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2016. 2. 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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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1:23)

 

사도바울의 정의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은혜가 충만하여 흘러 넘치는 바로 그 현장이 교회입니다.

 

여기서 충만함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은혜, 구원의 은혜의 충만함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고, 과거에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과거에는 사단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그 은혜의 풍성함입니다. 바로 그 구원의 은혜, 복음의 감격이 풍성한 곳, 그곳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또 요한복음 1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여러분, 교회는 바로 충만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충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한 곳, 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충만함이란 없는 것을 짜내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함께 찬양을 한 곡 부르더라도, 우리가 짧은 시간 한 마다의 기도를 하더라도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해서, 복음의 능력이 충만해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내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일으키기 위해서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이 없는 은혜를 짜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임이 참된 교회의 모임이라면, 우리 교회가 참된 교회라면 우리 교회 안에 은혜의 풍성함이 넘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넘치는 은혜와 진리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찬양 한 곳을 하더라도 눈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저 성도들이 서로 만나면 구원의 감격이 나누어집니다. 복음의 능력이 서로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복음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풍성하게 경험되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정의하면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충만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바울의 정의에 의하면 교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요로움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를 계속 읽어가다 보면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 에베소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나타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부분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게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8-19)

 

바울이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그 충만하심이 에베소교회에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귀한 진리가 숨겨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얼마나 큰 감격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가 참된 교회로 지속적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지속적으로, - 어떻게요? - 지속적으로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례와 성만찬의 관계

 

저는 이쯤에서 교회의 매우 중요한 전통인 세례와 성만찬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는 세례와 성만찬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경우에 오해를 합니다. 특별히 성만찬에 대해 오해하죠. 그 오해란 이것입니다. 성만찬은 단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의식이라는 오해입니다. 물론, 성만찬에 사용되는 떡과 잔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성만찬의 의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성만찬에는 단순한 상징 이상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의미를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성경에 나오는 하나의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건을 나뭇가지가 나무에 접붙여지는 것에 비유합니다. 그렇죠? 우리는 나뭇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나뭇가지가 잘려진 상태로 방치되면 곧 그 생명이 사라지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우리의 영혼은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이셨습니다. 바로 이 사건을 기념하며 의식이 세례입니다.

 

그런데, 만일 나뭇가지가 좋은 포도나무에 접붙여졌지만, 그 나무로부터 지속적으로 영양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나뭇가지가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 나뭇가지는 비록 포도나무에 접붙여졌을 지라도 머지않아 생명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그분의 충만한 은혜를 경험했을 지라도, 다시 말해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졌을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못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곧 시들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접붙여진 가지가 나무로부터 지속적으로 영양분을 공급받듯이, 우리의 영혼이 지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누려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지는 그 현장이 바로 세례라면,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아 누리는 현장이 바로 ‘성만찬’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요한 전통에, 세례와 더불어 성만찬이 위치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서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되는 것,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것을 기념하는 세례는 또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충만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지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충만을 경험하는 장소, 바로 그 장소가 교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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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에베소서 강해2016. 2. 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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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가족 공동체입니다. 그래서인지 교회와 가정은 공통점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가정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공동체 안에 속한 사람들의 관계가 ‘계약’이 아닌 ‘언약’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어느 가정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자녀가 되고,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고,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됩니다. 그러면 그 관계는 계약이 아닙니다. 어느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계약서를 이행하듯이 양육하겠습니까? 또 어느 자녀가 나이 들어 병든 부모를 공양할 때 계약서를 이행하듯이 공양하겠습니까? 그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이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부모이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배우자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가족으로 대하는 것이죠. 이것은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언약의 관계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이 자리에 참여하셨습니다. 지금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노라고, 혹은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겠노라고 계약서를 썼기에 참석하신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같은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신 형제와 자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가운데, 다른 성도들과 서로 같은 교회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되자고 계약서를 작성하신 분이 계시면 또 한 번 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그 누구와도 계약서를 쓴 적이 없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관계도 ‘계약’이 아닌 ‘언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같은 교회의 교인으로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이끌리어 우리 교회의 교인이 된 것이지 인간의 계약이나 이해관계로 특정한 교회의 성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계약의 관계는 계약서의 조항이 이행될 때에만 효력이 있습니다. 계약 사항이 이행되지 않는 그 순간부터 계약의 관계는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관계는 비록 서로의 이해관계가 합치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관계가 쉽게 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계약이 아닌 언약의 관계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기쁘고 즐거워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성도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일 교회와 성도의 관계가 계약의 관계라면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성도들은 교회를 떠나겠지요. 그러나 교회는 계약이 아닌 언약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때로는 너무도 기쁘고 즐거워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릴 때도 있지만, 때로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바울의 감사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향해 어떠한 내용으로 기도하였는지 그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이 등장합니다. 바울은 먼저 에베소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고 말하지요.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5~16)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곧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입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를 향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서로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바울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지금 에베소교회에 아무런 문제가 없나요? 아닙니다. 에베소교회를 세웠던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으니, 그들에게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어려운 문제가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의 귀에까지 들렸을 것이고,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바울은 에베소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그 모든 어려움을 다 알고 있는 바울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때마다 에베소교회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서로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하고 계십니까?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모든 어려운 문제를 다 들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우리의 교회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겠습니까?

