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1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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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건이 일어나면 언제라도 마귀는 방해공작을  실시한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며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사건이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어김없이 마귀의 시험도 시작된다.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밤낮으로 금식하셨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몹시 굶주리셨다. 이러한 약점을 틈타 마귀가 시험한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3절) 

몹시 굶주린 상태에서 돌을 떡으로 만드는 것은 왜 시험인가?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들기도 하시고, 오병이어로 수천 명을 먹이기도 하셨다. 돌을 떡으로 만든다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돌로 떡을 만드는 것이 마귀의 유혹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위의 구절에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단의 논리는 이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굶주려서는 안 된다.' 이를 현대적 언어로 바꾼다면 이렇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워야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4절) 

예수님은 신명기 8장 3절은 인용하신다. 이 구절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하였던 장면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 그러나 때로는 믿음의 성숙을 위해 광야와 같은 궁핍도 허락하신다. 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뛰어 내리라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 곧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려갔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다. 그런데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안으로 이끌지 않고 성전의 꼭대기로 데려간다(5절).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인 성전에서 하나님을 높이기보다 예수님 자신의 능력을 뽐내라고 유혹한다.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6절) 

이번에는 마귀도 시편을 문제는 성경 본문의 뜻을 왜곡했다는 점이다. 시편 91편 11절에는 "네 모든 길에서"라는 구절이 있는데, 마귀는 의도적으로 이 구절을 누락했다. 시인은 성도들을 그들의 인생길에서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였는데, 마귀는 이 구절을 왜곡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돋보이게 하라는 유혹으로 바꾼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7절)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6절을 인용하시며,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것이 큰 죄임을 말씀하신다. 마귀는 예수님께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한계선을 은근슬쩍 넘으라고 유혹하였다.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누리는 위대한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까지도 이용하라는 시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주권을 조금도 침범하지 않으면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신다. 


내게 경배하라

마귀가 이번에는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데려간다. 그곳에서 천하 만국과 그 모든 영광을 보여주며 유혹한다.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9절) 

사단의 의도는 명백하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넘어 더 크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라는 시험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할 수 있지 않느냐는 유혹이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0절) 

예수님의 대답은 명백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에 만족하며 하나님 한 분께만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계셨기에 마귀에게 시험도 받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시험을 물리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도 시험은 찾아온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는 이미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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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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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기 위해 요한을 찾아가신다(13절). 예수님의 행동은 예수님의 사역이 요한의 선포와 세례를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의 뒤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4절)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 분명히 알았기에, 요한의 반응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세례를 받겠다는 예수님의 제안에 요한은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지는 요한의 반대보다 훨씬 강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절) 

예수님은 회개가 필요 없으신 분이다. 그러니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던 요한은 예수님의 의도를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다(cf. 마 3:6, 11a). 게다가 인류의 구원자가 어떻게 한낱 인간에게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느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위해 세례를 받으셨다. 이후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를 공유하여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은 먼저 세례를 받으셨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 신비를 보다 자세히 설명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롬 6:3)

예수님께서 받으시려는 것은 회개를 위한 세례가 아니라 인류 구원의 사명을 위한 세례다. 예수님은 이것을 "모든 의"라고 말씀하셨는데, 성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는 것은 의로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렸다. 성경에서 하늘이 열린다는 표현은 천상의 세계, 혹은 영적 세계가 사람들에게 계시되었다는 의미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6-17절) 

삼위 하나님이 한 장면에 모두 등장하는 흔하지 않은 성경의 사건이다. 먼저 성자께서 물에서 올라오신다. 그 위에 성령께서 임하신다. 그리고 성부께서 친히 음성을 들려주신다.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모습을 본문은 비둘기로 표현한다. 비둘기라는 상징은 이후 공생애를 통해 죄인을 온유하게 부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상하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사 42:3) 

성부 하나님은 친히 음성을 통해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밝히신다. 하늘이 열리는 이 자리에서 예수님의 본체, 곧 예수님의 실제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동시에 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은 성도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다는 의미도 포함한 말씀이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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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1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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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뒤(마 1-2장),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에 앞서 세례 요한의 활동을 서술한다. 예수님의 사역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1절) 

요한이 말씀을 선포했던 장소는 "광야"였다. 구약의 선지자 말라기 이후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긴 침묵의 시간이 흘러오는 동안 유대인들의 영적 상태는 모든 것이 메마른 광야가 되었다.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은 광야에서 말씀을 선포하신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나타난 것이다(3절).


