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2017. 5. 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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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다보면, 때로는 원치 않게 잠시 멈추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이지만 그 과정에는 피할 수 없는 잠시 멈춤의 과정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Scene One #1. 성전 재건에서의 잠시 멈춤

 

유대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고레스가 조서를 내려 유대 백성은 자유롭게 자신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는 명령을 내립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싸인으로 알고 이미 정착하고 있었던 바벨론 땅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물론, 바벨론에서 그들은 포로의 신분이요 이방인의 자리였지만 나름대로 당대 최고의 문화를 누렸던 바벨론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정착을 하며 살아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다시 한 번 구원의 역사를 펼치시리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꿈과 비전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의 터전을 박차고 일어나 약속의 땅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사명을 향한 위대한 발걸음이었습니다.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은 결코 쉽고 안전한 걸음이 아니었습니다. 70년 전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의 모든 성읍과 성전과 성벽이 초토화된 이후, 그 누구도 예루살렘의 재건을 위해 나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예루살렘은 문자 그대로 폐허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하나님의 꿈과 비전, 곧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펼쳐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내어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일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을 건축하려고 준비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꼭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준비를 시작하자 그것을 방해하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방해 공작은 참으로 치밀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도착한 유대인들은 독립된 국가가 이룬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는 형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성전 건축을 방해하려는 이들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하지요. 페르시아의 황제 아하수에로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잘못된 정보를 전합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예배를 드리는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성벽을 건축하려고 준비한다는 거짓 조서를 보내는 것이지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하수에로 황제는 그들의 편지를 사실로 믿어버립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유대인들의 모든 건축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시작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방해가 없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꿈과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에게는 원치 않게 잠시 멈추는 사건, 잠시 멈춤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Scene One. #2. 다시 시작되는 성전 재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크게 낙심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 다시 한번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사명을 상기시켜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학개 선지자, 스가랴 선지자가 그들입니다.

 

학개와 스그랴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예루살렘에 올 때 가슴에 품었던 사명을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그리고 성전 건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성전 건축을 방해하던 사람들이 베르시아의 황제에게 거짓을 전하는 편지를 보냈잖아요? 이번에는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의 황제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자신들이 건축하려는 것은 군사적 목적을 가진 성벽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하는 성전이며, 이것은 이미 오래전 고레스 황제로부터 허락을 받은 것이었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초조한 마음으로 황제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이죠. 드디어 답변이 도착했어요. 황제가 모든 일을 자세히 살펴보니 성전 건축을 반대하는 자들의 주장이 거짓이고, 유대인들의 설명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성전 건축은 페르시아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고, 곧 예루살렘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다가 잠시 멈추어야 할 상황, 잠시 방해를 받는 상황, 억울하게 누명을 써야 하는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명령하신 일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앞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Scene Two #1. 바울에게 닥친 잠시 멈춤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의 마지막 사명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가 당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야심 찬 계획이었지요. 바울은 이와 같은 사명을 가슴에 품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바울 역시 예루살렘에서 큰 환란과 고난을 받을 것은 예상하였고, 각오도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저 고난을 당하고 매를 맞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마지막 사명을 위한 발걸음이 가로막혀서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로마까지 가야 하는 바울의 발목을 붙잡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지요.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세력을 규합해서 바울을 해치려고, 바울을 죽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한 편에서는 바울에게 달려들어 죽이려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바울을 보호하려고 하고. 예루살렘에 일대 소란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당시에도 예루살렘의 통치권이 유대인들에게 있지 않았지요. 그곳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었던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예루살렘의 소동에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이 개입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잖아요. 그러므로 로마 시민이 공정한 재판도 없이 유대인 무리에 의해 피살당하도록 놓아 둘 수가 없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었던 로마 군대의 천부장이 재판을 합니다. 그는 바울을 한 편에 세우고 다른 한 편에 바울을 고발하는 유대인들을 세웁니다. 그리고 재판을 위해 양쪽의 의견을 듣지요. 그 결과 유대인들은 대단히 소리를 높여서 바울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리 그들의 논리를 들어봐도 바울을 죽일 만한 구체적인 범죄 사실이 없는 거에요. 그저 시기하는 마음으로 바울을 고발하지만, 증거도 없고 범죄 사실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을 그대로 석방하고 풀어줄 수도 없습니다. 만일 바울을 풀어준다면,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이 그 결정에 불복하고 로마 제국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죠. 로마 군대의 천부장 입장에서는 유대인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입장에서 바울의 손을 들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로마 시민인 바울을 증거나 명확한 죄도 없이 처형할 수도 없으니 유대인들의 손을 들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결국 로마 군대의 천부장은 바울에 대한 어떠한 판결도 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상관, 곧 당시 유대 지역 전체를 통치하고 있었던 벨릭스 총독에게 이 사건을 넘깁니다. 당시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들은 가이사랴라는 도시에 거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천부장은 군대의 호위 속에서 바울을 가이사랴로 보냅니다. 물론, 바울을 죽이려고 그를 고소하고 고발했던 유대인들도 함께 가이사랴로 올가 갔지요. 그런데 유대 총독 벨릭스 역시 무엇이라고 딱히 판결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천부장이 처해있던 상황과 동일하지요. 유대인의 손을 들어주자니 로마 시민인 바울을 죄도 없이 처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바울의 손을 들어주자니 유대인들이 로마 제국을 향해 불만이 고조되면서 자신의 유대 지역 통치가 어려워 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벨릭스 총독 역시 이 재판의 판결을 차일피일 미룹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는 것이지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성경은 그 기간이 2년 이었다고 기록합니다. 2년 동안 바울은 재판을 받는 죄인의 신분, 그러나 유죄도 무죄도 판결을 받지 못한 어정쩡한 신분으로 그저 가이사랴에게 재판의 결과만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2년의 공백이 흐른 뒤 유대 총독이 벨릭스에서 베스도로 바뀝니다. 이제 새롭게 유대 땅을 다스리게 된 총독 베스도가 드디어 바울을 다시 한번 신문하고 재판을 하는 장면을 오늘 본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있는 25장과 바로 앞의 24장 사이에는 2년 이라는 시간적 공백이 존재하고 있어요. , 바울의 마지막 사명을 위한 로마로 가는 길에 원치 않게 멈출 수 밖에 없었던 잠시 멈춤의 시간이었습니다.

