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0. 7. 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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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유대교의 배경에서 태어났지만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죠.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대교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인 가운데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독교를 포기하고 다시금 유대교로 돌아가면 지금 당하는 극심한 박해를 피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혹을 느끼는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어떠한 말로 권면하였을까요? 


고난은 기쁨의 이유 

베드로는 고난이 기쁨의 이유라고 권면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당하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개인의 슬픔이라는 관점을 벗어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고 견디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위대한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사실을 참으로 믿는다면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충분한 기쁨의 이유가 됩니다. 

여러분,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신앙인은 고난이 찾아올 때 기쁨으로 모든 아픔과 슬픔의 감정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도 고난이 찾아올 때 슬프고 아프고 괴롭습니다. 그 아픔으로 울부짖기도 하며 그 슬픔으로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아픔과 슬픔이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그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큰 슬픔의 날이 찾아와도 마음 한편에 흐르는 기쁨의 강줄기로 말미암아 그 모든 고난과 시련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시련과 고난은 다른 한편으로 기쁨의 이유라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본문 13절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기쁨이 두 가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첫번째 기쁨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난 중에도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쁨은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누리게 될 그리스도인의 기쁨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심판의 때 그리스도인은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기쁨은 고난의 현장에서 아픔과 슬픔과 공존하는 기쁨이지만 그날에 누리는 기쁨은 아픔과 슬픔이 전혀 없는 온전한 기쁨입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은 이렇게 말씀하지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계시다면 본문 16절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왜 그렇습니까? 지금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의 이유가 있으며, 마지막 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바로 그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크고 온전한 기쁨이 여러분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 

베드로가 보내는 편지를 받아 보는 사람들은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기에 더욱 큰 박해를 받았지요. 그러므로 그들은 박해와 고난을 피하기 위해 기독교를 포기하고 다시금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품어보았습니다. 이러한 유혹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어떠한 말로 권면하였을까요? 

베드로 사도는 기독교를 믿든, 유대교를 믿든 상관 없이 하나님의 심판이 모두에게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박해와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재앙의 날이 불신자들에게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7절과 18절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의 백성부터 시작된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구약 성경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예레미야 25장 2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부터 시작됩니다. 지금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을 받고 불신자들은 평안한 듯 보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불신자로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유대교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자신에게 임한 고난을 피하고자 다시금 유대교로 개종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부터 열방으로 확대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을 당하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합니다. 반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조금도 견디어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18절 말씀의 뜻입니다.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고난이 찾아올 때 '나만 고난을 받는다'고, '나는 믿음을 지키지만 고난을 받고 저 친구는 믿음이 없지만 평안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에게 심판의 때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저 우리가 불신자들보다 조금 먼저 심판대 앞에 서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어 그 과정을 이겨낼 수 있으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자들이 평안하다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결과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그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를 힘써 달리면 됩니다.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견지해야 할 자세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5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고난을 당하고 계십니까? 왜 나에게 이와 같은 고난이 찾아왔냐고 질문하지 마십시오. 왜 다른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고난이 비껴가냐고 질문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이와 같은 고난을 피할 수 있는지도 질문하지 마십시오. 
그저 여러분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에게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선을 행하십시오. 그렇게 하루하루,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 여러분에게 찾아온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삶에 기쁨의 이유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고난 중에도 인내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에게 최후의 승리가 반드시 주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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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