회개하라 

세례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다(4절). 그의 모습은 광야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다. 요한의 의복은 실용적인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낙타털은 물기가 쉽게 빠지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강물에 들어가 세례를 주었던 요한에게 쉽게 마르는 낙타 털 옷은 장점이 많았을 것이다. 한편, 요한이 띠었던 가죽 띠는 엘리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왕하 1:8). 세례 요한이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요한은 비록 '세례'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그는 세례를 베풀기에 앞서 말씀을 선포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2절) 

세례 요한은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런데 그가 선포한 회개는 임박한 천국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순서다. 회개하면 천국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정반대로, 이미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여 그 천국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이다. 그런 점에서 회개의 시작점은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나에게 찾아온 천국, 곧 나에게 부어진 하나님 은혜의 결과다. 세례 요한의 이 선포는 이후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며 선포하셨던 말씀과 동일하다(마 4:17).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5-6절) 

세례 요한이 천국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하자,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찾아와 세례를 받았다. 위의 구절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이라는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한다. 넓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몰려왔고, 요한보다 6개월 뒤에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의 사역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는 더 넓은 지역에서(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 "수많은 무리가" 몰려왔다(마 4:25).


회개에 합당한 열매

세례 요한이 천국을 전파하며 세례를 베푸는 장소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마음의 회개 없이 세례만 받으려는 사람들의 표상이다. 세례 요한은 매우 강한 어조로 이들을 질책한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7b-9a절) 

요한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했다. 천국은 회개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마음이 완악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러니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요한의 선포는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임박한 진노"가 된다. 회개란 한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변화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변화는 마치 나무가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듯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 이것이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다. 요한은 그들이 참되게 회개하지 못하는 핵심 이유를 지적한다. 곧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교만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는 사람만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즉각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없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와 동방 박사의 경배(마태복음 2장 1-12절 "예수님의 탄생과 사람들의 상반된 반응")를 통해 이미 동일한 교훈을 강조한 바 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

세례 요한의 계속되는 설교는 예수님에 대한 소개로 이어진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1절)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다. 바로 여기에 세례와 관련하여 인간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된다. 사람은 외적으로 보이는 상징으로만 세례를 집례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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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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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1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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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인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도 사람들은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하였다.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제기했던 문제 중에는 예수님의 고향에 대한 이슈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요 7:41a-42)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마 2:1). 동시에 예수님은 갈릴리의 나사렛 사람으로 불렸다(23절). 이 두 가지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마태복음 2장은 이 질문에 답한다. 


베들레헴에서 애굽으로, 애굽에서 갈릴리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이에 대해서는 앞의 단락(마 2:1-12)이 자세히 묘사했다. 이제 본문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유년 시절을 지낸 과정을 설명한다. 여기에 헤롯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3절) 

요셉은 일찍이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였다는 사실을 꿈에 나타난 천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마 1:20). 이번에도 천사는 꿈을 통해 헤롯의 음모를 알려준다. 요셉은 두 번 모두 천사의 이야기에 즉각 순종한다. 이는 그가 꿈에서 들은 말씀이 매우 확실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후 그 가족이 갈릴리 나사렛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설명하면서, 애굽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는 마태복음을 읽는 독자들에게 출애굽을 연상시킨다.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호 11:1)는 말씀을 인용하며 마태의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던 헤롯은 내면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두 살 아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라 명령한다. 이 역시 모세가 태어날 때 애굽의 바로가 모든 유대 남자를 죽이라 명령했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처럼, 예수님을 통해 온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참고자료> 헤롯의 아동 학살에 대한 역사적 자료
AD 5세기의 작품인 마크로비우스의 <축제>(Saturnalia)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유머를 소개한다. 헤롯이 두 살 미만의 남자 아이를 모두 죽이라 명령했을 때 헤롯 자신의 아들도 그 연령에 해당했다. 그래서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의 아들보다 차라리 헤롯의 돼지가 되겠다"고 농담했다. 


