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학2020. 6. 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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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의 설교학은 그의 저서 Between Two Worlds: the Challenge of Preaching Today(London: Eerdmans Publishing, 1982)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는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설교자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공유하기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존 스토트는 자신의 설교학 제목을 <두 세계 사이에서>(Between Two Worlds)라고 붙였다. 설교는 두 세계 사이에서 양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제4장 "교량으로서의 설교"(Preaching as Bridge Building)은 이 책의 핵심 주제를 다룬다고 하겠다. 


설교 _ 두 세계를 잇는 교량 

존 스토트는 먼저 설교자가 주목해야 하는 두 세계를 언급한다. 곧, 성경의 세계(biblical worlds)와 현대 사회(modern worlds)이다. 성경의 세계와 현대 사회는 지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큰 간격이 벌어져있다. 그래서 성경의 세계와 현대 사회는 자칫 상호 연관성을 잃어버린 채 서로 무관심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설교단에서 이루어진다면, 회중의 신앙생활은 왜곡된다. 성경의 메시지는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지 못하거나,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성경의 가치관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방식을 따라갈 수도 있다. 성경의 세계와 현대 사회의 괴리는 일차적으로 설교자의 책임이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가 성경으로부터 흘러나와 현대인들의 삶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Stott 1982, 102) 

성경의 핵심 메시지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을 신학에서는 '상황화'(contextualization), 혹은 '해석'(interpretation)이라는 용어로 주로 표현한다. 그러나 존 스토트는 상황화나 해석보다는 '성육신'(incarnation)이 자신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성육신이 기독교적 소통의 모델이다." (Stott 1982, 112) 그런데 교량을 놓는 과정으로 설교를 정의한 존 스토트는 흥미로운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곧 '접지'(earthing)다. 스토트는 접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데, 하늘의 말씀이 이 땅에 뿌리내리는 이미지를 그리는 듯하다. 

두 개의 세계를 언급하면서도, 존 스토트는 복음주의자답게 설교가 일차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영역은 성경의 세계라고 분명히 말한다. (Stott 1982, 103) 그에게는 설교라는 교량이 성경에서 출발하여 현대 사회로 이어지는 듯하다. 이는 마치 현대 사회는 문제가 드러나는 장소이고, 성경의 세계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장소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성경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현대 사회로 이어지는 한 방향만으로는 두 세계에 다리를 놓는 설교의 역할을 정확히 묘사하기 어렵다. 설교단은 성경의 세계와 현대 사회가 함께 만나 지평의 융합(confusion of horizons)이 일어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복음과 함께 기독교 윤리를 설교하라 

존 스토트는 설교가 성경의 세계와 현실 세계에 모두 뿌리를 내리기 위한 방법으로 복음에 충실한 설교를 주장한다. 복음은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이지만(성경의 세계), 동시에 현대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기 때문이다(현대 사회).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현실 속에서 초월을 경험하게 한다." (Stott 1982, 115) 복음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를 넘어 '성경이 그려주는 하나님의 선한 행위'라고 확대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복음을 받아들이더라도, 복음에 충실한 설교가 성경의 세계와 현대 사회에 둘 다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성경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에 머물 수 없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존 스토트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복음 설교와 함께 기독교 윤리도 강조한다. 선한 행동은 복음의 당연한 결과지만, 가르치고 배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선한 행위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Stott 1982, 118) 그러므로 복음에 충실한 설교만으로도 현실적 적용이 가능하지만, 기독교 윤리도 강단에서 반드시 설교해야 한다. 존 스토트는 설교단에서 선포해야 할 기독교 윤리를 개인적, 교회적, 가정적, 그리고 사회적 측면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존 스토트가 교회적 측면에서 설명하는 기독교 윤리 가운데 오늘날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여전히 귀 담아 들을 내용이 있다. 교회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기독교 윤리는 성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다. (Stott 1982, 118) 교회는 복음에 근거하여 대사회적 역할을 반드시 감당해야 하지만, 교회적 측면에서 일차적인 과제는 성도들 사이의 관계다.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교우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가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이것은 설교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하며, 설교자는 회중에게 정확한 가이드를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성숙 

존 스토트는 교량으로서의 설교를 서술하면서 설교단과 사회적 문제의 관계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영국의 노예 무역을 금지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윌리엄 웰버포스(William Wilberforce) 등의 예를 거론하며 존 스토트는 설교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영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존 스토트는 매우 중요한 개념 하나를 소환하는데 '기독교 정신'(christian mind)이다. 여기서 기독교 정신이란 해리 블레마이어스(Harry Blamires)가 제시한 개념으로 성경적 진리와 기독교적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현대의 다양한 이슈를 바라보며 그에 대한 기독교적 결론을 도출하는 정신을 말한다. 존 스토트는 블레마이어스와 함께 당시의 기독교 정신이 너무도 약해져 성도와 교회가 세속적 조류에 표류하고 있다고 한탄하였다. (Stott 1982, 128) 

성도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함양하는 것은 전적으로 설교자의 책임이다. 물론, 기독교 정신이 모든 사안에 대한 분명한 기독교적 해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또한 설교자가 성도들이 직면한 모든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대답을 내어 놓을 수도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분별력이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분별력이 자라지 못하였기에 부모가 대신 판단을 내려준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이라면 나름대로의 분변력을 가지고 자신에게 찾아온 과제를 분석하여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 신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설교자는 성도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함양하고 성도들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나름대로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존 스토트가 제시하는 성숙한 설교자와 성도의 모습이요, 기독교 정신에 따라 분별력을 갖춘 성도를 양성하는 것이 '교량 건설자'인 설교자의 역할이다.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1 _ 설교의 영광: 역사적 개요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2 _ 현대 교회의 설교 위기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3 _ 설교의 신학적 근거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4 - 교량으로서의 설교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5 - 설교자의 연구(공부)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6 _ 설교 준비 과정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7 - 진심 그리고 열정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8 - 용기 그리고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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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