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2021. 3. 2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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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 가운데 하나인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자에 대해여”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단락이 있습니다. 그 단락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는 우리 신앙인의 모습을 이렇게 꼬집었습니다. 

예수님과 그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있거니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의 위로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이 있으나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만찬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금식을 같이 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에 경탄하지만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함께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각주:1]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죽음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신 대속의 십자가라는 사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토록 고통스러운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던 이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영생의 선물이라는 것도 우리는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우리가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만을 묵상한다면 무엇인가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걸아가신 십자가와 부활의 그 길은 오늘 우리도 따라가야 할 제자의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한복음 12장 23절) 

여기서 인자는 예수님을 가리키므로, 23절의 영광은 예수님의 영광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요. 나아가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요한복음 12장 28절) 

저는 어린 시절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올림픽 등 중요한 대회에서 매달을 딴 선수들이 인터뷰를 하거나 연말 여러 가지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인터뷰를 하면서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1등을 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은 어린 시절 저에게만 있었던 생각이 아니라 지금도 한국 교회 안에 넓게 퍼져 있는 일반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후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그 이미지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나아가 성부 하나님의 영광의 핵심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들려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삶을 ‘한 알의 밀’에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집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의미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듯이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도 대단히 위대한 사건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인류 구원이라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그다음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 그 과정을 통하여 성부 하나님께서도 참된 영광을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으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찬란한 영광의 중심에는 십자가의 고통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교회에서 많이 배우셨죠? 그러면 이제 한 가지 사실을 더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성공을 이루거나 자신의 분야에서 1등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본받아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때,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

자신의 삶을 한 알의 밀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을 따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희생하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한복음 12장 25절) 

이 구절은 앞뒤의 문맥을 떼어놓으면 오해하기 참 쉬운 구절이지요. 문자적으로 보면 자신의 생명을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인데, 언듯 깊은 절망 속에서 자살을 시행하거나 개인적인 야망과 포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뒤의 구절을 함께 읽으면 예수님의 의도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앞의 구절에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므로 앞의 구절과 연결해서 본문 25절을 읽으면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나 자신을 희생하기 싫어 끝까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곧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본문 25절에 나오는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주님을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 나의 가장 소중한 생명까지도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또한 바로 뒤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읽으면 본문 25절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요한복음 12장 26a절) 예수님은 지금 성도들이 예수님을 섬기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염두에 둔다면 25절의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섬기겠다고 입술로 말은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이육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동일한 논리로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누가 될까요?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까지도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본문 25절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한 번만 더 설명해 볼까요? 여기에 등장하는 ‘사랑’ 그리고 ‘미움’이라는 표현은 우리의 감정을 나타내잖아요.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감정, 곧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나의 온 마음이 향하고 있어서 이 세상의 것들이 상대화되어 버리는지, 아니면 이 세상의 것들에 우리의 마음이 온통 향하고 있어서 예수님을 섬긴다고 말은 하지만 그 마음이 예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계신 것입니다. 

본문 25절의 말씀을 여러 가지로 설명드렸는데요.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도 분명해서 그 의도가 무엇인지 우리는 많은 설명이 없어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 담겨 있는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통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바로 나 자신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나의 십자가를 지는 자기 부인과 자기희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이 복음의 진리를 이제는 나의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순종과 실천

여러분, 어떠세요? 오늘 본문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신가요? 아니지요. 더 이상 우리에게 설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순종하려는 결단, 예수님의 이 말씀을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에게 적용하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대면할 때 느끼는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에 순종하여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나는 성경말씀 중에 내게 이해되는 내용이 나를 더 괴롭힌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기에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1등 인생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을 참고 견디는 인내의 인생이라는 사실도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나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워요. 그래서 괴로운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걸아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일은 우리의 본성이 거부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일뿐 나의 삶이라는 현실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토마스 아 켐피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천국도 사랑하고, 예수님의 위로도 좋아하며,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만찬 자리도 사모하지만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예수님과 함께 당하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탄하였던 것입니다. 

올해 사순절을 시작하며 어느 권사님과 나눈 짧은 대화가 계속해서 제 머리에 맴돌고 있습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올해의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 깊이 묵상하고 예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 좋겠다는 소원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께서 그러한 마음의 소원은 있지만 생각처럼 잘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가 그 말의 의미를 잘 알죠. 때로는 저도 너무 힘들거든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세요? 올해도 어김없이 사순절은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고 주님과 친밀함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다시금 우리의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는 그러한 이상이 우리의 삶의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근거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을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할 삶의 대원칙이라고 설교할 수 있고, 여러분도 설교를 들으며 ‘아멘’이라고 응답하실 수 있지요. 우리가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나의 생명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는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고 저는 설교할 수 있고 여러분도 ‘아멘’이라고 응답하실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설교도 하고 아멘으로 응답하더라도 우리의 본성은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니, 여전히 우리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을 사모하고, 예수님의 위로는 좋아하고 예수님께 함께하는 만찬을 즐거워하면서도 여전히 예수님과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은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마음에 여전히 맴돌고 있는 그 날 권사님과의 짧은 대화는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동참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정반대로 우리를 인도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은혜,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악이 용서받았다는 대속의 은혜,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든 것 위에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희생하며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많은 열매를 맺나니

토마스 아 켐피스는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예수님의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예수님과 함께 만찬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많지만 주님과 함께 금식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당신은 어찌하여 하늘나라의 첩경이 되는 
십자가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십자가 안에 구원이 있고, 
십자가 안에 생명이 있고, 
십자가 안에 평화가 있고, 
십자가 안에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기쁨이 숨겨져 있습니다. [각주:2]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의 본성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의 본성이 무엇이라 이야기하든 상관없이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한복음 12장 25절)

우리가 신앙생활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유일한 길도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자기희생과 자기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계신 장소가 가정이라면 여러분이 그곳에서 한 알의 밀이 되어 자신을 부인하십시오. 여러분이 계신 장소가 직장이라면 여러분이 계신 그곳에서 한 알의 밀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십시오. 여러분이 계신 장소가 학교라면 여러분이 계신 그곳에서 한 알의 밀이 되어 자신을 포기하십시오. 여러분이 계신 장소가 교회라면 여러분이 계신 그곳에서 한 알의 밀이 되어 여러분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내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하여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직장과 여러분의 학교와 바로 이 교회 가운데 풍성한 열매를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끝까지 따라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계신 바로 그곳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복음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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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토마스 아 켑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2. 11. 1, 3.  [본문으로]
  2.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2. 12. 3-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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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