 

2년 동안 사도, 바울의 전도하고 선교하는 발걸음이 멈추었습니다. 멈출 수 밖에 없었어요.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습니까? 사도 바울은 1, 2, 3차 전도여행으로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조금 더 넓게 사도행전의 역사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곧 성령께서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신다는 그 말씀을 따라 복음의 역사가 쉼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장면에서는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유대인들의 말도 되지 않는 억지 주장으로 복음 전도의 길이 멈추어 버렸어요. ‘잠시 멈춤이지요.

 

 

Scene Two #2. 로마를 향한 발걸음

 

드디어 2년의 공백이 끝나 갈 때 쯤, 벨릭스의 뒤를 이어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을 받은 베스도 총독이 사도 바울에 대한 재판을 다시 열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묘사하는 장면이지요.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6)

 

재판은 재개하였지만 2년 전의 모습이 여전히 동일하게 전개됩니다. 먼저 바울을 고발하는 유대인들이 이야기를 꺼내지요.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7)

 

그들의 주장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또 한가지 그들의 주장에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것 역시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 바울 역시 계속해서 자신을 변호합니다.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8)

 

어쩌면 2년 전 벨릭스 총독 앞에서 치러지던 재판과 지금 베스도 총독이 주최하는 재판이 이와 같이 똑같은지 모르겠어요. 원고측인 유대인들의 주장과 자세도, 피고측인 바울의 주장과 자세도 모두가 2년 전과 동일합니다.

 

이제 베스도 총독이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2년 전과 동일하게 쉽게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 줄 수가 없어요. 더욱이 베스도는 이제 막 총독으로 부임을 했기에 유대인들의 입장을 더욱 무시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을 처벌하려니 증거도 없이 로마 시민을 사형시킬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베스도는 제 3의 길을 선택합니다.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9)

 

베스도 총독은 지금 바울이 유죄 혹은 무죄라고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재판의 장소를 지금 이곳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재판을 하자는 것은 바울을 고발하는 유대인들의 제안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에 분명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바울은 죽여야 되겠어요. 그래서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 남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로마 군대의 호위가 허술한 틈을 타서 무력으로 바울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거든요. 베스도 총독은 그와 같은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통치 기반이 되어줄 유대인의 청을 들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사도 바울이 지난 2년 동안 자신의 마음에 있었던 중대한 결심 하나를 이야기합니다.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 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0-11)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가이사 곧 로마의 황제 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로마 시민에게는 지역의 재판이 불공정하다고 생각될 때 황제가 있는 로마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난 2년 동안 로마를 향한 자신의 발걸음이 묶여 있을 때 마음에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비록 죄인의 신분이고, 비록 피고인의 신분이라도 황제에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이용하여 로마로 가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그 다음에 바울은 유대인들의 음모를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심판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주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합니다.

 

내가 가이사께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노라

 

지난 2년 동안 바울의 마음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있었습니다. 로마에도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지금 진행되는 재판이 하루 빨리 해결되기를 원했겠지요. 억울한 재판이니, 상대방의 공격이나 주장이 거짓이니, 유대인들이 자신을 모함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으니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여 이 재판을 빨리 끝내고 자유의 몸이 되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대로 안돼요. 자신을 재판하던 천부장은 재판을 미루고 미루다 유대 총독에게 미루어버렸어요. 당시 유대 총독으로 있던 벨릭스는 재판의 마지막 판결을 또다시 미루고 미루면서 자신이 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부임할 때까지도 2년 동안 판결을 안내려요. 그 모든 과정에서 바울은 결심을 했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이 재판을 통해 풀리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죠. 자신의 죄인의 신분, 피고인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여전히 억울하게 고소를 당하고 여전히 피고인, 죄인의 신분으로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장에 품고 로마로 갈 수만 있다면 자신은 그 길을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반드시 원치 않는 잠시 멈춤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많은 경우는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였던 유대인들과 같이 용기를 내어 다시금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바울의 경우와 같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여러분, 이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내 앞에 놓인 과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명이 더욱 중요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 일을 뒤로 미룹니다. 바울은 자신을 무고하게 고발하는 유대인들의 공격을 그저 참아냅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는 자신의 억울함을 재판을 통해 풀어내는 일보다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명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드디어 잠시 멈춤의 상황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12)

 

지난 2년 동안 아무런 판결도 없었던 재판이 드디어 한 가지 판결을 내립니다. 재판의 장소를 로마로 옮겨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는다는 결정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분명한 사명과 꿈과 비전이 있는데, 원치 않는 일로 억울한 일로 계속해서 나의 발목이 붙잡혀 있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억울함을 푸는 일도 중요하지요. 내 앞에 놓인 과제를 하루 빨리 해결하면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매진할 수 있을 것 같지요. 그러나 하루 이틀 사이에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렇다고 지금까지 우리가 달려왔던 전도의 일, 교회를 섬기는 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일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속상하지만, 억울하지만, 지금 당장 내 앞에 놓여 있는 과제를 잠시 뒤로 미루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위한 선택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로마로 가는 길, 곧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사명을 성취하는 그 길로 여러분을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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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