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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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9장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열 가지 기적을 서술한다. 예수님의 열 가지 기적은 5~7장이 소개하는 산상보훈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산상보훈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1) 가르치시고 (2) 전파하시고 (3) 고치시는 세 가지 활동으로 요약하였다(마 4:23). 산상보훈(5~7장)과 열 가지 기적(8~9장)을 마치며 마태복음은 다시 한번 예수님의 사역을 위의 세 가지 활동으로 요약한다(마 9:35). 또한 산상보훈을 시작할 때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셨다는 서술(마 5:1)과 기적이 시작되는 대목에서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다는 서술(마 8:1) 역시 산상보훈과 열 가지 기적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장치다. 예수님은 천국을 가르치시는 분이요(산상보훈) 동시에 천국을 사람들에게 이루어주시는 분(열 가지 기적)이다. 


나병환자의 치유 (1-3절) 

나병환자의 겉모습은 비참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2절) 

나병환자에게는 자신의 병이 치유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만, 모든 주권이 주님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예수님은 제자도를 가르치는 산상보훈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33). 본문의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니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3절)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와 접촉하는 사람은 부정을 입게 된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었으니 율법 조항에 따르면 예수님도 부정을 입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예수님께서 부정을 입으신 것이 아니라, 나병환자가 정하게 [깨끗하게] 되었다. 여기에 예수님의 역할과 구약성경의 제사장 역할 사이에 차이점이 드러난다. 구약성경에서 나병의 여부를 진찰하는 것은 제사장의 역할이었다(레 13~14장). 그러나 그들에게는 치유할 의무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다. 예수님은 나병을 진찰하는 제사장의 역할은 그대로 인정하신다(4절). 예수님의 주요한 사역은 나병환자를 진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치유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산상보훈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기 위함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신 그대로다(마 5:17). 


중풍병자의 치유 (5-13절)

하인의 중풍병을 치유해달라고 요청하는 백부장의 신앙에는 몇 가지 탁월한 점이 있었다. 먼저 그는 하인을 위해 간구하고 있다. 자녀를 위해 그리스도께 간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으나, 하인을 위해  주께 나온 사람은 이 백부장이 유일하다. 또한 백부장은 예수님의 권위를 철저히 신뢰하였다(8-9절).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에 감탄하시며 구원이 유대인이라는 경계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신다.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1-12절) 

백부장의 믿음과 그로 말미암은 하인의 치유는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 이르게 됨을, 오히려 유대인 중에는 구원에서 멀어지는 사람이 많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마태복음 성경공부" 글 목록 (Contents)

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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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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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산상보훈의 결론에 해당한다. 그리고 산상보훈의 최종 결론은 실천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에 대해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1절) 

예수님은 먼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주신다. 그들은 "주여 주여"라고 입술로만 주님을 찾았다. 심지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권능을 행하기도 했다(22절).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마음의 믿음이다. 그리고 나무와 열매의 비유에서 강조하신 것처럼, 마음에 자리 잡은 믿음은 그의 행동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다(마태복음 7장 13-20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 곧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천국에도 들어간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야고보서의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 2:14) 

야고보서의 말씀도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논리다. 믿음이 있다고 말로만 떠드는 것으로는 그의 마음에 자리한 믿음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바른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는 선한 행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입술만의 고백일 뿐 바른 믿음으로 평가할 수 없다(cf. 약 2:18). 


환란과 시험의 날 

예수님은 실천을 강조하시며 건물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산상보훈의 말씀을 듣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마치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그러나 산상보훈의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문제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이든 모래 위에 지은 집이든 언젠가는 비와 창수와 바람을 맞게 된다는 사실이다. 

[반석 위의 집]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5절) 

[모래 위의 집]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7절)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환란과 시험의 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날은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찾아오는 최후의 심판날일 수도 있고,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찾아오는 환란의 날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시험의 때가 찾아오기 전에는 입술로만 주님을 부르는 신앙과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건물의 기초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란과 시험의 날이 찾아오면 그 차이는 명백히 드러난다. 