 

 

바울의 기도

 

오늘 본문에는 바울의 두 번째 기도 제목도 등장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7)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주셔서 어떻게 하시기를 기도합니까?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아니,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모르나요? 하나님을 안 믿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압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더 깊이 알아야 할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 18절부터 소개되어 있지요.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8-19)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기도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여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에베소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열어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성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에베소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비전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비전은 영광이 아주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그 풍성함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열어달라는 것이 바울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 요약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심을 알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과 비전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바울은 그 비전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비전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능력을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바울은 왜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눈앞에 놓여있는 교회의 현실에 집중한 나머지 에베소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도, 그 비전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영광도, 그 비전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언약의 관점

 

바울과 에베소교회의 관계는 계약의 관계가 아니라, 언약의 관계였습니다. 만일 바울이 계약의 관계로 에베소교회를 바라보았다면, 자신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는 에베소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언약의 관계로 에베소교회를 바라보았습니다. 에베소교회의 현재 모습이 바울이 원하는 온전한 교회의 모습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한 사랑과 애정의 마음이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통해 에베소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비전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더욱 열심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비전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의 관점으로 에베소교회를 바라봅니다. 그러자, 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기대와 소망을 발견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의 관점으로 에베소교회를 바라보자, 하나님의 비전 가운데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이 빛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언약의 관점으로 에베소교회를 바라보자, 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비전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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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에베소서 강해2015. 12. 21.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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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교회로부터 현대 교회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았던 신학 논쟁 가운데 하나는 어느 교회가 참된 교회인지, 어느 교회가 거짓된 교회인지를 구별할 있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교회는 어느 교회가 참된 교회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가지 기준에 부합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가지 기준이란, 사도성, 거룩성, 보편성, 통일성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여전히 참된 교회가 어떠한 교회인지를 설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은 참된 교회의 기준으로 가지를 내세웠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바르게 선포되는 것과 세례와 성만찬이 올바르게 실행되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를 구별하는 번째 기준은 복음의 진리가 바르게 선포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라도, 안에 복음의 핵심이 빠져있으면 그것은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여러 이단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안에는 복음의 진리가 빠져있어요. 그렇기에 우리는 이단자들의 모임을 참된 교회라고 부를 없습니다.

 

또한, 참된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를 구별하는 번째 기준은 세례와 성만찬과 같은 성례가 올바르게 시행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선포된 복음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인 성도들이 세례와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어 나가는 , 바로 그것이 참된 교회의 번째 특징입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모임이 있고, 교회 안에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교회 안에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을 온갖 종류의 모임이 있을지라도, 가운데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세례와 성만찬을 시행하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만날 없다면, 그것은 참된 교회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이고, 교회는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누구이며, 그들의 모임인 교회는 어떠한 공동체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1 7절을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사함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우리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것은 사도 바울과 에베소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바로 사도 바울과 같은, 바로 에베소 교회 성도들과 같은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7절은 이렇게 읽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사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3가지 특징이 등장하죠? 1)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서, 2) 예수님의 피로 3) 속량 사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일까요? 교회는 1)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2)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3) 속량 사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복음의 진리잖아요. 그렇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요,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여, 선포된 복음의 말씀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 사함을 받는다는 복음이 선포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 사함을 받은 감격으로 드려지는 우리 교회의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우리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우리의 결심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1 8절과 9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 사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일도 우리가 결단하고, 우리가 열심을 내고, 우리가 노력한다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있을까요? 성경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주 교회에 모여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이유가 아닌가요?

