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2020. 6. 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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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여기에는 두 사람의 공통점이 등장합니다. 곧 두 사람 모두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두 사람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간 때는 공적인 기도의 시간이 아닙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 시간 외에 개인적으로 기도하기 위해 성전을 찾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한결같이 기도를 자신의 하루 일과 중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 곧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론을 잘 알고 있지요. 두 사람 모두 성전에서 기도하였지만, 두 사람의 기도가 모두 하나님께 열랍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동일한 성전에서 기도하였던 두 사람의 기도가 전혀 다른 결과에 다다르게 한 것입니까? 



바리새인의 기도 

먼저 바리새인의 기도입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9절) 

바리새인의 기도, 그 첫번째 특징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만하면 됐지 !”라는 생각입니다. 신앙생활을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마음이 일어나기 어렵겠지요. 그러나 신앙생활의 경륜이 늘어나고,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유혹이 찾아옵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자신의 완벽하다고, 자신은 의롭다고, 자신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했고,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칭찬하면 그의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도 계속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참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참 아릅답게 신앙생활을 한다고 옆에서 칭찬을 합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우쭐해지는 마음이 들면서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됩니다. 

“이만하면 됐지!” 

바리새인의 기도, 그 첫번째 특징은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곧, “이만하면 됐지”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사람은 다음 단계로 그의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돌립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9b절) 나는 이정도로 신앙생활을 하고, 나는 이 정도로 예배생활, 기도생활, 말씀생활, 헌금생활을 하는데 저 사람은 왜 그렇게 못하는가? 주변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비판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 계속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토색, 불의, 간음을 행하는 사람들이 잘못을 행하지 않았다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잘못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오류는 자신이 의롭다고 믿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자신을 가꾸려는 노력보다 다른 사람을 향해 비판하고 비난하려는 마음이 더욱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눈에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면이, 다른 사람의 잘못하는 모습만이 여러분의 눈에 들어온다면 여러분의 마음에 ‘이미 나는 이제 됐다’, ‘이만하면 됐다’는 교만의 마음이 들어와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바리새인의 기도, 그 첫번째 특징은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나아가 두번째 특징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공격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 기도의 특징, 그 마지막 세번째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보다는 자신이 행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만 하면 됐지”라는 생각이 가득했어요. 그러니 더 이상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실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미 나는 의롭고, 이미 나는 거룩한 삶을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바리새인의 기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보이지 않고 자기 자신의 행동만 등장합니다. 11절부터 다시 보십시오. “나는” 토색하지 않았고, “나는” 불의하지 않았고, “나는”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12절도 보십시오. “내가”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가”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모두가 “내가”한 일이지 도무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등장하지 않아요. 


세리의 기도 

자, 바리새인 기도의 세 가지 특징을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자신을 의롭게 여깁니다. 그러자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지 못한 채 상대방의 행동을 비판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일하심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행한 것만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세리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세리의 기도를 바리새인의 기도와 비교해보니 바리새인 기도의 세 가지 특징에 있어서 전혀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더라”

바리새인은 자신을 의롭다고 여겼지요. 그러나 세리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잘 압니다. 자신은 죄인입니다. 바리새인은 “이만하면 됐다”고 말하지만, 세리는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13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래서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은 의인이 아니라 자신은 죄인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 그 두번째 특징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라보며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리의 기도를 보십시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누구의 가슴을 칠까요? ‘자기 자신의’ 가슴을 치며”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그 다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것, 다른 사람의 죄를 따지고 있을 여유가 없어요. 나의 가슴을 치며 내가 죄인이라고 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바리새인은 자신이 의롭다고 여겼기에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행하는 일만 이야기해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신의 행동에 내세울 것,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만을 기대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무엇이라고 기도합니까?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행한 것 없고, 내가 자랑할 것 없고,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으니, 하나님이여 하나님께서 행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이여,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입니까? 세리의 기도입니까? 

물론 처음부터 바리새인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처음에는 세리와 같이 하나님의 긍휼하심만을 간구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신앙생활이 익숙해지다보면, 어느세 조금씩 조금씩 바리새인의 자리로 이동하는 우리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때마다 다시금 우리의 마음을 쳐서 내가 여전히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만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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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