 

 

 

"마태복음 성경공부" 글 목록 (Contents)

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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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2. 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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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지금까지 제자의 길에 대해 다양한 내용을 말씀해 주셨다. 지금까지 설명한 제자도는 사람들의 일반적 상식과 상치된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회피하는 좁은 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3-14절) 

예수님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가르치신 제자의 길이 바로 이 좁은 문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제자도가 좁은 문이라는 사실은 산상보훈의 시작부터 명백하였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팔복은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한 사람, 심지어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경우를 복으로 생각하지 않고 저주로 여긴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의 차이는 십자가에서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십자가는 모든 사람이 혐오하는 저주의 상징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다. 십자가만이 부활의 복된 길로 이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아셨기 때문이다. 


나무와 열매의 비유

예수님은 계속해서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라고 경고하신다(15절). 문맥을 고려하면 예수님께서 경계하신 거짓 선지자는 산상보훈이 가르치는 제자의 길을 방해하는 존재, 좁은 문을 피하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유혹하는 존재다. 우리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그들의 열매다. 그들의 말이 아무리 그럴싸하여도 그들의 행동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들을 신뢰해서는 안된다. 이처럼 나무와 열매의 비유는 거짓 선지자를 불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6절) 

신앙의 자리는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믿음과 신앙은 확인할 수도 없고 평가는 더욱 불가능하다. 심지어 나 자신도 나의 믿음과 신앙에 대해 오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어떠한 기준으로 되돌아보아야 하는가? 구체적인 열매가 나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처럼, 지금 나의 결정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인지 아니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인지를 확인하면 정확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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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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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2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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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장에는 문맥이나 논리적 흐름을 확증하기 어려운 구절이 여럿 등장한다. 이러한 경우는 논리적 흐름을 찾기보다 각 구절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는 것이 유익하다. 


비판하지 말라

예수님은 제자가 따라야 할 삶의 자세로 비판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1절) 

예수님은 팔복을 말씀하시며,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5:7). 다른 사람을 대하는 긍휼의 자세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비판 역시 동일하다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2절) 

예수님은 계속해서 티와 들보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티는 작은 먼지요 들보는 건물을 받치는 기둥이다. 자신의 눈에 들보가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 티를 제거해 주겠다고 나선다는 예수님의 말씀(3-4절)은 유머를 가미한 과정법이다. 예수님의 의도는 명백하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잘못만 비판하는 사람의 잘못된 태도를 꼬집는 말씀이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5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산상보훈은 제자도에 대해 가르친다. 그런데 산상보훈은 제자가 지켜야 하는 사명이나 의무만 나열하지 않는다. 그에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핵심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을 선포한다. 팔복이 그 하나의 예라면(마태복음 5장 1-12절 "팔복, 십자가의 또 다른 이름"), 탐심을 경계하시는 말씀 역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베푸시는 하늘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신다(마태복음 6장 19-34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고 본문은 다시 한번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부르며(11절)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을 선포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7-8절)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응답의 약속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도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세우기 위해 비유를 들어 다시 한번 설명하신다. 아들이 떡을 달라면 당연히 떡을 주지 돌을 주지 않는다(9절). 아들이 생선을 달라면 당연히 생선을 주지 뱀을 주지 않는다(10절).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의 하늘 아버지로 소개하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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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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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2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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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위선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바른 신앙을 해치는 무서운 요소다(마 6:1-18). 계속해서 예수님은 참된 신앙을 거짓 신앙으로 바꿀 수 있는 치명적인 유혹으로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 곧 탐심을 경계하신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예수님은 땅에 쌓아둔 재물과 하늘에 쌓아둔 재물을 비교하신다. 먼저 땅에 쌓아둔 재물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19절) 

땅에 쌓아둔 재물은 좀과 동록이 해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좀은 곤충을, 동록은 곰팡이를 가리킨다. 예수님 시대의 재물은 주로 곡식이었다. 그런데 창고에 쌓아둔 곡식은 세월이 지나면 사라졌다. 곤충이 먹기도 하고 곰팡이가 생기기도 했다. 심지어 도둑이 들어와 가져가기도 했다(19b절). 한 마디로, 땅에 쌓아둔 재물의 특징은 유한성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진다. 그러므로 땅의 재물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없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0절)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기 위해서는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 언듯 보기에는 나의 재물이 손해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 쌓아둔 재물만이 영원하다고 말씀하신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예수님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신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눅 12:21) 하늘에 많은 재물을 쌓아둔 사람이 곧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4절)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과 재물을 추구하는 탐심은 양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탐심은 불신앙과 동의어이며, 반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이 참된 신앙이다. 