나사렛 사람 예수 

본문에는 모두 세 번 구약 성경을 인용한다.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마지막 구절이다.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23절) 

마태는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이와 같은 예언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고대 교부였던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은 구약 성경에는 많은 예언자들의 책이 소실되었다고 주장했다. 본문이 인용하는 구절은 소실된 예언서의 일부라는 해명이다. 한편, 종교개혁자 칼뱅(John Calvin)은 "나사렛 사람이라"는 구절을 민수기 6장의 나실인으로 해석한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나사렛 사람이라 불렸던 역사적 사실은 예수님께서 구원의 사역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라는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의 학자들 중에는 헬라어 구문에 집중하기도 한다.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선지자가 복수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본문 23절은 구약 성경의 한 구절을 뽑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을 종합한 구절이라는 설명이다. 



 

 

"마태복음 성경공부" 글 목록 (Contents)

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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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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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시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찾아와 경배한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헤롯과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탄생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너무도 대조적이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였던 사람들에게 붙여진 '박사'(magi)라는 칭호는 페르시아와 갈대아 사람들이 천문학자나 현인들에게 붙였던 이름이다. 그들은 천문학자답게 별을 관찰하던 중 유대인의 왕이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1-2절) 

박사들은 천문학의 지식은 풍부했지만 구약성경에 대한 지식은 부족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찾았다. 반면,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구약에 대한 지식으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날 장소가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이라고 정확히 알려준다.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5-6절) 

마태복음 1장에 이어 마태복음에서 두 번째로 구약성경을 인용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미가서 5장 2절을 인용한 사람들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는커녕 이후 그분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거부했던 대제사장들과 율법교사들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그들이 암송하는 구약의 모든 예언은 유대인의 왕이요 인류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는 사실이다. 


동방 박사들의 경배

헤롯이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는 동안 헤롯은 물론이요 예루살렘의 어느 누구도 그들과 동행하지 않았다. 율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지만, 구약을 통해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았던 유대교 지도자들은 아기 예수님을 방문하지도 않았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지리를 잘 아는 유대인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동방의 박사들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친히 별을 하나 보여주며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셨다(9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1절)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자 엎드려 경배한다.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고대 페르시아에서 왕을 알현할 때, 예물을 드리는 것은 일종의 의식이었다. 창세기도 야곱이 아들들을 애굽의 총리(요셉)에게 보내며 여러 가지 예물을 챙겨주는 장면을 묘사한다. 야곱은 양식을 구매하는데 필요한 돈의 두배(금)을 챙겼고, 그 외에도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께 바친 유향과 몰약을 포함시켰다(창 43:11).

교회에서 동방 박사를 세 명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그들이 드린 예물이 세 가지 종류였기 때문일 뿐 정확한 근거는 없다. 동방 박사에 대해 알려주는 성경 본문이 그들의 숫자에 대해 침묵하기 때문이다. 고대 기독교 문서 가운데 크리소스톰의 글로 알려진 문헌에는 동방 박사를 14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확실한 근거에 입각한 묘사는 아니다. 다만, 고대교회가 동방 박사를 세 사람으로 한정하여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였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탄생이 유대인들의 경계를 넘어 모든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라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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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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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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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마태복음은 주로 요셉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이는 예수님의 탄생을 마리아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누가복음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 특징이다. 마태가 요셉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서술하는 이유는 요셉을 연결 다리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다윗의 자손이었다. 


