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2024. 3. 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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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부의 거대한 구축함이 항해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약 3킬로미터 전방에 불빛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불빛은 이 거대한 구축함의 항로 위에 정확히 놓여 있었지요. 구축함은 그 불빛을 향해 급히 신호를 보냈습니다. “너희가 우리 항로 위에 놓여 있으니 우로 20도 방향을 바꾸어 항해하라.” 그러자 그 불빛 쪽에서 곧바로 회신이 왔습니다. “우리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으니, 너희가 좌로 20도 방향을 바꾸라.” 이에 구축함은 다시 신호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미 국방부의 명령을 받아 항해 중이다. 그리고 여기의 함장은 미해군 중장이다. 그러니 빨리 방향을 바꾸어 항해하라.” 그러자 불빛 쪽에서 회신이 왔습니다. “저는 미 해군의 일등병입니다. 그러나 방향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저는 등대지기입니다.”여러분, 결국 누가 방향을 바꿔야 합니까? 등대입니까? 아니면 거대한 구축함입니까?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는지 저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지요. 성도 여러분, 성경의 가르침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다르면, 그리하여 성경의 말씀과 나의 가치관이 서로 상충하면 누가 입장을 바꾸어야 합니까? 당연히 우리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기에, 성경의 가르침이 나의 생각과 다르면 당연히 나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그런데 등대지기에게 방향을 바꾸고 위치를 바꾸라고 명령하는 해군 중장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거나 교정하기를 매우 싫어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리고 오른 본문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됩니다. 


청지기의 직분


자,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청지기의 비유입니다. 청지기라는 용어는 주로 교회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이지요. 여러분, 청지기가 무엇입니까? 청지기란 주인을 대신해서 주인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재산의 소유권은 어디까지나 주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관리하는 권한은 청지기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니 청지기라는 지위와 그 권한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비롯하여 신약성경은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것의 소유권은 당연히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쓸 것을 주십니다. 이때 우리는 오해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청지기에게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또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다 주었지만 여전히 그 모든 소유권은 주인에게 남아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 ∙ 건강 ∙ 재물 ∙ 능력 ∙ 지위 이 모든 것은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하고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지 나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나에게 많은 것이 주어져 있지만, 나는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강조하는 청지기 의식입니다. 그런 점에서 청지기 의식의 반대말은 주인 의식입니다. 

흔히 어느 단체나 조직에서 회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을 대부분은 칭찬받고 박수 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조금 다릅니다. 교회는 회원들이 주인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촌교회를 개척한 이동원 목사님께서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우려할 만한 모든 일들은 
청지기 의식에서 떠나 
자신이 주인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됐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단 한 번도 우리가 교회에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우리를 청지기라고 말합니다. 청지기에게는 사용권이 있지만 소유권은 없습니다. 주인이 허락한 시간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해야 합니다. 주인이 정한 시간이 지나면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다른 사람에 넘겨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청지기 정신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나의 것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진 재물, 나의 것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 교회, 우리의 것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저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으로 아름답게 보전하여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청지기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지혜로운 청지기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청지기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자가 자신의 재산을 관리할 청지기를 고용했습니다. 그에게 주인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는 의미이지요. 그런데 그가 능력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그는 주인의 재산을 늘려주지 못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주인이 청지기를 불러 해고를 통지합니다. 해고를 통지받은 청지기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의 고민을 들어보십시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3절) 

깊은 고민에 빠졌던 청지기가 마침내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냅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청지기의 자리에 있을 때 주인에게 빚을 진 사람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기름 100말을 빚진 사람은 50말로 고쳐주고, 밀 100석을 빚진 사람은 80석으로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주인의 행동이 본문 8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 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8절) 

주인이 청지기에게 어떻게 하였습니까? 칭찬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지요? 그가 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성경을 읽는 이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본문이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성경의 난해구절로 구분합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이 비유가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매우 단순합니다. 그것은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이 주인의 입장에 있다면 청지기를 칭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 보세요. 우리가 그 주인의 입장이라면 청지기를 칭찬하지 않지만, 예수님은 주인의 입장에서 이 청지기를 칭찬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의 말씀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이해하기 힘들면 이해하기 힘들수록 여러분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 사이에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면 정확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여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우십니까? 신앙생활의 횟수는 늘어났지만 여전히 여러분의 생각은 예수님의 생각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주인이 그 청지기를 칭찬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주인의 입장에서 청지기를 칭찬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데 지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이지요. 주인이 청지기를 고용한 이유도 자신의 재산을 늘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청지기로 고용하니 주인의 재산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해고를 통보했더니 빚을 탕감해 주면서 주인의 재산이 더 줄어들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에 손해만 입혔으니 어떻게 칭찬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그 청지기를 칭찬하셨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주인의 재산이 늘어났느냐 줄어들었느냐에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당연하지요. 예수님의 비유에서 주인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잖아요. 우리 인간이 좀 손해를 보게 한들 하나님의 그 풍성하신 소유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의 강조점은 주인의 재산이 줄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의 강조점은 청지기가 해고 통지를 받았고, 청지기로서의 지위를 모두 잃어버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청지기는 주인이 아닙니다. 청지기로 있을 때는 주인의 모든 재산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청지기의 직분만 빼앗으면, 이 사람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남지 않지요. 이것이 청지기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재물이 많든 적든, 우리는 내 손에 있는 재물이 많으냐 적으냐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많든 적든 언젠가 내 손에 있던 모든 재물이 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그때가 온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때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 내 손에 있는 모든 재물이 사라지는 그때를 위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9절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 9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永住)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9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네, 바로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마음껏 사용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 권한을 가지고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하는 사람이지요. 그러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청지기로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재물을 주인의 뜻에 가장 합당하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재물의 바른 용도는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의 바른 용도는 내일에 더 큰 부를 이루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의 바른 용도는 지금 나의 기쁨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데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재물의 바른 용도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 주기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것, 여리고로 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에게 내가 이웃이 되어 주기 위해 기름과 포도주를 허비하고 여관비를 지불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택해야 하는 바른 재물의 사용법입니다. 그렇게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永住)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9절)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나는 성경말씀 중에 이해되는 내용이 나를 더 괴롭힌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때는 마음이 편안했는데,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나니 마음이 괴로워지는 분들이 계신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세상은 재물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비록 세상은 재물을 내일의 더 큰 부를 쌓기 위해 사용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궁핍한 사람들 ∙ 환란을 당한 사람들 ∙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친구와 이웃이 되어 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을 실천할 때 “영주할 처소”, 곧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가정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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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