 

세 가지 기도 제목

 

시간 함께 기도할 세 가지 기도제목을 이렇게 내어놓고 싶습니다.

첫번째 기도제목입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를 참된 교회되게 하시고, 우리 교회 예배를 참된 예배 되게 하소서. 참된 교회의 기준은 복음의 진리가 바르게 선포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참된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 사함을 받은 감격으로 드리는 예배라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진리를 깨닫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잖아요.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셔야 우리가 복음을 깨달을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복음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셔야, 우리가 복음을 믿을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번째 기도의 제목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옵소서입니다. (11-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우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들의 계획과 인간들의 행동에 따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가 세워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계획을 세울 , 어떠한 일을 언제까지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렇죠?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구원의 계획을 세우실 , 언제 일을 이루시겠다는 시간표가 없을까요? 우리는 교회가 세워진 것도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서 이루어진 일인 믿습니다. 나아가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펼치실 것인데, 역시 우리 인간들의 시간표가 아닌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놀랍게 일어날 바로 그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기다리는 것을 말하지는 않죠.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교회를 위해 봉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들어 사용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며 기다릴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번째 기도 제목은 우리 교회가 성령 하나님의 증거를 확신하게 하옵소서입니다.(13-14)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불러주시고, 우리를 하나의 교회에 모여 신앙생활 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 교회가 복음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선포된 말씀을 믿어 구원받은 감격으로 예배하는 참된 교회가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때가 언제인지는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우리를 인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교회를 인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성령으로 인을, 도장을 새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귀한 도구라고 성령으로 인을, 도장을 치셨습니다.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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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에베소서 강해2015. 12. 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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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울러,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임, 그리스도인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는 삶의 대원칙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대원칙이란, 첫째로 모든 일에 있어서 성경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대원칙, 번째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성령에 인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있어서 성경에 근거하고, 성령에 인도를 받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대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성경에 근거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칙을 지키지 못하지요. 나의 앞에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대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먼저 성경의 근거를 살피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앞에 주어진 상황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사건을 먼저 바라보면서 주어진 상황을 가지고 성경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방식대로 해석하려고 합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놓이면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우리의 나아가야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가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놓이면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우리 교회는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잠잠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교회가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놓이면 앞에 놓인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뒷전으로 밀어 넣는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를 마디로 정리하자면, 교회가 문제 앞에 서있을 교회는 문제를 바라보기에 앞서 복음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집중해야 한다 것입니다.

 

 

교회의 위기 가운데 찬양하다

 

바울은 3 전도여행 기간 집중적으로 에베소에서 사역하였습니다. 바울의 집중적인 사역을 통하여 시작된 에베소교회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1). 그런데 아무리 신실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교회의 지도자였던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들리자 교회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가 복음의 능력으로 새로워지며,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갈 있도록 독려하기 위하여 에베소서를 쓰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 보십시오. 지금 에베소교회는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사도 바울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3절을 우리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찬송하리로다무엇을 찬송합니까? 하나님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다는 사실, 복음의 내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다는 상황, 교회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문제에 온통 신경이 쓰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의 관심을 교회가 당면한 위기로부터 복음의 메시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도록 바꾸어주고 있습니다.

 

다음 절도 보십시오. 우리 함께 4절과 5절을 읽겠습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교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아니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조금의 어그러짐도 없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현실의 문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을 ,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다시금 성령의 인도하심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기도의 제목을 놓고 기도해야 할까요? 하나님, 우리 교회가 다시금 복음의 말씀에 집중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교회가 다시금 성령의 인도에 민감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세 가지 기도 제목

 

저는 오늘 본문을 근거로 다음의 구체적인 가지 기도의 제목을 나누고자 합니다. 번째 기도의 제목은우리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복음의 능력이 새로워지게 하옵소서입니다. 에베소서는 성경 66 가운데 가장 분명하게 교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바로 에베소서는 우리가 조금 전에 묵상한 바와 같이 복음의 능력을 찬양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고, 예배가 예배되게 하는 능력은 오직 복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언제 가장 감격적인 예배를 드려보셨습니까?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처음 믿어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되었을 때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복음의 은혜 가운데 온전히 사로잡혀 있을 가장 감격적인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을 것입니다. 여기에 교회가 새로워지는 비결이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면, 자리에서 예배도 회복되고 교회가 새로워집니다.

