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2022. 12. 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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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로서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하다 보면, 성도님들께 함께 기도하고 싶은 기도 제목을 질문하곤 합니다. 대부분은 가족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한 기도의 제목을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어느 집사님의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정의와 평화가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제가 재차 질문하였더니, 그분은 진심으로 우리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하셨습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 교회 성도들은 언제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구한말 시작된 한국의 기독교는 일제의 탄압 아래에서 나라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민족의 해방 이후 남과 북으로 분단된 현실 속에서 한국 교회 성도들은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위하여 쉼 없이 기도하였습니다.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이 민주화와 산업화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한국의 많은 성도들은 우리나라와 민족이 더욱 풍성한 삶을 살도록 기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흘러넘치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도 쉬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주기도문의 한 대목이지요.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옵소서


제왕시

본문 시편 72편은 대표적인 제왕시입니다. 제왕시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을 높이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시편을 말합니다. 우리는 시편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내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안에 인간 왕을 높이고 인간 왕을 위해 기도하는 시도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72편이 그 대표적인 제왕시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1절) 

여기에 “왕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요. 그래서 학자들은 시편 72편이 왕이 새롭게 등극하였을 때 불렀던 노래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72편에는 구체적인 사람의 이름이 두 개 등장합니다. 시편 72편의 표제어가 “솔로몬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마지막 20절은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고 말씀하지요. 그래서 다윗과 솔로몬의 이름을 감안하면 다윗의 뒤를 이어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을 때, 다윗이 솔로몬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노래가 시편 72편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제왕시와 관련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시편에는 오늘 본문과 같이 이스라엘의 왕을 높이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제왕시가 여럿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제왕시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절대 권력을 소유한 왕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추구하지요. 이러한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라의 왕을 높이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늘 본문 시편 72편과 관련하여 한 가지 사실을 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72편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문장, 특별히 대부분의 동사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 첫 번째는 간구와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문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두 가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간구와 기도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간구와 기도입니다. 본문 11절부터 보십시오.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11절) 

본문 11절은 간구와 기도로 해석할 수도 있고 동시에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간구와 기도로 이해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우리 왕 앞에 모든 왕들이 부복하게 하시고 모든 민족이 다 그분을 섬기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됩니다. 많은 학자들이 추론한 것처럼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할 때 다윗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이 이 시편을 노래했다면, 그들의 노래는 솔로몬을 위한 중보기도였을 것입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라는 기도였겠지요. 하나님께서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약속의 땅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스라엘이 차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이기도 했습니다. 시편 72편을 ‘중보기도’라는 생각 하면서 본문을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게 해 주시고]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게 해 주시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게 해 주시고]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소서] (12-13절)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이스라엘 백성은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의 땅을 모두 차지하게 해 달라는 기도 했겠지요.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통해 힘이 없다고, 가난하다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을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왕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중보기도로 이해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이 땅의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고대 사회와 같이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을 침략하고 지배하기를 위해 기도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이 땅의 정치인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공의와 정의를 행하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해 주십시오] 

이 땅에 더 이상 어처구니없는 사고와 사건으로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이 당에 더 이상 삶이 고달파 스스로 생명을 끊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본문 14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들의 피가 그의 눈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게 하소서]

비록 이 땅에 억울한 희생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의 피가 헛되지 않게 하옵소서. 
그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더욱 정의롭게 공의롭게 하옵소서. 

우리 성도들은 시편 72편을 따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예언

유대인들이 시편 72편을 처음 노래하였을 때, 그들의 노래는 주로 중보기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는 장면에서 많은 백성들이 솔로몬을 위해 기도하고 솔로몬이 공의와 정의로 이스라엘을 통치하기를 기도하였겠지요. 물론,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 가운데 응답해 주셔서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말년은 어땠습니까? 그는 우상 숭배에 빠졌고 공의와 정의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않았지요. 솔로몬의 과오는 이스라엘을 북 왕국과 남 왕국으로 분열시키고 말았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솔로몬의 뒤를 이어 남 유대의 많은 왕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때마다 유대인들은 시편 72편을 노래하며 하나님께 기도했겠지요. 주님의 공의로운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그 왕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는 정반대로 흘러갔습니다.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남 유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쇠약해져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하는 처지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본문 시편 72편을 노래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유대인들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요? 물론, 시편 72편을 간구와 기도로만 이해한다면 그들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노래했던 시편 72편을 간구와 기도 외에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자, 예언이라는 관점에서 본문 11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실제로 한글 성경의 번역은 중보기도가 아니라 예언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기로다 (11절)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한 왕을 세워주십니다(요 19:19). 그리고 그의 앞에는 모든 왕들이 부복하고 모든 민족이 그 왕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왕은 한 나라의 왕이나 한 민족의 왕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왕 중의 왕, 곧 만왕의 왕이 되시지요. 본문은 그러한 왕을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리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 예언의 말씀은 인류 역사에서 성취되었습니까? 성취되지 않았습니까? 신약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성취될 것입니다. 본문 11절부터 다시 보십시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예수 그리스도는]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는] 궁핍한 자의 생명을 (그다음을 주목하십시오) 구원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다시 한번 등장하네요)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12-14절) 

대림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성육신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기다리는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의 왕과 통치자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온전히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불의와 거짓이 가득하지요. 새로운 정치인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들에게 기대를 걸어보지만, 그 어느 인간 통치자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셨고,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모두에게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탄을 기억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대림절을 보내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15절) 


대림절 찬양

시편 72편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하고 있지요. 그래서 교회사를 보면 성도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기억하며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에 시편 72편을 자주 노래하곤 했습니다. 그러한 전통 가운데 하나는 17세기의 위대한 신학자이며 작곡가였던 아이작 와츠가 시편 72편을 기초로 작고한 찬양입니다. 그 찬양의 제목은 “Jesus shall reign”으로, 찬송가 138장 <햇빛을 받는 곳마다 주 예수 다스리시고>입니다. 이 찬양은 시편 72편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노래하지요. 그래서 햇빛을 받는 모든 곳이 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리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찬양의 가사를 살펴보면, 아이작 와츠는 시편 72편을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만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시편을 기도와 간구로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찬양의 2절 가사입니다. “주님을 찬양하면서 간절히 기도드리니 그 기도 향기 되어서 주 앞에 상달하도다” 아니,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시편 72편의 예언이 성취되었는데 왜 또다시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성탄으로 말미암아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지요.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그 완성의 모습도 그려주는데, 본문 16절과 17절입니다. 

산 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16-17절)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고 2000년 전에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고,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거하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도 시편 72편을 노래하면서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 땅에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거짓과 불의가 가득합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기보다 자신의 유익만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성도들에게 참된 소망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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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시편 72편 11-17절 “만왕의 왕” 목회자로서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하다 보면, 성도님들께 함께 기도하고 싶은 기도 제목을 질문하곤 합니다. 대부분은 가족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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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