다윗의 자손 그리고 동정녀 탄생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다. 그런데 동시에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다. 어떻게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본문은 유대인의 약혼 제도를 언급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8절) 

당시 유대 사회의 약혼이란 결혼에 앞서 약 1년 정도 유지되던 관계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약혼은 오늘날의 약혼보다 훨씬 강한 법적 구속력을 가졌다. 약혼을 하면 비록 함께 살지는 않지만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 이미 부부가 되었기에 약혼의 관계를 끊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부족하고, 이혼을 하거나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죽어 사별이 되어야 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9절) 

위의 구절은 요셉의 의를 이야기한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요셉의 의에 대해 마리아가 약혼의 언약을 어긴 죄를 범하였을 때 (마리아가 그러한 죄를 범했다고 요셉은 확신했다), 자신은 마리아가 행한 간음의 죄에 동참하지 않으려는 의로움이었다고 해석한다.  요셉의 의로움에 대해 어떠한 해석을 내어 놓든, 아내의 부정을 확인한 요셉은 마리아와 이혼하려 했다(위의 구절에서 "끊고자 하여"). 동거하지 않았을 뿐 요셉과 마리아는 약혼을 통해 이미 합법적 부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야곱과 마리아의 합법적 부부 관계에서 태어난 다윗의 후손이요, 동시에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메시아, 곧 인류의 구원자이시다. 


예수님의 이름 

천사는 요셉에게 동정녀 탄생의 신비를 설명하면서 '예수'라는 이름도 지어준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1절)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이다. 천사는 예수님의 이름을 알려주며, 그분이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분명히 선포한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이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사역임을 가르쳐준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마태복음이 이제부터 서술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죄가 초래한 모든 저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자유롭게 하시는 구원의 사건임을 미리 선포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3절) 

이사야 7장 14절을 인용하는 위의 구절은 메시아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물론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실현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은 그분의 역할과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사야서의 임마누엘 예언을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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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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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3. 1. 1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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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마태복음 2장은 예수님은 어디에서 오셨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예수님의 족보 

예수님의 족보에는 많은 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에 반복되는 세 명의 이름이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1절)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17절) 

예수님의 족보에 많은 이름이 등장하지만, 아브라함-다윗-예수 그리스도의 세 이름이 처음과 마지막을 감싸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 언약(창 12:3)의 성취자와 다윗 왕조의 계승자(시 72:5; 89:29)라는 선언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구약 성경을 성취하신 분이라고 답한다. 


장자라고 믿음의 계보가 아니다

창세기가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족장들의 이야기를 마태는 한 문장의 족보로 요약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2절) 

위의 구절에서 특이한 사실은 족보가 장자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이 낳은 첫번째 아들은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다. 물론, 이스마엘은 사라가 아닌 하갈이 낳은 아들이다. 그러면 이삭의 뒤를 이은 야곱은 어떤가? 야곱 역시 에서에 이은 차자다. 게다가 에서와 야곱 모두 리브가가 낳은 아들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계보는 차자인 야곱에게 이어졌다. 이러한 예는 곧 이어 또 다시 등장한다.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라고 말씀하는데, 유다는 야곱의 네번째 아들이었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이라는 특출한 아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야곱을 이어 유다가 계보를 잇는 것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든 유추를 무력화시킨다. 믿음의 계보는 하나님의 선택이요 은혜다. 

