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2020. 3. 30. 07:11

코로나19의 상황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 가운데 2020년 부활절은 많은 교회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부활절 예배 설교 원고를 작성하였습니다. 



2020년 부활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복음의 메시지는 큰 기쁨의 소식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의 대유행이 되어(pandemic) 인류를 위협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종식되지 않았고 여전히 많은 교회에서 성도들이 함께 어울려 예배하는 기쁨을 나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2020년의 부활절을 맞이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참으로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기쁨과 슬픔이 서로 섞일 수 없는 감정인 줄 알았습니다. 기쁨이 넘치면 슬픔이 사라지고, 슬픔이 압도하면 기쁨이 물러가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조금 살다보니 기쁨과 슬픔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으며, 그렇게 다양한 감정이 좁은 우리의 가슴에 공존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2020년의 부활절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의 심정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두려움과 큰 기쁨 

인류 역사에 처음으로 찾아온 부활절 새벽.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안치되신 무덤을 다시 살펴보기 위하여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지요. 갑자기 큰 지진으로 땅이 흔들렸습니다. 그들이 딛고 서 있던 기초가 흔들리니 그들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지요.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을 막아두었던 거대한 돌을 옮겼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이 장면을 함께 목격하였던 로마 군대의 경비병들도 큰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지키던 자들이 [천사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4절)고 묘사합니다. 땅이 흔들리는 지진에 무장을 하고 있던 군인들의 마음까지도 흔들렸으니, 그 동일한 장면을 바라보는 연약한 여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더 떨리고 두려웠겠습니까? 

여인들이 얼마나 큰 두려움에 압도되었는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첫 마디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5절) 그리고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해 줍니다.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6절)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가장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사를 통해 가장 기쁜 소식, 무덤을 살펴보기 위해 집을 나설 때부터 가장 기다렸던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의 마음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한순간에 기쁨의 감정으로 바뀌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은 그들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8절) 

8절의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할 수록, 이 구절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첫 번째 부활절을 맞이하는 여인들의 마음이 2020년 부활절을 맞이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비춰줍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는 지금,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그 소식만큼 기쁜 소식이 없으며 부활의 그 소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떠한 현실의 아픔 속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는 여전히 큰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종식되지 않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 앞에 질병에 대한 걱정, 교회에 대한 걱정, 생계에 대한 걱정 등 다양한 걱정과 불안 두려움의 감정이 뒤섞여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 놀라운 복음의 소식을 듣고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다시금 기쁨의 부활절을 맞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마음에는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고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지어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그 누구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천사로부터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 누구보다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의 사도"가 되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특권도 그 마음에 깊이 뿌리 잡은 두려움, 곧 걱정과 근심을 온전히 물리치지 못하고 있을 바로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찾아가십니다. 오늘 본문 9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천사들은 분명히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7절). 이 말씀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천사의 음성을 들었던 여인들도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만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들에게 친히 하신 말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10절). 그런데 예수님은 굳이 갈릴리라는 약속 장소가 아니었던 바로 여기, 여인들이 큰 기쁨과 함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바로 이곳으로 찾아오셔서 여인들을 만나주셨던 것이죠. 우리는 그 이유를 충분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큰 기쁨과 더불어 두려움과 걱정과 근심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비록, 예수님과의 약속 장소인 갈릴리가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들의 마음을 다 아시고 분주하게 달려가는 그들의 앞에 나타나 친히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혹, 부활절을 맞이하며 부활의 기쁜 소식을 믿지만 여전히 여러분의 마음에 두려움이 자리잡고 계십니까? 부활절은 되었지만 여전히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한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근심하고 걱정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니 주님께서 오늘 나에게 부활의 기쁨을 충만하게 베풀어주시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지는 않으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활절을 맞이하는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사모한다면, 부활의 은총을 간절히 원한다면,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처소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경배한다면 그 옛날 분주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여인들을 찾아가셨던 주님께서 오늘 우리도 찾아와 만나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지어다." 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의 "평안하냐"라고 번역한 헬라어 단어는 평안을 기원하는 인사말로 그 의미를 풀어 설명하면,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지어다"가 됩니다. 비록 우리의 마음에 부활의 기쁨과 함께 두려움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을 지라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날 새벽 주님을 찾아 나섰던 마리아처럼 여러분도 부활의 주님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이 계신 바로 그 자리에 친히 찾아가셔서 여러분의 복잡한 마음을 향하여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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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