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강해2021. 1. 2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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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왓슨이라는 분이 저술한 <제자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출판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지침을 제공해 주지요. 데이빗 왓슨은 이 책에서 성도 개인의 제자도와 교회 부흥의 연관성을 매우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을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에 복음에 대하여 흥분하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명백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에 
‘와서 보라’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때 복음 전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데이빗 왓슨의 논리는 이것입니다. 만일 어느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교회 공동체에는 지배와 경쟁, 시기와 미움이라는 세상의 법칙이 아닌 사랑과 온유, 겸손과 화평이라는 하나님의 법칙이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의 법칙이 가득한 교회 공동체는 세상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은 교회, 교회 성도들이 자신 있게 불신자를 초대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제자도가 살아있는 교회는 전도를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부흥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제자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출석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이지만 그들이 모이는 교회는 세상의 조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교회 안에 제자도가 없다면,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사라졌다면 누가 그러한 교회를 찾아오겠습니까? 그러므로 제자도가 사라진 교회에는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데이빗 왓슨이 <제자도>라는 책에서 성도들의 제자도와 교회의 부흥의 관계를 설명한 내용입니다. 이 책이 출판된 1980년대 당시 미국 교회를 비롯한 서구의 기독교에 부흥이 사라진 이유를 데이빗 왓슨은 바로 제자도의 부재에서 찾았던 것이죠.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우리 교회를 비롯하여 이 땅의 교회는 예배당을 교인들에게 개방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코로나가 종결된 후에도 성도들이 예배당에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교회의 출석인원이 감소하고 있다는 아우성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는데, 코로나로 말미암아 더욱더 성도들의 예배 출석이 크게 위축되면서 이러한 걱정은 이제 더 큰 위기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우리 시대 교회가 더 이상 부흥하지 않는 이유도, 우리 시대 교회가 쇠퇴하는 이유도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제자의 삶을 바르게 실천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는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다고 아니 오히려 우리 시대에는 교회가 자꾸 쇠퇴한다고 눈에 보이는 출석 인원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제자의 삶이 없음을 더욱 근심하며 슬퍼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변함없는 일상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어부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마가복음 1장 16절)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마가복음 1장 19절)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며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조금 더 걸어가시니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 보고 계신 장면은 당시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너무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갈릴리 해변에 살던 사람들에게 어부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었거든요. 그래서 어부라는 직업은 몇 세대를 이어 가업이 되었죠. 그래서 본문에는 서로 형제인 베드로와 안드래,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함께 어부의 일을 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야고보와 요한은 그의 아버지와 함께 그물을 깁고 있으니 그들 모두는 어부를 가업으로 잇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리 해변에서 함께 살아가던 여러 이웃과 마찬가지로, 어부라는 가업을 이으며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매우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매우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사건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5장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누가복음 5장 5절). 지금 베드로는 고기를 잡기 위해서 밤을 꼬박 새우면서 열심히 일을 했어요. 참 성실한 사람들이죠. 네, 그들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업을 잇는 것으로 자신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을 위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채워갈지라도 그들의 삶은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이 오늘과 같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사명,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인생의 참된 가치를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때로 열심히 사는 것에 만족하는 듯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으로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네,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은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하여 아직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릴 수 없었던 갈릴리 어부들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밤을 새워서 열심히 그물을 던집니다. 성실하지요. 날이 새어 그물을 깁으며 내일을 준비합니다. 그의 가족들이 바라볼 때 든든한 아버지, 듬직한 남편,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직 그리스도인의 가치가 없어요. 거기에는 아직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제자도가 없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무한 경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러한 열정과 성실함 속에도 아직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위해 헌신하는 참된 제자도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

열심히는 살아가지만, 밤을 새우면서까지 가족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의 삶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인의 가치가 없던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에게 이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가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마가복음 1장 17-18절)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마가복음 1장 20절) 

