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2020. 3. 28. 07:20
반응형

언젠가 세례 교육을 받는 한 성도님에게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어떠한 마음으로 세례를 받으려고 결정하셨습니까? 그 성도님의 대답이 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그분이 걸어온 삶의 여정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짧은 대답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삶과 단절하고 세례를 받아 새로운 삶으로,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출발하고자 하는 그 성도님의 마음이 저에게도 분명하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조금 전 소개해드린 성도님은 참 좋은 선택을 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형식적으로 의례적인 세례가 아니라 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세례를 받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그분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실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넉넉히 선사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경험하기 이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날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 아무 일도 하지 않기에, 예수님을 그리워하였던 여인들은 답답한 마음에 안식일을 보내고, 안식 후 첫날 - 곧 주일 - 새벽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장례 문화는 오늘날 우리의 장례문화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는 시신을 화장하거나 매장을 하지요.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시신을 동굴 안에 모셨고, 시산을 안치한 후 사흘 안에 다시 방문하여 향유를 바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당시 유대인의 방식대로 예수님의 시신을 다시 한번 찾은 것이지요. 

예수님에 대한 여인들의 마음은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던 여인들의 모습을 몇 가지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먼저는 헛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이 여인들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향품을 사다 두었어요. 여러분, 이들의 행동이 필요했나요? 필요하지 않았나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덤을 찾아갔지만 예수님의 시신을 찾지 못했어요. 그저 천사만 만나고 오거든요. 그러니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한 여인들은 필요 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던 여인들은 
둘째로 헛된 걱정을 했습니다. 3절입니다.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여인들은 그저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무덤이 가까워오자 마음에 걱정이 생겼지요. 무덤에 큰 돌이 있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그런데 여인들이 모르는 것도 있었어요. 마태복음 본문을 보면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려고 무덤을 봉인해버리고, 그 앞에 군인들로 하여금 경비하게 시켰습니다. 여인들은 그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무덤을 막아놓은 커다란 돌만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 여인들의 걱정은 헛된 것정이었습니다. 4절을 보시면, "눈을 들어 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던 여인들은 
첫째로 필요 없는 노력을 기울였고, 둘째로 필요 없는 걱정을 했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헛된 장소를 찾아왔습니다. 어디입니까? 바로 무덤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예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천사들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6절입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여인들은 예수님을 찾기 위해 헛된 장소인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한 여인들은 예수님을 찾기 위해 새벽부터 움직였지만 예수님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헛된 장소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경험한 이후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헛된 노력을 계속하고, 헛된 걱정에 사로잡혀, 결국 헛된 장소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우리 마음에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는 그 어떠한 새로운 삶도, 새로운 희망도, 새로운 변화도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사를 통하여 그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십니다. 비로서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들의 마음에 부활하신 주님을 향한 믿음이 생겼지요. 그러자 그들에게 거대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8절입니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여기에 "몹시 놀라 떨며 나와"라는 구절은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뛰쳐 나와서" 

헛된 노력으로부터, 헛된 걱정으로부터, 헛된 장소로부터 뛰쳐 나올 수 있는 힘. 그리고 내일 본문부터 시작되는 부활의 증인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이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우리 마음에 모시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여러분의 마음이 머물러있지 않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다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에 모시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헛된 노력과 헛된 걱정과 헛된 장소로부터 뛰쳐나와 새로운 삶을 향하여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절기설교 목록 (Contents)

[대림절] 시편 72편 11-17절 “만왕의 왕” 목회자로서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하다 보면, 성도님들께 함께 기도하고 싶은 기도 제목을 질문하곤 합니다. 대부분은 가족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그리

hanjin0207.tistory.com



반응형
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