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인문학2020. 5. 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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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꿈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비전(Vision)과 야망(Ambition)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과 야망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적인 차이는 그 안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비전은 우리말로 사명이다. 사명의 사(使)자는 심부름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심부름인가? 하나님의 심부름이다. 다시 말해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부름을 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사명이나 비전의 시작점은 하나님이다. 그러나 야망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야망의 시작점에는 내가 있을 뿐이다. 

요셉의 시대에 야곱의 가정이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에 거주한지 약 430년이 지났고, 어느덧 야곱의 가족은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민족을 이루었다.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옮기는 작업을 착수하신다. 이 일에 쓰임 받은 사람이 바로 모세다. 한 마디로 모세가 하나님께서 받은 사명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하라.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단지 이스라엘 민족에게 좋은 땅을 주시는 데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집트 제국에서 이끌어 낸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끄시기 전, 시내산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 되는 것이 모세와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참된 비전이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비전을 선포하신 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조목조목 알려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모세의 율법이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구덩이를 팠다. 그런데 그 구덩이에 뚜껑을 잘 만들어 덮어두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소나 나귀가 지나가다가 미처 구덩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빠졌다고 하자. 이러한 경우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구덩이를 판 사람이 배상을 해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의 소가 다른 짐승을 받는 버릇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주인은 사전에 소를 단속해야 한다. 만일 그 소가 다른 짐승을 받아 죽였다면 주인은 이를 보상해 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만한 여지가 있다면 내가 먼저 예방하는 것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의 삶이다. 

어떤 사람이 밭에 곡식을 심어 1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가을이 되어 그는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풍성한 수확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온통 풍성한 곡식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밭에서 곡식을 수확할 때 밭의 모퉁이에서 자란 곡식과 떨어진 이삭을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난한 사람과 그 지역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자연스러운 나눔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내가 노력하여 정당하게 얻은 소득이다. 그러나 소득의 전부를 내 것으로 취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과 지나가는 나그네를 위해 내어 놓는 것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의 삶이다. 

율법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고 짐승을 잡아먹는 것을 금지한다.(레 17:3-4)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자신이 키우는 가축을 잡아먹고 싶으면 먼저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한다. 특별히 “화목제”라는 방식을 통해 제사를 드리면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닌 일반 백성도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레 3장 참고) 
어떤 부자(富者)가 소고기가 먹고 싶었다고 하자. 그래서 소를 한 마리 잡아서 하나님께 화목제로 드렸다. 이제 그 제물에서 피와 기름을 제거하고 구워 먹으면 된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은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 제물은 그날 당일에 다 먹으라고 명령한다. 만일 그 제물이 서원의 제물일지라도 이틀 안에 고기를 다 먹어야 한다. 
보통 소 한 마리를 잡으면 600근의 고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600근의 소고기를 한 사람, 혹은 한 가족이 하루나 이틀 사이에 다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소를 잡은 부자(富者)는 그 고기를 공짜로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 오늘이 지나면 먹을 수 없는 고기를 누가 비싼 돈을 주고 사겠는가? 자신에게 소를 잡을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또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누는 것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의 삶이다. 

A라는 사람은 재력가이다. 그런데 B라는 사람은 재물도 권력도 없다. 만일 B라는 사람이 너무 화가 나서 A라는 사람을 쳤는데, 그만 이가 부러졌다고 하자. 아마도 B라는 사람은 오랜 시간 감옥 생활을 하든지 A라는 사람의 종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상황을 바꾸어 A라는 사람이 너무도 화가 나서 B라는 사람의 이를 부러트렸다. 이후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 아마 A라는 사람은 자신의 재력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러므로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의 이를 부러트릴 가능성이 B라는 사람이 A라는 사람의 이를 부러트릴 가능성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다른 사람의 이를 부러트린 사람은 그가 누구든 동일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것이 “이에는 이로” 갚는다는 의미다. 아무리 재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이를 부러트렸다면 그 자신의 이도 부러져야 한다. 만일 이 율법이 철저하게 지켜진다면 재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함부로 다른 사람을 때리지 못할 것이다. 그 모든 폭력을 고스란히 자신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재력이 있고 권력이 있다고 힘없는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의 삶이다. 

하나님의 비전은 크고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아니다.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하나님과 이웃에게 감사하는 것, 힘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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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