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2022. 12. 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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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y Cartier-Bresson)이 있습니다. 그는 사진을 단수한 기술이 아니라 예술의 경지로 이끌었다고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그의 예술 세계를 규정하는 개념은 ‘결정적 순간’입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사진집이 1952년에 출간되었는데, 그 책의 제목이 바로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정적 순간>에 수록된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진은 <생 라자르 역 뒤에서, 파리 1932>라는 작품입니다. 이 사진을 잠시 보시겠습니까? 기차역 뒤에 물웅덩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남성이 그 웅덩이를 뛰어넘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물 위에 뛰어오른 남성의 모습이 그 아래의 물에 반사되어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 매우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지요. 그리고 이 사진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대목은 물 위에 뛰어오른 남성의 발과 그 아래 물에 비췬 그림자의 발이 이제 막 부딪치려는 찰나! 바로 그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여 역동성과 함께 안정성을 한 장면에 담은 데 있습니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 출간된 이후,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자신도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수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결정적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비밀이나 노하우가 무엇인지 계속 질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과정은 수수께끼와 같아서 자신도 잘 모른다고 말입니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포착한 결정적 순간은 잘 짜인 각본에 맞춘 기획의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찾아온 운명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에는 17세기 프랑스의 성직자였던 장 프랑수아 폴 드 곤디(Jean François Paul de Gondi)의 다음 문장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결정적 순간이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There is nothing in this world that does not have a decisive moment) 

비록 평범해 보이는 사람과 사물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인생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결정적 순간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나타나시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 주셨던 결정적 순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향년 175세를 살았습니다. 오늘과 같이 의료기술이 크게 발달한 시대에도 175세이면 매우 장수한 것이지요.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았던 아브라함이지만, 그의 삶을 변화시켰던 한 순간, 곧 그의 삶을 완벽하게 변화시켰던 결정적 순간이 있었습니다. 언제입니까? 그의 나이 75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2b-3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고, 하나님께서 친히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십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지요. 바로 이것이 결정적 순간입니다. 만일 우리가 아브라함을 만나 이렇게 질문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브라함 당신은 75세 되는 그때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을 받는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였는데, 우리 성도들도 신앙의 결정적 순간을 체험할 수 있는 비결이나 노하우가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이러한 질문에 프랑스의 사진작가 카르티에 브레송과 동일한 대답을 할 것 같습니다. 나의 삶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결정적 순간은 내가 계획한 것도 아니고 예상한 것도 아니고 마치 수수께끼처럼 알 수도 없고 예상하지도 못할 때 자신에게 찾아왔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신앙에 찾아오는 결정적 순간입니다. 

성경, 특별히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결정적 순간은 아브라함과 같은 한 개인에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민족 단위로 결정적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민족 단위로 결정적 순간이 찾아온 대표적인 예를 찾아본다면, 단연코 출애굽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으로 살아가던 세월은 자그마치 430년이었습니다. 430년이면, 나의 할아버지도 애굽에서 종으로 살고 나의 아버지도 애굽에서 종으로 살고 이제 나도 애굽에서 종으로 살아가는 세월이지요. 430년이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내가 애굽에서 종으로 살뿐만 아니라 나의 아들도 애굽에서 종으로 살고 나의 손자도 애굽에서 종으로 살아가는 그 정도로 긴 세월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43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도 변함없이 세대가 세대를 이어 애굽의 종으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연 그 약속에 대한 소망이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소망도 없고 희망도 없고, 그 무엇보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아무런 전망이나 기대도 없던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결정적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의 사건이지요. 그리하여 출애굽 사건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언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프랑스의 사진작가 카르티에 브레송이 결정적 사건과 대해 이야기한 내용과 동일합니다. 출애굽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스라엘 자손은 출애굽이라는 결정적 순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결정적 순간이 찾아오니, 실마리를 조금도 찾을 수 없었던 수수께끼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풀리듯 이스라엘 백성은 전혀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에 있어 결정적 순간은 우리가 계획하고 우리가 노력하고 우리가 열심히 준비한다고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면 바로 그때 나의 삶에 그리고 우리가 함께 예배하는 신앙 공동체에 결정적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 사실을 믿기에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결정적 순간을 지금도 기다립니다. 카리티에 브레송이 인용했던 문장, 곧 17세기의 프랑스 성직자였던 장 프랑수아 곤디의 문장 그대로, “결정적 순간이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기다리라

