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장소의 제약을 받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시간의 제약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거나, 현재 시간을 무시하고 바로 5년 뒤 혹은 10년 뒤로 앞서 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2016년을 보내고 2017년을 맞이하며, 열두 달과 365일로 구성되어 있는 2017년을 하루하루 살아가게 됩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은 우리의 한계를 명확히 해줍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난 장소가 있고 태어난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에게는 이 세상을 떠난 바로 그 시간과 그 장소 역시 주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토록 자명한 진리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마치 자기 자신은 영원히 살아가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계산하는 사람, 그래서 나 자신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분명한 한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한계를 깊이 깨달은 사람만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때 사도 요한은 이 글을 받아 읽게 될 독자들의 형편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도 요한이 염두에 두었던 사람들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들입니다. 그들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이 다스리고 있었던 소아시아라는 지역적 한계 안에 있었으며, 기독교를 박해하였던 네로와 도미티안이 로마의 황제로 앉아 있는 시간적 한계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속국인 소아시아라는 공간적 제약, 기독교를 박해하는 네로와 도니티안 시대라는 시간적 제약을 도무지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요한계시록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소개합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패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8)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 나에게도 삶의 끝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것. 그것은 절망의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자신의 모든 일이 창조주의 손 안에 있음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두려움과 경외함에 복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섭리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1]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향해 달려갈 때, 하나님은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한한 소망을 선물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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