예수님께서 지켜 보셨던 장면, 곧 어부들이 그물을 던지거나 어부들이 그물을 깁는 모습은 당시 갈릴리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 전에 읽은 구절은 당시 갈릴리 해변은 물론이고 유대 나라 전체에서 결코 볼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당시 스승으로 불리던 많은 랍비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제자를 직접 찾아가서 부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어려서부터 율법 교육을 철저히 받은 엘리트들이 아니 모여있는 예루살렘도 아닌 갈릴리의 어부들을 스승이 직접 찾아가 제자로 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예수님은 직접 갈릴리의 어부를 찾아가 그들을 제자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여러분, 여기에 신앙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찾았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님을 선택하고 그분을 찾아가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은 이 땅에 내려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요,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셔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찾아오시지 않으면, 우리는 일상에 파묻혀 살아가다가 우리의 인생을 허무로 끝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찾아와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시며 우리를 주님의 제자로 불러 주시면, 우리는 우리 인생의 참된 가치를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요,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의 나이 75세에 부르셨습니다. 그 이전까지 아브라함은 75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는 아무런 의미도 아무런 가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가 75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가 열방을 축복하는 복의 통로로 부르시자, 아브라함은 비로소 새로운 하나님의 비전을 바라보며 세상을 축복하는 인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75세 때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그의 나이 80세에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궁궐에서 40년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세의 삶을 부러워했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관점이었을 뿐, 바로의 궁궐에서 생활했던 40년의 세월도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주시지 않으니 삶의 참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궐에서 생활했던 40년의 세월이나, 이후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생활하였던 40년의 세월은 겉모습은 너무도 다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세월을 두 번이나 보내고 그의 나이 8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찾아가 그를 부르시잖아요. 하나님의 임재와 부르심이 모세의 삶을 압도한 뒤에야 모세는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아브라함은 75년의 세월을 살았고, 모세는 80년의 세월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니 제 아무리 오랜 시간을 새롭게 맞이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의 일상을 뚫고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주님의 제자로 불러주신다면 바로 그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받는 가치 있는 인생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 연수도 상관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일상에 찾아오셔서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주님을 따라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실패하는 제자들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습니다. 어부였던 그들이 그물을 버렸습니다. 품꾼을 버렸습니다. 배도 버렸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그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제시한 비전, 곧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는 소망만이 그들의 마음에 가득했겠지요. 그러나 마가복음서를 계속 읽어보면 그들의 모습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마가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씨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마가복음 4장 11절) 

무슨 뜻입니까? 외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풍성해 깨달아야 마땅해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열심히 비유로 말씀해주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탄식하세요.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마가복음 4장 13절)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면 뭐해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 그들에게 떠 먹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요. 

그뿐이 아닙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이른바 오병이어 사건이지요.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cf. 마가복음 8장 1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었어요. 바로 얼마 전에 오병이어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제자들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당연히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번에도 음식을 먹여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반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신앙의 건망증이 걸린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거든요.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마가복음 8장 4절)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물도 버리고, 배도 버리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길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놀라운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해주셔도 이해하지 못해요. 예수님께서 위대한 기적을 보여주셔도 그 기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요. 그러니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 동안 동거 동락하였지만 예수님의 마음도, 예수님의 계획도, 예수님의 구원 사역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3년의 세월을 보냈던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을 바르게 따르지 못했던 결정적인 장면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십자가를 언급하실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죽을 것이라고, 그러나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반응이 무엇이었는지 아시잖아요. 예수님을 향해서 항변하면서 말합니다. 안됩니다. 예수님.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길에 십자가라니요, 말도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셔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제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바로 그 순간, 제자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 버립니다. 마가는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가복음 14장 50절) 

이 짧은 한 문장에서 ‘제자들’라는 단어, 그리고 그 뒤에 등장하는 ‘다’라는 한글자 단어가 너무도 크게 느껴지는 것이 단지 저 한 사람만은 아니겠지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물도 버렸습니다. 배도 버렸습니다. 품꾼들도 버렸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분의 기적을 이해하지 못하자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걸어가시는 그 중요한 순간 제자들은 다 예수를 버렸고 제자들은 다 도망하여 버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가복음의 이 모든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늘 분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제자들의 그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그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넘어 복음의 위대한 사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주셨던 예수님의 약속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시고,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변화시키시는 분은 오직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너무도 많이 실패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너무도 많은 시간을 허비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주님을 떠나가셨습니까? 그리하여 다시금 나 자신만을 위하고, 우리 가족만을 위해 살아가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여전히 여러분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이십시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비록 실패하였고, 비록 낙심하였고, 비록 주저앉아 있었을 지라도 
다시금 주님의 말씀에 응답하여 일어서십시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여러분을 
세상을 축복하고 생명을 살리는 사람들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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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