 

번째 기도 제목은우리 회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바울에게 들리는 에베소교회의 모습은 복음의 능력이 사라지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에베소서의 처음을찬송하리로다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마지막 6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이유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고, 에베소교회는 위기 가운데 있는데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있었을까요? 대답이 4절과 5절에 나와있지 않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부터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5절을 보십시오.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에 따라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나의 인생에 머리 아픈 일이 일어나고, 지금 당장 우리 교회에 위기가 찾아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나의 인생이든, 우리 교회의 역사든 모두가 하나님의 선하신 주관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기도 제목은우리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입니다. 오늘 본문 4 말씀을 우리 다시 ,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목적은 여기에서 걸음 나아갑니다. 4 뒷부분을 보십시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다음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우리로 사랑 안에서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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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에베소서 강해2015. 12. 1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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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의 처음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있을까요?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낸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에베소서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유를 조금씩 알아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낸 중요한 이유를 가지만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첫째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다시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주로 에베소서의 전반부인 1장부터 3장까지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다시 강조합니다. 대표적인 구절이 2 1절이지요.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는 복음의 진리를 사도 바울은 다시 강조합니다. 그렇습니까?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다시금 복음의 능력이 살아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까? ,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다시금 복음의 능력 가운데 사로잡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크리스천답게 살아가도록 돕기 위하여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주로 에베소서의 후반부인 4장부터 6장까지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지요. 바울은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다양한 지침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강조하는 크리스천의 삶은 하나의 율법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을 있는 어떤 조건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미 구원을 받은 크리스천이라면 마땅히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럴까요?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다시 복음의 능력이 활활 타오르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요, 나아가 복음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기를 바라며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었던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뜨거운 심정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아마도 로마에 있는 감옥인 합니다. 자신의 몸은 감옥에 갇혀 있으나, 그의 마음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다시금 복음의 능력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간절함을 우리가 함께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에베소서의 문자적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다 할지라도 에베소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함께 교회에 모여 기도하기 위해 자리를 찾아왔습니다. 특별히, 에베소서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에베소 교회가 다시금 복음의 능력이 활활 타오르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크리스천답게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갈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울의 심정이, 바로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원한다면,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성경이 교회의 바른 모습이 무엇이라고 정의하는지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원한다면,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 교회에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우리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원한다면,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 교회를 향한 마음의 뜨거움입니다. 마음의 간절함입니다. 우리 마음에 교회를 향한 사랑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축복하며 편지를 시작하지요. 오늘 본문 에베소서 1 2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저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 모인 우리에게도 바울과 같은 동일한 마음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는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소원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교회에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은혜가 풍성했으면 좋겠다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는 평강이 풍성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교회를 위해 기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

 

오늘 본문에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묘사하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다시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바울은, 뒤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 뒤에 나오는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 동일한 의미입니다. 바울은 지금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에베소는 바울이 3차전도 여행에서 집중적으로 사역하였던 지역입니다. 그만큼 바울의 영향력이 강력했던 곳이요, 그곳의 성도들은 바울이 전하여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신실하였던 에베소 교회 성도들조차 믿음의 흔들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아무리 위대한 사도 바울이 전도하고, 바울이 양육하고, 바울이 직접 말씀을 가르쳤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라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믿음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써서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다시금 알려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써서 크리스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금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는 상황 속에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리자 바울은 다시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2절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있기를 원하노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였던 에베소 교회 성도들까지도 교회에 어려움이 닥치니, 그들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하물며, 우리들이야 어떻겠습니까? 바로 이때, 우리에게 바울과 같은 교회를 향한 불타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이때, 우리에게 바울과 같이 교회를 위한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가지 기도 제목 


세 가지의 기도 제목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기도제목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 제 안에서 일어나게 하옵소서”입니다

여러분에게 진지하게 여쭤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진심으로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은 진심으로 우리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물론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지요. 우리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사랑하기에 교회 안에서 많은 상처를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많아지면 교회를 사랑하던 우리의 마음도 어느덧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 교회에 새로운 복음의 능력을 불어 넣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교회를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기도제목은 우리 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위해 기도하게 하옵소서”입니다.

여러분이 꿈꾸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입니까? 오늘의 본문은 교회의 가장 좋은 모습이 바울과 같이 교회가 위기를 맞이한 순간에도 끊임없이 교회를 사랑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교회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기도제목은 우리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게 하옵소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 기도하였던 바로 그 기도의 제목입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들에게도 신앙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도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신실한 교회이지만 때로는 신앙의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기도해야 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우리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가득 부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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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