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2022. 12. 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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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성탄의 충만한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 우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많이 듣고 또 부릅니다. 캐럴이라는 단어는 전 세계적으로 성탄절 음악, 성탄절 찬양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어에서 기원한 캐럴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야외 축제 등에 참여하면서 함께 기쁨을 표현했던 노래를 가리키는 용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도 크리스마스 캐럴 중에는 기쁨, 그리고 즐거움을 표현한 음악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에도 성탄절의 기쁨을 노래하는 곡이 많지요. 예를 들어, 찬송가 117장 “만백성 기뻐하여라 하늘의 평화가 저 마귀 권세 이기고 우리를 구했네” 이 찬양의 마지막 후렴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오 기쁘다 반가운 소식 주 오셨네” 어디 그뿐인가요? 성탄절이 되면 수없이 듣고 부르는 찬송가 115장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기쁘다 구주 오셨네” 크리스마스 캐럴만이 아닙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어떻게 인사합니까? MERRY CHRISTMAS!! 기쁨의 성탄, 즐거운 성탄이라는 의미이지요. 이처럼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인사를 통해, 그리고 노래를 통해 성탄의 기쁨을 표현합니다. 그 이유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최고의 선물, 그것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물, 메리 크리스마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수님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기 위해 먼 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시는 분이 어디에 계신지 알고 싶어 먼저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대인의 왕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곧장 베들레헴으로 경로를 변경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장소 바로 위에 머무르자, 그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장면을 마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 2:10) 

여러분, 동방의 박사들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던 것일까요? 예수님은 어린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아직 30년이라는 세월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이제 막 태어난 아기 예수님이고,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준비한 예물을 드린 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후 성경의 기록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혹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신 사역으로 말미암아 동방의 박사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이 주어졌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헤롯의 눈길을 피해 조심조심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지요. 이처럼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부터 그 어떠한 유익도 얻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들이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바로 여기에 예수님의 성탄이 동방의 박사들에게 수여한 최고의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Merry Christmas, 기쁜 성탄절, 즐거운 성탄절, 곧 성탄의 기쁨입니다. 

마태복음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했던 동방의 박사들을 소개한다면, 누가복음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였던 목자들을 소개합니다. 목자들은 동방의 박사들처럼 예수님의 탄생을 미리 준비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바로 그날도 목자들은 양 떼를 지키기 위해 밖에서 가축과 함께 지내고 있었지요. 바로 그때 어디선가 천사가 나타나 목자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 2:10) 

천사는 목자들에게 매우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인류의 구원자, 곧 그리스도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입니다. 목자들은 천사들이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서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을 기록한 누가는 그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서술하였습니다.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눅 2:21) 

여러분,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목자들의 입장에서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유익을 가져다주었나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기까지는 아직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30년이 흐르는 동안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였던 목자들은 나이 많은 노인이 되거나 혹은 이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기쁨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바라보았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유익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지만, 그날 밤 예수님을 찾아온 목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대한 선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Merry Christmas, 기쁨의 성탄, 즐거움의 성탄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나 베들레헴의 목자들은 이제 막 태어난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던 공생애는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사도 요한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공생애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의 탄생, 곧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6) 

사도 요한은 동방의 박사들이나 베들레헴의 목자들처럼 아기 예수님의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충만으로부터 은혜 위에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아기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바라보지는 못했지만 사도 요한에게도 하나님은 성탄의 위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Merry Christmas, 성탄의 기쁨과 성탄의 즐거움입니다.


만백성 기뻐하여라

본문 시편 97편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쁨과 즐거움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시편 97편 1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기쁨과 즐거움을 노래하는 이 구절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시인은 누구에게 기뻐하고 누구에게 즐거워하라고 초대합니까?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1b절) 땅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워하자고, 바다에 떠있는 섬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도 함께 기뻐하자고 초대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자손만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만백성이 함께 기뻐하자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탄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기쁨은 먼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기쁨입니다. 그러나 성탄의 기쁨과 즐거움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성탄이 선사하는 크고 위대한 기쁨은 성도들의 기쁨을 넘어 만백성이 함께 즐거워하는 기쁨입니다. 

시편 97편 1절 말씀을 유심히 관찰하면 우리는 먼저 누가 기뻐해야 하는지 기쁨의 주체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쁨의 이유가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 시편 97편 1절은 기쁨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1a절) 이것이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니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은 즐거워하고 바다에 사는 모든 사람들도 기뻐하자는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직접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약속을 맺을 때, 그리고 시내산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약 40년 동안 하나님은 그들을 친히 다스려 주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중심에는 회막이 세워져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 위에 구름과 불의 모양으로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회막에서 정해진 율법의 절차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통치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모든 장면을 다 소개하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시편 97편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던 그때의 장면을 암시하는 대목이 여럿 등장합니다. 지금 시인이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라고 노래하며 만백성이 함께 기뻐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그들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기쁨의 감정만 일으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기쁨이라는 감정에 앞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시는 모습은 큰 두려움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막에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레위인, 레위인 중에서도 제사장이었던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으신 다른 불로 향을 피워드리다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하잖아요. 이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 분향을 했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악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절차상의 문제,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로 그 불로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제사장도 아닌 레위인, 레위인도 아닌 일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통치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97편은 무엇을 노래합니까?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한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백성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은 모든 이스라엘은 물론이요 나아가 만백성이 기뻐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물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왕이요 곧 우리의 왕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성탄의 사건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의 이유가 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나아가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성도들은 더 이상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나의 마음에 모시며 주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선포했던 것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그 영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에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으로부터 은혜 위에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날 매우 크게 기뻐하고 또 기뻐하십시오. 지금 나의 삶에 성탄이 선사하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유익이 보이지 않더라도,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이날, Merry Christmas, 성탄의 기쁨과 성탄의 즐거움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기쁨의 성탄절을 맞이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Merry Christmas, 성탄의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거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도 성령으로 임재하셔서 우리를 친히 다스려 주옵소서. 주님의 다스리심을 기뻐하였던 시인의 마음처럼, 예수님의 탄생을 지켜보며 기쁨으로 경배하였던 동방의 박사들과 베들레헴의 목자들처럼,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성탄의 기쁨과 즐거움을 가득 채워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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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