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인문학2020. 5. 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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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꿈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비전(Vision)과 야망(Ambition)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과 야망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적인 차이는 그 안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비전은 우리말로 사명이다. 사명의 사(使)자는 심부름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심부름인가? 하나님의 심부름이다. 다시 말해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부름을 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사명이나 비전의 시작점은 하나님이다. 그러나 야망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야망의 시작점에는 내가 있을 뿐이다. 


시편 34편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블레셋으로 도망하였다.(삼상 21장 참고) 그런데 다윗이 얼마 전 전쟁터에서 죽였던 골리앗이 바로 블레셋 장군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이 골리앗을 이겨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던 것처럼, 블레셋에서는 다윗이 블렉리스트 1호였던 것이다. 이제야 사태를 파악한 다윗은 살아남기 위해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려야 했다.(삼상 21:13) 시편 34편은 다윗이 생존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포기했던 이 장면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선언한다.(10절) 이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비록 살기 위해 미친 척까지 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포기해야 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시편 54편 “십 사람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가 있는 곳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던 때에” 
이번에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십 황무지에 숨었을 때다. 십 사람들이 다윗이 그곳에 이른 것을 알고 사울에게 밀고한다.(삼상 23장 참고) 그들은 왜 다윗의 위치를 사울에게 알렸을까? 얼마 전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으로 가는 길에 아히멜렉 제사장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이 사실이 사울에게 알려지자, 그는 가차 없이 아히멜렉 제사장과 놉의 모든 제사장들을 죽여 버린다.(삼상 22장) 이 사실이 온 이스라엘에 퍼진 것은 물론이요, 지금 십 사람들 역시 다윗을 보고도 그 사실을 사울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윗은 이제 사울 왕의 눈만 피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의 눈도 피해야 할 위기에서 하나님을 “나를 돕는 분”으로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분”으로 고백한다.(시 54:4)  

시편 57편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사울의 추격은 계속되고, 다윗은 피하고 피하여 결국 굴속에 들어간다.(삼상 24장 참고) 사울은 다윗이 그곳에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발을 가리기 위해 굴속으로 들어온다. 이때, 다윗의 신하들은 사울을 죽여 버리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난리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세워 왕으로 삼으셨다는 이유로 그를 죽이지 않는다. 이때를 배경으로 하는 시편 57편에는 다윗의 꿈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사울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그의 꿈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는 것이 그의 진정한 꿈이었다. 이 꿈을 위해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울 왕을 죽일 수 없었다. 

시편 51편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후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였다.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영토를 회복하는 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는 일, 그곳으로 하나님의 성막을 옮기는 일, 사울의 남은 가족을 돌보는 일 등이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다윗이 그만 실수를 범하고 만다.(삼하 11-12장 참고) 다윗이 젊은 시절 온갖 위험 속에서도 바르고 정직한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런데 다윗에게 평안한 때가 찾아오자,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조금씩 멀리하였고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때 다윗이 철저히 경험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는 경험, 성령을 거두시는 경험이었다. 

시편 3편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다윗의 인생 말년에 있었던 사건이다.(삼하 15-18장 참고) 다윗이 젊었을 때 당했던 고난은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고히 사울에게 죽음의 위협을 느껴야 했고, 하나님은 무고히 당하는 고통을 통해서 그를 훈련시키셨다. 그런데 지금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당하는 고통은 그 자신의 허물, 곧 밧세바를 취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죄의 대가였다.(삼하 12:10-11) 다윗은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할 때, 자신의 죄로 인한 그 상황을 달게 받는다. 그는 밤에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신다는 사실로 알고 감사하고 있다.(시 3:5) 인생 말년,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여전히 붙잡고 계시다는 사실이었다. 

시편 18편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다윗은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범한 목동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양을 돌보던 일,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들었을 때의 격분, 그리고 그와의 한판, 계속되는 사울의 위협과 그때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 결국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자신의 삶. 이 모든 순간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상징물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시편 18편은 사무엘하 22장에서도 대동소이하게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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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