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인문학2021. 5. 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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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가 오랜 시간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의 음식 문화도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할 수 없으니, 각자의 가정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이른바 배달음식이 활황을 누리고 있지요. 코로나 이전에는 배달음식이라고 하면 중국요리, 피자나 통닭 등 메뉴가 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이제는 거의 모든 음식이 배달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밀 키트’(meal kit)라는 이름의 가정 간편식입니다. 이는 집 앞까지 택배로 배달되고 포장을 벗겨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일상적인 음식을 넘어 최근에는 전문 식당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먹을 수 있던 음식도 가정 간편식으로 판매되고 있으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식생활까지도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은 분명합니다.

 

배달음식, 가정 간편식 등이 일상화되면서 음식에 대한 현대 사회의 한 가지 이미지가 우리 안에 더욱 각인되었습니다. 그것은 음식 혹은 식재료가 상품이라는 인식입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현대 사회에서 음식은 상품입니다. 그러나 음식을 상품으로 생각하다보니 성경이 가르치는 음식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 하나를 놓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성경은 생존에 꼭 필요한 음식이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이기에 앞서, 다른 생명의 희생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께서 채소와 나무, 곧 식물을 인간의 음식으로 주시는 장면입니다. 계속해서 창세기 9장으로 넘어가면 인간에게 육식을 허락하시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세기 9장 3절)

 

하나님은 채소와 나무, 곧 식물을 인간에게 음식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물들도 인간에게 음식으로 주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허락하신 양식은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식물이든 동물이든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대하는 음식은 단지 상품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그 음식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생물의 죽음과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즈바(Morman Wirzba)라는 신학자는 <음식과 신앙>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이는 장소에서든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든 다른 생명이 죽어야 한다. 생명은 죽음에 달려있고, 죽음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그는 음식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내어 놓습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음식은 상품이 아니다. 음식은 하나님의 창조세계, 곧 희생적 사랑에 의해 유지되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다.” [각주:1]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먹거리가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비용만 지불하면 식재료와 음식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곧 음식이 상품으로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매일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생명을 가지고 있었던 어느 생물의 희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음식은 상품이기에 앞서, 나를 위한 다른 이들의 희생이요 보다 궁극적으로 여전히 나의 생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 Morman Wirzba, Food and Faith A Theology of Eating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13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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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