본문 시편 80편에는 출애굽 사건에 대한 회상이 많이 드러나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찾아온 결정적 순간을 찾아본다면, 우리는 가장 먼저 출애굽의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본문 시편 80편은 출애굽이라는 결정적 사건을 회상하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1절) 

여기에 하나님을 묘사하는 두 가지 표현이 등장하네요. 그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입니다. 지금 시인은 목자와 양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종살이하던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셨던 출애굽의 사건을 회상합니다. 그러면 1절의 뒷부분에 등장하는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는 어떠한 의미일까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생활할 때 그들의 한 중앙에는 성막이 있었습니다. 성막의 가장 중심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모셨습니다. 그리고 법궤는 두 개의 그룹, 곧 천사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었거든요. 그러므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묘사입니다.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이 본문 2절에도 등장합니다.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2절) 

여기에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지파의 이름이 등장하지요.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자리를 잡은 열두 지파의 정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진을 시작하면 열두 지파가 앞뒤로 하나의 긴 행렬을 만들어서 진행했습니다. 그러면 이때는 법궤가 어디에 위치했을까요? 앞에서 행진하는 여섯 개의 지파와 뒤에서 따라가는 여섯 개의 지파 그 사이에 법궤가 위치하였지요. 그리고 그 법궤를 중심으로 바로 뒤따라오는 지파가 오늘 본문 2절에 등장하는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러니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라는 본문의 표현은 출애굽 이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셨던 장면을 회상하는 기도입니다. 

이처럼 시편 80편은 1절부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빛나는 결정적 순간인 출애굽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결정적 순간은 나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마치 모든 사진사들이 포착하고 싶어서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그 순간에 셔터를 누를 수 있기를 고대하고 고대하는 바로 그 순간처럼 말이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잊을 수 없는 결정적 순간인 출애굽의 사건을 회상하면서 드리는 기도는 감사와 찬양의 기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셔서 나의 삶을 변화시켜주신 결정적 순간을 회상하며 기도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되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출애굽의 사건을 회상하는 시편 80편은 감사와 찬송의 시가 아니라 간구와 탄식의 시입니다. 오늘 짧은 시간에 다 살펴볼 수는 없지만, 시편 80편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받아 모든 국민이 제국의 각 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한 사건이 본문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편 80편은 나라가 멸망한 절망의 상태에서 출애굽이라는 과거의 결정적 순간을 회상하며 탄식하고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노래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결정적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결정적 순간을 한번 경험했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찾아오시는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며 또다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이제 다시)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이제 다시) 빛을 비추소서 (1절)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이제 다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이제 다시)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2절) 


준비하고 기다리라

프랑스의 사진작가 카르티에 브레송이 <결정적 순간>이라는 사진집을 출판한 후, 수많은 사진가들이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결정적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비법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때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방법은 마치 수수께끼 같아서 자신도 그 비법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그의 말년에 진행한 어느 인터뷰에서 카리티에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결정적 순간은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렇게 덧붙였다고 합니다. “만약 사진을 잘못 찍었다면 그림을 그릴 때 지우개로 스케치를 쓱쓱 지우고 다시 그리듯 사진을 다시 찍으면 됩니다. 준비하고 기다리다 보면, 결정적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약성경이 묘사하는 최고의 결정적 순간을 꼽으라면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출애굽의 사건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신구약 성경이 증거하는 최고의 결정적 순간을 꼽으라면 우리는 주저 없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림절을 보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우리에게 찾아온 최고의 결정적 순간, 곧 예수님의 성탄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찬양을 올려드리지요. 그런데 여러분, 대림절의 또 다른 의미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다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미 나의 삶에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이미 나의 삶에 친히 다가오시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으니, 대림절을 보내는 우리는 다시 주님을 기다립니다. 어제는 결정적 순간을 놓쳐버린 사진작가가 오늘 또다시 찾아올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처럼. 오늘 스케치를 잘못 그린 화가가 새롭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결정적 순간은 준비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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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