예수님의 족보에 여인의  이름이 등장한다. 다말(3절), 라합(5절), 룻(5절),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6절)다. 이들의 공통점은 첫째로 이방인이라는 점이요, 또한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말
가나안 사람
시아버지의 아들을 낳음
라합
여리고(가나안) 사람
기생
모압 사람
사별과 재혼
밧세바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우리야의 아내에서 다윗의 아내로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에 이방인이며 또한 결혼생활이 복잡했던 여인들의 이름을 삽입하며 예수님께서 이방인과 죄인까지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의 성취가 된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 12: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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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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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1. 3. 2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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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이 장면을 묘사하는 마태복음 27장 27-44절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님에 대한 인간들의 비방과 조롱으로 가득하다. 예수님께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며 침을 뱉고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는 때리는 로마 군인들의 희롱(27-31절)을 시작으로, 지나가는 자들과 대제사장들의 비방이 계속되었고(39-43절), 마지막으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예수님을 욕하였다(44절). 예수님의 십자가 형에 대한 묘사는 단 한 절에 불과하지만(마태복음 27장 35절),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신 그분에게 인간들이 쏟아 놓은 비방과 욕설이 더욱 부각되어 드러난다. 


인간의 비방과 사탄의 시험

예수님을 향한 인간들의 비방은 역설적이다. 그들의 입에서 ‘유대인의 왕’ 혹은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호칭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로마 군인들의 희롱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묘사하는 희롱이었다. 

[예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마태복음 27장 28-29절)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죄패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글귀가 붙어 있었다. “유대인의 왕 예수”(마태복음 27장 37절) 지나가는 자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들먹이며 예수님을 모욕하였고(마태복음 27장 40절), 대제사장들도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고 말하며 희롱하였다(마태복음 27장 42절). 이들은 ‘유대인의 왕’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에 대해 하나의 공통된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이 진정 유대인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마태복음 27장 40b절)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태복음 27장 42b절) 

이러한 논리의 결정판은 대제사장의 발언인 43절에 등장한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마태복음 27장 43절)

여기에서 발견하는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예수님을 비방하는 이들의 논리가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하였던 사탄의 논리와 동일하다는 것이다(마태복음 4장 3절, 6절). 이들은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예수님께서 완성하여 가시는 십자가의 구원을 회방하고 있다. 


예수님의 반응

로마 군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이 없다. 나아가 수많은 사람들의 비방과 조롱에 대해서도 침묵하신다. 그 모든 수치와 치욕을 인내하신 것이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자의로 행동하신 장면이 딱 한 구절 등장한다.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마태복음 27장 34절) 

예수님은 왜 쓸개 탄 포도주를 거부하셨을까?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바가 있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26장 29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자들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를 벌일 때까지 고난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는 예언이기도 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계신 지금 고난의 시간을 묵묵히 인내하신다. 

쓸개 탄 포도주가 십자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잊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예수님의 행동은 자신의 온몸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오롯이 감당하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유대인의 왕’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거들먹거리며 예수님을 향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희롱하였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모든 아픔을 인내하시며 참된 유대인의 왕,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아의 길을 걷고 계셨다. 


토의 질문 

1. 인간들이 어리석은 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희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하여 우리의 입술로 죄를 지은 적은 없는지 되돌아봅시다. 

2.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모든 수치를 인내하시며 인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깊이 묵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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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 그리스도, 언약의 성취자" 마태복음 1장과 2장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장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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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성경공부2021. 3. 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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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으로, 그 주제는 ‘심판’이다. 마태복음 25장은 3개의 비유로 되어 있는데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비유’다. 그러나 양과 염소의 비유로 불리는 본문은 비유나 상징으로 해석하기보다 최후 심판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최후의 심판

본문은 최후의 심판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마태복음 25장 31-32절) 

예수님께서 자신을 심판주로 묘사하시는 이 구절은 오해의 여지가 없다. 비록 지금은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셔야 하지만, 마지막 때가 이르면 예수님은 재림하실 것이며 심판주로 영광의 보좌에 좌정하실 것이다.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심판하신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실 때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은 더 이상 인간의 외면과 회피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본문은 최후 심판의 결과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마태복음 25장 34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태복음 25장 41절) 

예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예비된 나라’, 곧 천국을 약속하신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임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34절에 등장하는 나라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요, 최후의 승리자들이 들어가는 천국이다. 반면, 예수님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예비된 영원한 불’을 명하신다.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임하실 때까지 유보되었던 형벌이 그날에는 더 이상 미뤄지지 않고 멸망하는 자들에게 선고될 것이다. 이러한 두 종류의 심판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신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25장 46절)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을 이처럼 생생하게 묘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심판주로 반드시 재림하며 그때에 모든 인간은 영벌에 처하는 이들과 영생에 들어가는 이들로 구분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다. 


