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2020. 3. 3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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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과 불의와 약함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 

우리는 때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관념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매년 사순절을 보내고 부활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점점 무디어져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고는 있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삶에는 조금도 변화를 주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은 아닌가요? 

신약 성경을 연구하는 분들의 한결같은 주장 가운데 하나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그토록 하나님께 헌신적이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강력한 능력을 나타냈던 핵심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엠마오로 가는 두 명의 제자를 기억하고 계시잖아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하고는 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모이고, 그 가운데 성령이 임하여 초대교회의 놀라운 부흥의 현장을 만들 수 있었느냐는 거지요. 그 비결이 뭡니까? 부활의 경험이에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이 제자들을 다시 모이게 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명의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저녁 식사를 나눈 뒤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잖아요.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뜨겁게 기도할 때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셔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름 전만 하더라도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실의와 절망에 빠져서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다시 모여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을까요? 바로 부활 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제가 여러분 각자의 신앙 상태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부활의 주님을 진정 만난 사람은 그의 삶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에 열매가 있고, 그의 삶에 희망이 넘치고, 그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오늘 부활 주일에 부활의 주님을 다시금 만나시기 바랍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오늘 본문은 요셉이 자신의 아내 마리아와 예수님과 함께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들어갔다는 기록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만 열심히 읽고 묵상한다면 그다지 은혜가 되는 부분을 찾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쩌면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주보에 나와 있는 설교 제목이 어떻게 오늘 본문에서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을 갈릴리에서 보내셨다는 이 짧은 사건과 ‘부활의 능력’이라는 설교 제목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이 나사렛이라는 사실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사렛에서는 훌륭한 인물도, 위대한 역사도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렛이라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그 누구도 나사렛에서는 훌륭한 인물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사렛은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지요? 나사렛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부활의 능력이 아닙니까? 

십자가는 철저한 절망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절망적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인간의 죄악과 탐욕과 욕심의 결과는 십자가에서 보이는 죽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죄악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니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는 인간의 절망적인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멘.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어요. 그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보이는 모든 절망과 좌절과 불가능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갈릴리는 절망적인 땅입니다. 그 누구도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는 땅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우리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능력입니다. 


가불이라 불리던 땅 

이 시간, 구약 성경에서 갈릴리라는 지명과 관련된 하나의 에피소드를 기억하면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절망 가운데 희망을 주시는 부활의 능력을 나태내 보이고 있는 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다윗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윗에게는 한 가지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뭐지요? 예루살렘에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이 소원을 선지자 나단에게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나단 선지자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허락이 아니라 거절입니다. 다윗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자신의 아들인 솔로몬 시대로 연기하고, 그 대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다윗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로 갖춰 놓았습니다. 그런데 건축을 위한 자재를 준비함에 있어서 다윗에게 큰 협력자가 있었으니, 곧 두로의 왕 히람이라는 사람입니다. 

사무엘하 5장 11절과 12절 말씀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두롸 왕 히람이 아무런 힘도 없는 다윗에게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냈던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난공불락의 성 예루살렘, 당시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었는데 그 성을 함락시킵니다. 그러자 다윗의 힘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던 두로의 히람 왕이 다윗과 화친을 하기 위해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다윗과 히람 왕 사이에 화친이 성립되었습니다. 

자, 이제 시간이 흘러 다윗은 죽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 꼭 이루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 사업, 곧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착수합니다. 바로 이때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위해서는 두로 왕 히람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히람에게 사신을 보냅니다. 

열왕기상 5장 2절과 3절을 우리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이에 솔로몬이 히람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도 알거니와 내 아버지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들을 그의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5절과 6절 말씀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자리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당신은 명령을 내려 나를 위하여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어내게 하소서

내 종과 당신의 종이 함께 할 것이요

또 내가 당신의 모든 말씀대로 당신의 종의 삯을 당신에게 드리리이다

당신도 알거니와 우리 중에는 시돈 사람처럼 벌목을 잘하는 자가 없나이다

이스라엘에는 벌목을 잘하는 사람도 없고,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은 좋은 건축 자재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전 건축을 위해 도와달라는 거죠. 그랬더니 히람 왕이 대답합니다. 8절부터 보십시오. “이에 솔로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사람을 보내어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거니와 내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에 대하여는 당신이 바라시는 대로 할지라 내 종이 레바논에서 바다로 운반하겠고 내가 그것을 바다에서 뗏목으로 엮어 당신이 지정하는 곳으로 보내고 거기서 그것을 풀리니 당신은 받으시고 내 원을 이루어 나의 궁정을 위하여 음식물을 주소서 하고” 히람은 솔로몬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습니다. 대신 요구하는 것이 있었죠? 식량입니다. 계속해서 11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히람에게 그의 궁정의 음식물로 밀 이만 고르와 맑은 기름 이십 고르를 주고 해마다 그와 같이 주었더라” 솔로몬은 히람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들어주었습니다. 솔로몬과 히람 사이에 계약이 성사되었고, 그 계약을 양쪽에서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겠습니까? 

자, 솔로몬은 이렇게 해서 두로 왕 히람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두로 왕 히람이 참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두로 왕 히람에게 선물을 줍니다. 

열왕기상 9장 10절과 11절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이십 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음이라

솔로몬이 히람 왕에게 선물을 주죠? 그 선물이 뭡니까? 갈릴리 땅의 성읍 20곳입니다. 여러분, 이미 솔로몬과 히람은 계약을 맺었습니다. 히람이 성전 건축에 필요한 인력과 자재를 공급해주고, 솔로몬은 히람에게 식량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 두 사이의 계약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솔로몬이 추가로 갈릴리의 성읍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읍을 받은 히람의 반응이 전혀 의외입니다. 

열왕기상 9장 12절과 13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이르기를 내 형제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한가 하고

이름을 가불 당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느니라

여기서 성경 퀴즈, 갈릴리의 또 다른 이름이 뭡니까? 가불입니다. 그런데 가불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뭐죠? 뭐 땅이 요 모양이냐는 거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솔로몬이 굳이 갈릴리 성읍을 주지 않아도 되요. 굳이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겁니다. 그러면 왠만해서는 가불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죠. 그런데 히람 왕이 보기에 갈릴리 성읍은 웬만하지 않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가불입니다. 

저는 왜 하나님께서 이 짧은 에피소드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하였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걸까요? 혹 예수님의 출신 나사렛이 오래 전부터 가불 땅이라고 이방 사람 히람 왕에게 조롱을 당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으신 게 아닐까요? 사람들의 눈에는 가불 땅입니다. 더 이상의 희망도 없고, 불평과 불만의 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이 아닙니까? 인간의 철저한 절망, 곧 가불이라 불리는 그 땅에서 하나님의 희망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십자가라는 철저한 절망의 현장에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십니다. 


흑암에 비취는 빛 

우리 끝으로 마태복음으로 돌아와서 마태복음 4장 15절과 16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어디입니까? 갈릴리여!! 그곳은 흑암의 땅입니다. 사망과 그늘의 땅입니다. 그런데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큰 빛이 비췹니다. 사망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큰 빛이 임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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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