염려하지 말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5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이상으로 물질을 추구하는 탐심은 불신앙이다. 또한 물질이 부족하다고 내일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도 동일하게 불신앙이다. 염려하는 마음이 어떻게 신앙과 연관되는지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통해 설명하신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6절)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8b절) 

위의 구절에서 주목할 점은 하나님을 "너희 하늘 아버지"라고 부르신다는 점이다(26, 32절). 하늘의 아버지께서 친히 먹이고 입히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다. 그러므로 염려하는 마음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물질의 풍요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다. 탐욕이 불신앙이듯(19-24절), 염려의 반대말은 신앙이 된다. 물질을 섬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염려를 떨치기 위해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추구할 삶의 방향을 이렇게 제시하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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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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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을 경계하신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1절)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보이는 사람 앞에서 행동하려는 유혹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예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강조하신다. 구약 성경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가르친다. 하나님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평가하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살피신다. 


구제할 때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행하지 말라는 말씀을 구제, 기도, 그리고 금식에 적용하신다. 먼저 구제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2절) 

"외식하는 자"의 원례적 의미는 연극인을 뜻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은 그렇지 않은데 대본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음식이 필요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거리에서 나팔을 불곤 했다. 음식을 나눠준다는 소식을 필요한 이들에게 전하는 실용적 측면도 있었겠지만, 나팔을 부는 사람들은 전시효과를 기대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3-4절)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것은 "몰래" 혹은 "은밀하게"하라는 뜻이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이 은밀한 중에 선행을 베풀 수 있다. 


기도할 때 

기도는 신앙생활의 핵심이요, 하나님을 향해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행위다. 그런데 기도할 때조차 하나님을 잊은 채 사람들만 인식하려는 유혹은 그치지 않는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절) 

예수님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기도를 하기 위해 반드시 골방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는 기도를 강조한 말씀이다. 기도에 대해서는 '은밀하게' 기도하는 것 외에도 한 가지 권면이 추가된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7절)

중언부언은 하나님을 사람처럼 여기는 불신앙의 결과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처지와 소원을 모두 아신다(8절). 기도의 응답 역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 가운데 베푸신다. 그러므로 많은 말로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자세는 하나님을 여타의 인간처럼 생각하는 처사다. 구약의 전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권면한다(전 5:2).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기도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참된 기도를 좋아하신다." 


금식할 때

예수님은 은밀한 신앙생활의 원리를 마지막으로 금식에 적용하신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6절) 

당시 유대인들은 금식의 고통을 외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얼굴을 씻지 않았고(당연히 기름도 바르지 않았다),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뿌렸다. 수염을 쥐어 뜯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행위에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는 인간의 사악한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하신다. 특별히 로마의 통치가 시작되고 헤롯 가문이 왕위에 앉으면서, 금식은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이질감을 표현하는 방식이 되었다. 스스로 경건하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은 이방민족의 통치를 받는 민족의 아픔을 금식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금식이란 로마 정부에 협력하는 이들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면서 자신들은 경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마태복음 성경공부" 글 목록 (Contents)

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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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2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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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뛰어날 것을 요구하셨다(마 5:20). 이제부터 시작되는 이른바 '예수님의 반제(Antithesis)'는 (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율법의 참된 의미를 저버렸는지, 그리고 (2) 예수님께서 어떻게 율법의 바른 의미를 되살리셨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자 칼뱅은 예수님을 새로운 율법의 창시자가 아니라 율법의 성실한 주석가라고 평가하였다.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 6계명이다(출 20:13).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계명을 심판과 연결하여 해석하였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1절) 

