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길에 좋은 선물을 가득 쌓아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좋은 길로 나아오라고 초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쌓아놓으신 선물까지 가는 길이 어둡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라” 지금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입니다. 75세 된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자신의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사람,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집트의 황제 파라오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모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파라오는 온 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는 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파라오에게 나아간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사람은 여호수아였습니다. 그의 사명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호수아 시대 가나안 땅에는 이미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에 들어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전쟁을 치러서 승리해야 합니다. 가나안에 살고 있는 민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삶의 터전을 다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들지요.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용기를 내어 가나안의 민족과 전쟁을 수행하는 일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한 분만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하고 있는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다윗의 믿음,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다윗의 용기가 함께 만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놀라운 은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크고 놀라운 선물을 우리 인생길 곳곳에 가득 쌓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다만 그 길이 어둡고 캄캄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이란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용기를 내어 그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여인
누가복음 8장에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바로 그 여인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용기를 주시는지가 오늘 성경 본문입니다. 누가복음 8장 40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라”
큰 무리가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예수님을 만나자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지금 예수님 주변에 예수님의 제자들만 있습니까? 아니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까?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바로 그때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와 한 가지 중요한 부탁을 합니다. 41절과 42절입니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자, 이제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부탁을 받으시고 그의 딸을 고쳐주기 위해 야이로의 집으로 걸어가고 계십니다. 성경은 그의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막 죽어가고 있는 딸을 놓고 예수님께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고 있는 야이로는 마음이 다급합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발걸음을 재촉하여 한시라도 빨리 딸에게로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다급한 발걸음을 멈춰 세운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8장 43절과 44절입니다.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우리는 그의 이름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짐작하건데,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 가운데서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 여인의 특징은 혈루병이 아주 심하게 들었습니다. 혈루병이란 여자의 하혈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피를 흘리는 병이지요. 그런데 그 병을 12년 동안이나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먼저 혈루증이라는 병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12년 동안 계속해서 피가 흐르니 생활 자체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 병을 고치기 위해 사방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치료받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생활을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고칠 수 없는 이 혈루증이라는 질병이 그 여인에게 큰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여자가 하혈하는 기간 동안 그 여자가 부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경우 12년 동안 하혈이 계속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12년 동안 부정한 겁니다. 사람들은 12년 동안 이 여인이 부정한 여자라고 여기며 그를 멀리했습니다. 그러니 이 여인은 자신을 부정하다고 피하는 사람들이 또 두려운 겁니다.
그리고 나아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신 하나님까지도 두려웠습니다. 12년 동안 그 여인의 마음에 쌓인 두려움으로 그 여인은 누구에게도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그 여인의 마음에 이처럼 무서운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에게 믿음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습니다. 누구에 대한 믿음이죠?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마음속에 가득한 두려움이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가급적이면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여인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목소리를 크게 높이지 못하고 언제나 두려움에 갇혀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 안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겁니다. 누군가 그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환자들을 고쳐주시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생긴 겁니다. 자신의 병도 예수님께서 고쳐 주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고칠 수가 없었지만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그 여인의 마음속에 싹트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 여인은 두려움이 갇혀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 깊은 곳에서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예수님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의 12년 묵은 병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많은 무리들 한가운데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이 여인이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 돌아오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이 여인은 언제 예수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좋을 것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이로가 예수님을 급히 모셔가고 있습니다. 그 발걸음이 급한 것으로 보아 자신이 조심스럽게 예수님 곁으로 다가가 옷자락을 잠시 만지고 돌아가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자신의 계획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 여인의 믿음대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순간 혈루증이 깨끗해졌습니다.
누가복음 44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여인은 차마 예수님의 앞으로 가지 못하고 예수님의 뒤로 갑니다.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혈루증은 계속해서 피가 나는 병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로 다가가는 지금까지도 혈루증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니 즉시 그쳤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성공했다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이제 이 여인은 조용히 그 무리들 속에서 빠져나오면 됩니다. 야이로의 집으로 급하게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무리들이 빨리 움직일 때, 아무도 모르게 그 무리에서 뒤처지면 계획 성공입니다.
두려움을 물리치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멈추십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누가복음 8장 4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그러자 예수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대답을 했겠죠. ‘예수님 저는 아닙니다.’ ‘예수님 저도 아닙니다.’ 이제 그 여인의 순서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여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그 순간 너무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답합니다. ‘저도 아니에요’
45절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예수님의 질문에 모두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 속에는 아마 이 여인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저도 아니에요”라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당당하게 이야기했을까요? 아닙니다. 개미 목소리로,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저도 아니에요”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옷자락에 누군가 손을 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다 아니라고 말하면, 이쯤해서 예수님께서 지금 야이로의 딸이 죽어가고 있으니 급한 발걸음을 다시 옮길 만도 하지 않습니까? 정말 이 여인의 마음, 이미 한 번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저도 아니에요’라고 거짓말을 한 이 여인은 정말이지 예수님께서 자신의 급한 발걸음을 다시 옮기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다행히 예수님 옆에 서 있던 베드로가 그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는 발언을 합니다.
45절 뒷부분입니다.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그저 사람들이 많아서 조금 밀린 것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라는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할 때 이 여인은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이제 예수님이 그냥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시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 여인에게 예수님의 두 번째 말씀이 들려옵니다. 46절입니다. 우리 46절의 말씀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십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너무도 두렵습니다. 결국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린 이 여인은 지금 온 몸이 떨립니다. 그러면서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는지 그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48절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이 여인의 계획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무리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께도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옷자락만 살며시 잡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많은 무리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집중시키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 여인은 자신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이유를 말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12년 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혈루증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모든 사람이 듣고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도록 요구하신 겁니다. 이 여인에게 자신은 12년 동안 부정한 사람이었다고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고백하라고 요구하신 겁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듣고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혈루증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써 깨끗해졌다고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듣는 가운데서 이 여자가 병이 나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인의 믿음 때문이었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병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그 병이 깨끗해졌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도록 하신 것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싫어하는 이 여인을 골탕 먹이시기 위함이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 이야기도 하지 않고 옷자락을 살며시 만진 이 여인이 얄미워서 그렇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 여인에게 많은 무리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강요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그 여인의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을 몰아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음속에 품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자기만의 믿음으로 가두어 놓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드러내어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모르게 자신의 병을 고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자를 한 무리 중앙에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믿음으로 혈루병을 치유받았다고 선언하십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확신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치료받았으니 더 이상 두려움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쉬쉬하면서 살아가지 말고, 자신의 믿음을 당당하게 선언하면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믿음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믿음이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기를 내어 그 어두운 길 한 가운데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놀라운 은혜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알아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일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고보서에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일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칠흑 같은 어두움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젊은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오랜 세월 사신 분들은 야고보서의 말씀이 참된 진리임을 알고 계십니다.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런데 그 짧은 인생도 바로 다음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내일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믿고 용기를 내어 그 어두운 길의 한 가운데를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우리의 귓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내 딸아, 내 아들아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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