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인문학2022. 4. 2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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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구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배 목사님이 찾아와 고민을 토로했다. 그 목사님은 권사님 한 분을 심방하였는데 연로하신 권사님은 허리가 아파 많이 괴로워하셨다. 목사님은 권사님의 허리 디스크가 치유될 수 있도록 기도해드렸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정도 연세에 과연 허리 디스크가 나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는 질문이었다. 후배 목사의 이 경험은 성도들을 심방하는 대부분의 목회자가 겪는 일인데, 과연 목회자의 기도는 어떠해야 할까?

 

 

교회 안의 승리주의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한국 교회 안에는 이른바 ‘승리주의’의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여기에서 승리주의란 고통, 빈곤, 무능 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로 여기며 신앙의 힘으로 이러한 과제를 성취하여 승리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말한다. 위의 경우에 적용한다면, 목사가 성도들을 심방했다면 마땅히 성도들의 건강과 재물과 형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동시에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신앙의 힘으로 축복을 받기 위해 자신의 기도는 물론이요 힘이 부족할 때에는 목회자의 기도를 덧입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교회에서는 이른바 ‘기도제목’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성도들마다 다양한 기도의 제목이 있지만 그 대부분은 위에서 언급한 건강, 재물, 형통, 인간관계 등이 대다수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기도제목을 묻고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성도들 사이의 만남 속에는 승리주의의 분위기가 짙게 드리우곤 한다.

 

신약성경을 통해 그 시대에도 교회 안에 승리주의가 폭넓게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린도교회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스스로를 ‘영적인 사람들’(프뉴마티코스)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방언과 예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가 많이 일어났는데, 소위 ‘영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며 스스로가 대단히 높은 영적 수준에 올랐다고 자부하였다. 한 마디로, 영적 엘리트주의에 빠져든 것이다. 이들의 모습이 분명하게 묘사된 구절이 고린도전서 4장 8절이다.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고전 4:8a)

 

이 구절에서 “이미”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날에 얻을 최후의 승리를 믿는다. 그런데 이들은 그 최후의 승리를 “이미” 성취한듯 행동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소위 ‘영적인 사람들’의 오류는 과도한(overrealized) 종말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하나님의 나라에 완전히 들어간 것은 아닌데,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성취한 듯 지속적인 성화와 거룩의 삶에 힘을 쏟지 않았다. 고린도전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인 사람들의 태도와 사도들의 헌신을 비교하는데, 앤서니 티슬턴은 그 차이를 오늘날의 용어로 이렇게 서술하였다. “사도들은 검투장에서 검투사가 되어서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반면에 고린도교회에 속한 많은 그리스도인은 방청석에서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처절하게 싸우는 사도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십자가의 복음

 

소위 ‘영적인 사람들’을 향한 바울의 대답은 십자가의 복음이다. 그들은 하늘의 지식을 이야기하였지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참된 지혜가 신비한 영적 통찰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지혜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로 영적 수준을 자랑하려고 했지만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의 증거가 삶의 변화라고 주장한다. 칼 바르트는 사랑을 노래하는 고린도전서 13장과 부활을 선포하는 고린도전서 15장이 성령의 은사를 논하는 12장과 14장을 철저하게 상대화시킨다고 지적하였는데, 참된 신앙의 길은 성령의 은사를 자랑하며 능력과 성취를 추구하는 승리주의가 아니라 자신을 헌신하며 끝까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십자가의 길이다.

 

나를 찾아와 연로하신 성도님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질문했던 후배 목사님에게 한국 교회 안에도 승리주의가 팽배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누었다. 그러나 교회의 분위기와 상관 없이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신앙의 힘은 나이를 역행하는 건강도,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의 재물도, 자신의 노력을 훨씬 뛰어넘는 성공이나 형통도 아니다. 반대로 신앙의 힘은 연약한 가운데서도 발휘되는 지혜요, 아픔 속에서도 누리는 기쁨이다. 웃음만이 아니라 눈물까지도 성도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 교구 목사의 기도는 마땅히 이러한 신앙의 지혜를 구하는 기도이어야 하며, 성도들이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신앙의 길을 바르게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공감의 간구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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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