살인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해석은 반대로 살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악을 행하였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은 저지르지 않았다. 그리고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가르치면서, 자신들은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난 의인이라고 자부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오류를 분명히 지적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2절) 

예수님은 생명을 빼앗는 살인 행위만이 아니라 형제에 대해 노하고, 라가라 비방하고, 미련한 놈이라 욕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가르치신다. 이것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율법의 참 뜻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 사이의 원망과 갈등이 생각나면, 예배를 멈추고 먼저 원망과 시비를 해결하라고 말씀하신다(23-24절). 살인이 아니더라도 원망과 갈등만 있어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심판과 처벌이 아니겠는가? 


간음하지 말라 

십계명의 제 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고 명령한다(출 20:14). 하나님의 뜻은 너무도 명백하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조차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계명을 따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음욕을 제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율법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피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찾아냈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1절) 

율법의 전문가답게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신명기 24장 1절을 찾아내어 인용한다. 이로써 그들은 이혼 증서를 써주면서 자유롭게 아내를 버렸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새로운 아내를 맞아들였다.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계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 간음을 행하며 한때는 자신의 아내였던 여인들의 삶을 불행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32절)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새로운 말씀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제 7계명을 다시 한번 강조하시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인용하는 신명기의 구절은 예외 조항이라는 점을 확증하셨다. 거룩한 부부의 관계를 그 누구도 쉽게 깨뜨려서는 안된다. 


 

 

"마태복음 성경공부" 글 목록 (Contents)

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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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2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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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리는 복을 선언했다면(마 5:1-12),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가르친다. 


세상의 소금과 빛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소금과 빛으로 표현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3-14절) 

"너희"라는 대명사는 본문의 바로 앞에 나왔던 팔복의 대상, 곧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신다. 이들은 장차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이 아니라 이미 소금이고 이미 빛이다. 곧,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순간 그들에게는 복음으로 세상에 맛을 내고 빛을 비추는 사명이 주어졌다.  남은 과제는 그 사명을 감당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다.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려진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하면 산 위에서 비추는 빛처럼 세상 사람들이 그 빛을 바라보게 된다. 

예수님은 소금과 빛의 사명이 구체적으로 "착한 행실"이라고 설명하신다(16절). 또한, 팔복 선언(마 5:3-12)과 소금과 빛의 사명(마 5:13-16)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팔복이 가르치는 십자가의 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마태복음 5장 1-12절 "팔복, 십자가의 또 다른 이름"). 온유한 행동, 의에 주리고 목마른 모습, 긍휼히 여기는 것, 화평하게 하는 말과 행위 등이 제자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율법의 완성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 대해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초대교회의 중요한 이슈였다.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고 공격했다(행 6:13). 바울 역시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행 21:17-26). 율법에 대한 논쟁은 교회 안에서도 격렬하여 예루살렘 공의회의 주요 안건이었다(행 15장). 이것은 초대교회만 아니라 현대 그리스도인에게도 구약성경을 어떻게 읽고 적용해야 하는가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7절)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 율법의 완성이란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율법의 조문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을 넘어 그 참된 정신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유대 민족 중심의 율법 해석과 적용에서 벗어나 열방을 구원하는 복음의 관점에서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율법을 대하는 자세 역시 율법의 폐지가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어야 한다. 

뱅크스(R. Banks)는 위의 구절에서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제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이 율법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 이전에 율법을 완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 본문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양용의 교수는 율법을 완성하시는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한다. "예수는 율법의 연속선상에서 서 계시면서도 율법의 한계에 머물지 않으시고 율법의 궁극적 목표를 성취하심으로써 율법을 초월하신 분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경시하는 자들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율법주의도 반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8절) 

"천지가 없어지기 전"이라는 표현은 특정 시한을 지칭한다기보다, '결코'라는 의미의 과장법이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율법의 효력이 멈춘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율법은 완성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예수님은 다음 구절에서 율법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시점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19절) 

17~18절은 '율법'이라는 단어를 쓰고, 19절에서는 '계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차이는 17~18절과 19절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듯하다. 17~18절이 예수님의 오심으로 율법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을 묘사한다면, 19절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천국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마지막 심판의 때를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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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2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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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니 각지에서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다(마 4:25).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 말씀을 가르치신다(1절). 산상보훈은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 가르친다. 


