장합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4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립니다. 한시간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수일 동안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와 민족을 위한 진실한 기도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요? 우리의 귀를 열어 주변 사람들의 통곡 소리를 듣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역사의 현실을 분명하게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 곧 기도의 사람에 대해 바르지 못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기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귀도 막고 오직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사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은 채, 영적인 일에만 집중하고 신비한 체험만을 추구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막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일에는 눈을 감으면 우리의 기도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소망만을 간구하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기적인 기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더라도 백성들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기에 실체가 없는 공허한 기도가 되기 쉽지요.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갑과 을의 관계에서 눈물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눈을 열어 그들의 눈물을 볼 수 있어야 나라와 민족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더욱 진실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울러,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20대 청년들의 정신질환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곧 나의 아픔이요, 우리 가족의 현실로 받아들일 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우리의 마음으로는 멀리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너무도 가까이 거주하는 북한의 주민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그들이 당하는 그 거대한 환난과 아픔을 마음으로부터 공감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실한 마음으로 이 땅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다
예루살렘의 형편을 전해 들은 느헤미야는 온 마음을 다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5절부터 등장합니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5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백성들의 형편을 직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현실이 제 아무리 비참할지라도 느헤미야는 절망하기보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붙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 첫째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입니다. 5절을 다시 보십시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느헤미야는 자신의 민족에게 큰 문제가 있고 환난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 소식으로 말미암아 수일 동안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지만 그 문제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개인에게도 수많은 문제들이 있으시지요? 여러분의 가정에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하시지요? 우리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바라볼 때 도저히 해법이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가득해 보이시지 않나요? 북한의 핵 위협이 사라지고 적대관계에 있던 남과 북이 복음으로 통일을 이루는 그 날이 묘연하게만 여겨지지 않으세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는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오랜 시간 슬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한 가지 사실만큼은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 모든 문제보다 크십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기 민족 유대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똑똑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 첫번째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 두 번째는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5절을 다시 보십시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모세가 활동하던 시대,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 되겠다는 약속, 곧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에게 있었죠. 곧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습니다.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7절)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온갖 죄를 저질렀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요. 자기 백성 이스라엘, 자기 민족 유대인들의 모습만 본다면 느헤미야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어요. 그러나 느헤미야가 알고 있는 또 한 가지 사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늘 배반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주신 언약을 끝까지 지키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9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9절)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확신하는 성경 구절들이 한두 구절 이상은 다 있으시지요? 비록 그 말씀이 아직은 현실이 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약속하신 바를,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옛날 유대민족을 향해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은 오늘 우리 민족과 우리 대한민국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돌이켜 주님을 섬기는 민족이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열방을 축복하는 제사장 나라를 삼아 주실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 첫번째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번째는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었지요. 마지막으로 느헤미야가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 세 번째는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입니다. 5절 마지막을 보십시오.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성경은 인간을 긍휼히,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에 대해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출애굽 사건이지요. 이스라엘은 민족은 있었지만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애굽이라는 강대국의 노예였습니다. 정치 조직도 없었고, 경제력도 없었고, 교육받은 인재도 거의 전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저 긍휼히 여기셔서, 불쌍히 여기셔서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삼아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느헤미야 역시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출애굽의 사건을 상기합니다.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0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340년간 종살이를 하였다면 우리 민족은 일제치하 36년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었던 정치 조직, 경제력, 독립을 위한 전략. 그 어떤 것도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 민족에게 해방의 기쁨을 주셨잖아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민족상잔이라는 거대한 슬픔과 아픔의 시련이 찾아왔지만 긍휼히 풍성한 하나님은 민족상잔의 아픔을 치유하여 주시고 이토록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우리 민족을 계속하여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긍휼이 여러분 개인과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와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 위에 흘러넘치기만 한다면, 지금 우리의 처지와 형편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와 행복의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
느헤미야는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였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였지만, 큰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십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관원이 되었느니라 (11절)
11절의 마지막을 보십시오. “그때에 내가 왕의 술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헤미야가 오늘날 청와대 비서실장과 비슷한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느헤미야는 술관원의 자리를 발판 삼아 유대 땅의 총리로 임명을 받습니다. 유대 총리로서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의 지도력 아래에서 예루살렘의 성벽이 재건되고 백성들의 환난과 능욕이 평화와 기쁨으로 변하는 역사의 여명이 이제 시작하는 첫 번째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 개인의 문제, 가정을 위한 기도에 머무르지 마시고 우리 나라와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나의 것을 삼아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우리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 땅 한반도에 참된 평화를 베풀어 주시며,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열방을 축복하는 거룩한 제사장 나라를 반드시 삼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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