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2023. 8. 2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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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왜 그토록 교회를 사랑하며 이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다양한 답변이 가능하지만, 오늘 저는 이렇게 대답해보려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혜, 곧 하나님의 은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입니다. 이 두 가지를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일반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분이셔서 신자든 불신자든 모든 인간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기와 물과 햇빛을 주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불신자에게도 은혜를 베푸셔서 큰 재물을 얻게 하시고, 세상적인 명성을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일반 은총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구별 없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반면, 특별 은총은 하나님께서 신자에게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영혼의 구원이겠지요. 또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 등은 모두 신자에게만 베푸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가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 곧 특별 은총은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광대하시기에 교회라는 범위를 넘어 온 세상을 통치하시지요. 하나님은 교회의 영역을 뛰어넘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회와 상관없이 우리 민족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실 수도 있고 어느 개인에게 건강과 풍요를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 은총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진정으로 베풀기 원하시는 특별한 은총 - 곧 영혼의 구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의 기쁨,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풍성한 행복 – 은 지금도 우리가 사랑하며 소중하게 여기는 이 교회를 통해 베푸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이 교회를 사랑하고 이 교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에베소서는 성경전체에서 유일하게 교회에 대한 정의가 등장하는 성경입니다. 에베소서 1장의 마지막 절이 교회에 대한 성경의 정의입니다(엡 1:23). 그런데 여러분, 사도 바울은 교회가 어떠한 곳인지 정의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만 베푸시는 특별한 은총을 찬양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3절)

여기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은 성도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하늘의 축복을 우리에게 베푸시는 통로가 바로 교회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는 이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늘의 축복 One. “하나님의 선택” (4-6절)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금도 교회를 통해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늘의 축복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늘의 축복,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4절) 

본문 4절 말씀에서 ‘선택’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네요.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는 말씀이지요. 표현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동일한 내용이 본문 5절에도 반복됩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5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이지요. 영국 복음주의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존 스토트는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이 사실을 매우 강경한 어조로 선언합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이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의지나 우리의 결단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택이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인생을 믿음과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여 성도가 되었다면,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의지나 결단에 좌우된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믿음의 길에서 탈선하여 하늘의 신령한 축복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의지와 나의 결단은 너무도 쉽게 변하기 때문이지요. 과연 우리 가운데 누가 나는 의지력이 강하고 한번 결심하면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기에 믿음의 시련과 유혹이 찾아와도 변함없이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만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참모습을 숨기는 위선자이거나 자신의 참모습을 전혀 알지 못하여 그 마음이 교만해진 사람일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여과 없이 폭로합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마지막까지 신앙의 길을 완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복음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우리는 무수히 하나님의 손을 놓쳐버린다 해도, 세상의 유혹에 우리의 마음이 요동치고 우리의 믿음이 수없이 흔들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하나님께서 친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의 손을 붙잡고 계시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부터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하늘의 축복 Two. “예수님의 속량” (7-12절)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우리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늘의 축복, 그 첫번째는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이것은 주로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이지요.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우리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늘의 축복, 그 두 번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로 성자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예수님의 속량’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7절) 

창세 전, 곧 세상을 창조하시기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는 첫 번째 하늘의 축복이었지요. 이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예수님은 하늘보좌에서 내려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시며 우리에게 속량, 곧 죄 용서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범죄한 것은 누구입니까? 우리 인간들이지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공의와 정의를 저버렸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사랑과 의로운 삶을 우리가 살아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운명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사실이 하나 더 있었으니, 죄인인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바꾸어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심판의 자리에서 축복의 자리로 옮겨가고 싶어도 우리 인간에게는 그러한 의지도, 그러한 능력도, 그러한 가능성도 전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선언 그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롬 3:23). 

바로 이때,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속량, 곧 죄 용서의 은혜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53장은 인간의 모든 죄를 속량하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4) 

사람들은 메시아의 고난을 지켜보면서도 그것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속량의 사건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여겼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오해일 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은 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속량하기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5-6) 

예수님께서 창에 찔리심으로 우리의 잘못이 용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상하심으로 우리의 죄악이 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징계를 받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당하셨기에, 
우리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온전한 치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은 속량 곧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하늘의 축복 Three. “성령님의 보증” (13-14절)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우리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속량, 곧 죄 용서의 위대한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수님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며 오늘도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 우리의 마음은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아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여전히 유혹도 많고 고통과 슬픔도 넘쳐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세 번째 하늘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성령님의 보증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13-14a절) 

본문 13절은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인’은 도장을 말하지요. 중요한 문서나 계약서에 그 내용을 보증한다는 의미로 도장을 찍는 것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에도 도장을 찍어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도장입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예정하여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도장,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모든 죄가 용서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도장입니다. 본문 14절은 이것이 그 무엇으로도 의심할 수 없는 성령 하나님의 확실한 보증이 된다고 말씀하시네요. 

여러분, 우리의 겉모습은 예수님을 믿기 이전이나 예수님을 믿은 이후나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지금 당장 큰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며 살아간다고 세상적인 명예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무서운 질병이 찾아올 수 있고 때로는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며 이 세상의 온갖 슬픔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늘의 축복이 무엇일까요? 성령님의 인치심, 곧 성령 하나님의 보증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현실은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차이가 없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는 성령님께서 너는 천국의 시민이라고, 너는 하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분명히 보장해 주시는 성령의 도장이 있잖아요. 지금도 우리 마음에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며 우리가 하늘의 축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장해 주시니, 우리는 어떠한 현실을 마주치든 바로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늘의 축복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지요. “찬송하리로다”(3절) 바울은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설명한 뒤에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본문 6절 말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에게 죄 용서의 은혜를 허락하신 예수님의 속량을 선포한 뒤에도 바울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했습니다. 본문의 12절,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지막으로, 성령님의 보증을 말씀한 뒤에도 사도 바울의 입술에는 찬양이 터져나옵니다. 본문의 마지막 14절이지요.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는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아니 이 세상은 알 수도 없는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총을 오직 교회를 통해 베푸시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경험한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함께 즐거워하는 장소 역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힘겹고 고단할수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뜨겁게 사랑하는 이 교회, 우리가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바로 이 교회에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보증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날마다 누리십시오.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며, 우리의 근심을 바꾸어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찬송가 438장 1절) 

바로 이 교회에서 하늘의 축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성도들과 함께 찬양하며 날마다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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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