심판의 기준

본문은 최후 심판의 결과를 생생하게 묘사하지만, 본문의 강조점은 어디까지나 심판의 기준이다. 예수님께서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의인은 사랑과 도움을 베풀었지만 악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의인들과 악인들 모두 자신들이 언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눈치채지 못한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장 40절)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마태복음 25장 45절) 

일반적으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우리 사회의 약한 이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의 기준은 약한 이웃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행동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를 조금 더 확장하면, 영생과 영벌은 인간의 선행에 달린 것이 된다. 그러나 40절의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라는 표현에서 “나의 형제”라는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형제란 예수님의 제자를 가리키는데, 곧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연약한 이웃을 향한 선행 여부가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의미다.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연약한 형제를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행동이 되며,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연약한 형제를 외면하는 것이 예수님을 외면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 마지막 심판 날에 주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토의 문제 

1. 본문이 생생하게 묘사하는 최후 심판의 장면을 생각하면 나의 마음에는 어떠한 감정이 일어나는지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2.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오늘 내가 섬겨야 하는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인가요? 



 

 

"마태복음 성경공부" 글 목록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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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마태복음 성경공부2021. 3. 1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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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덟 가지의 복을 선언하신 적이 있다(마태복음 5장). 그런데 본문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곱 가지의 화를 선언하신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을 선언하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화를 선언하셨는가?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가장 분명한 갈림길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이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복을 선언하신 대상은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한 사람들이요,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께서 화를 선언하신 대상은 예수님을 마지막 순간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한 자들이다.

 

 

겉과 안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여섯 번째로 화를 선언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겉과 안의 중요성을 뒤바꾸었기 때문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태복음 23장 25-26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겉모습만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마음에는 탐욕과 방탕이라는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 차게 되었다. 겉모습을 깨끗하게 가꾸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성경이 초지일관 강조하듯이 하나님은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신다. 율법의 박사들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율법을 잘 알아 다른 사람을 가르치던 그들이 왜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자신의 속마음은 방탕과 탐욕으로 가득 차게 내버려 두었을까? 여기에 신앙의 역설이 있다. 머리로 하나님에 대해 잘 알면서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보이는 겉모습만 신경 쓰고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속마음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처럼, 지금도 자신을 굽어살피시는 하나님의 존재는 믿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그것이 그들의 행동을 통해 표현되었다.

 

 

박해자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곱 번째로 화를 선언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와 의인들을 박해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먼저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였던 박해를 말씀하신다(마태복음 23장 30-32절). 그런데 문제는 박해의 역사가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셨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마태복음 23장 32절)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들의 조상처럼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박해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그들이 박해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저지른 박해는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것보다 훨씬 더 악독한 죄다. 그들의 조상은 하나님의 종들을 박해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박해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서운 심판을 선언하신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장 33절)

 

예수님은 계속해서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장면도 언급하신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 보내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파송한 교회의 일꾼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마태복음 23장 34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일곱 가지의 화를 선언하신 뒤, 예수님은 그 결론으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하나님은 그들을 감싸 안으려고 수없이 노력하셨지만 그들은 끝끝내 하나님의 품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최후의 통첩을 보낸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마태복음 23장 37-38절)

 

 

토의 문제

 

1.    우리는 외모와 겉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내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드는 유혹, 나에게는 어떠한 것이 있나요?

 

2.    끝까지 하나님의 품을 벗어나려 했던 유대인들도 하나님은 수없이 은혜로 품으려 노력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잘못과 실수를 받아 주시고 포용해주신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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