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인문학2020. 5. 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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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꿈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비전(vision)과 야망(ambition)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과 야망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적인 차이는 그 안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느냐의 문제다. 비전은 우리말로 사명이다. 사명의 사(使)자는 심부름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심부름인가? 하나님의 심부름이다. 다시 말해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부름을 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사명이나 비전의 시작점은 하나님이다. 그러나 야망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 야망의 시작점에는 내가 있을 뿐이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주한다.(창 12:1-4) 아브라함이 태어나 자란 지역은 우르다. 우르를 출발하여 하란에 이르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다시 가나안으로 이동했다. 자, 그렇다면 우르, 하란 그리고 가나안이 어떠한 지역이었는지 살펴보자.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를 기억하는가? 역사가들은 황하 강 유역의 황하 문명, 인더스 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나일 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 그리고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라고 부른다. 당시, 최첨단의 문명이 일어난 곳이 바로 이 네 지역이라는 의미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 시대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자란 ‘우르’와 잠시 자리를 옮겼던 ‘하란’은 모두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속했다. 한 마디로 아브라함은 75세까지 세계 최고의 문화적 혜택을 누렸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주하였던 가나안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를 벗어난 지역이었다. 아브라함은 번화한 대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한 것이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는 모두 주변에 큰 강이 있었다. 강물의 범람을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결국 문명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우르와 하란에 살았던 아브라함은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가나안에 도착하자 기근을 경험한다.(창 12:3)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로 아브라함을 보내셨을까? 여기서 두 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비전의 내용이다.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 이것이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꿈이었다. 아브라함만 부자가 되고 최고의 문명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것이 아브라함을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이다. 이 비전을 위해 아브라함은 모든 문화적 혜택을 뒤로하고 시골 동네로 떠나야 했다. 

둘째, 그렇다면 왜 도시가 아닌 시골인가?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삶의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민족이 참된 그리스도인 되어야 한다. 먼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복이 넘쳐나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은 초일류 문명 사회인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그곳에 기술문명이 있고, 편안한 삶은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삶은 없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 바로 그 시골 동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갈 것을 명령하신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도시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우리의 꿈이 비전이 아닌 야망이라면 우리는 도시로 가야하고 일류 대학에 어떻게 해서든 들어가야 하며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장과 직위를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전은 도시에서만, 일류 기업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어디서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비전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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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