팔복 

예수님은 여덟 가지 복을 선언하며 산상보훈을 시작하신다. 팔복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복 개념과 전혀 다르다. 오히려 사람들이 불행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예수님은 복으로 선포하신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은 한 마디로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만이 참으로 복된 길이라고 제자들을 초대하신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3절) 

누가복음에는 "심령이"라는 단어가 없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한다(눅 6:20). 가난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선사하지도 못한다. 예수님은 가난하여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사람이 복 되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4절) 

애통은 가난한 자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궁핍하고 고통스럽기에 슬퍼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슬픔을 넘어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애통 그 자체가 복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슬픈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복 되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약속하신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절) 

다른 사람의 악한 행동으로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당했음에도 넓은 마음으로 관용하고 양보하는 것이 온유다. 세상은 온유한 자가 언제나 손해를 볼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가치관을 뒤엎으신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갚아주시기 때문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6절) 

인간의 의는 상대적이다. 나의 관점에서는 정의롭지만,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불의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의의 한계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성취되기에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마침내 만족을 얻는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7절) 

나에게 찾아온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도 힘겨운 일이다. 그런데 긍휼이란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나의 것으로 여기는 마음이다. 그러니 그 무게가 얼마나 무겁겠는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그 자신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긍휼히 여길 것이요,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겨주신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8절)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간사하지 않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세상의 처세술은 자신의 속 마음을 드러내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9절)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고 분쟁이나 갈등이 일어날 때 앞장서서 이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평화의 사자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랑하신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0절)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복은 세상의 가치관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이 누리는 복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러한 사람들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팔복의 결론으로, 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물론, 자신의 잘못으로 벌을 받으면서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고 거짓으로 홍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은 누가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복 된 사람인지 분명히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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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2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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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사로잡힌 뒤,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신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 구약 성경의 성취라고 말씀한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4-16절) 

갈릴리는 북 이스라엘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왕에게 한번(왕하 15:29), 살만에셀 왕에게 또 한 번 점령당한(왕하 18:9 아픔의 역사가 있다. 위의 구절에서 "이방의 갈릴리"는 갈릴리 하부를 가리킨다. 이곳이 "이방"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솔로몬이 갈릴리의 도성 일부를 두로 왕 히람에게 주었고(왕하 9:11) 이방인들이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섞여 살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큰 아픔을 겪은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의 빛이 절망과 죽음에 빠진 이들에게 비추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사람을 낚는 어부

갈릴리 해변을 걸으셨던 예수님은 당시 너무도 평범한 광경을 목격하신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8절) 

예수님 시대의 갈릴리 해변에는 언제나 어부들이 있었다. 갈릴리 바다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당시에 갈릴리 해변을 걷는다면 어부들이 그물을 던지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 구절에는 당시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묘사한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19-20절) 

당시 유대 사회에서 스승이 제자를 찾아가는 경우는 없었다. 사람들은 랍비를 찾아가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요청했고, 스승은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예수님은 직접 찾아가 갈릴리의 어부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불러주신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에서(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21-22절)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담겨 있는 강력한 호소력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얼마나 강력했는지 어부들은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베드로와 야고보는 그물을 버려두었고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들의 헌신과 순종이 아름답게 빛나는 장면이다. 


두루 다니사 

갈릴리는 매우 넓은 범위를 의미하는데, 나사렛이나 가버나움은 갈릴리에 속한 마을이었다. 예수님은 한 지역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갈릴리의 온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셨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3절) 

갈랄리를 두루 다니며 행하신 예수님의 사역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가르치시며 (2) 복음을 전파하시며 (3) 병을 고치셨다. 이 세 가지 사역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 마태복음은 계속 서술한다. 본문의 바로 뒤에 이어지는 산상보훈(마 5-7장)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셨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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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