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학2020. 7. 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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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의 설교학은 그의 저서 Between Two Worlds: the Challenge of Preaching Today(London: Eerdmans Publishing, 1982)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는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설교자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공유하기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존 스토트가 마지막으로 다루는 설교의 덕목은 용기와 겸손이다. 설교자는 강단에서 용기가 필요하고 동시에 겸손이 필요하다. 언듯 용기와 겸손은 상충되어 보이지만, 이 두 가지는 설교자가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핵심적 자질이다. 

 

설교자의 용기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환영하는 것이 아니기에 설교자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말씀 사역에 있어 용기라는 덕목은 구약 시대 선지자들의 전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앞에 홀로 맞섰던 엘리야의 용기, 다윗 왕에게 그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였던 나단의 용기,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을 대항하였던 예레미야의 용기 등 구약의 예언자들은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다. 

설교자의 용기는 설교의 목적과 연관되어 있다. 복음은 먼저 사람들의 교만을 무너트린다.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던 이유는 '헛된 희망'(vain hopes)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복음은 인간의 교만을 공격하는데 이를 성실하게 선포하는 설교자는 누구든 사람들의 저항을 피할 수 없다(Stott 1982, 241). 그러므로 설교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헛된 희망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흔들어 깨우는 데 있다. 아울러, 복음은 자신의 죄성으로 절망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의를 선포한다. 이 역시 설교의 중요한 목적으로 설교자는 복음으로 위로해야 한다. 채드 월시(Chad Walsh)는 이 두 가지 목적을 이렇게 종합하였다. "설교자의 진정한 역할은 편안한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요, 불안한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Stott 1982, 246) 존 스토트는 성경 인물의 별명으로 이 두 가지를 묘사하는데, 하나는 '우뢰의 아들'을 뜻하는 보아너게이고 다른 하나는 '위로의 아들'을 뜻하는 바나바다. "모든 설교자는 (용기를 가지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보아너게이면서 동시에 (관용의 마음으로 사람을 위로하는) 바나바가 되어야 한다."(Stott 1982, 246) 

설교자가 용기를 가지고 성경의 핵심 주제들을 설교하는 방법으로 존 스토트는 '순차적 설교'(존 스토트의 용어는 Systematic Exposition)을 제안한다. 곧, 성경의 한 책이나 일부를 순차적으로 설교하는 방법이다. 이는 존 크리소스톰을 비롯하여 많은 종교개혁가들이 선호하였던 방식이다. 존 스토트가 순차적 설교를 추천하는 이유는 설교자의 입장에서 본문이 다루는 주제를 용기 있게 선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회중의 입장에서 설교자가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특정 본문과 주제를 선정했다고 의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존 스토트는 마태복음 5장을 본문으로 이혼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던 경험을 언급한다. 스토트는 그때 순차적으로 산상보훈을 설교하였기에 회중들에게 매우 민감한 주제를 용기 있게 설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설교자의 겸손 

존 스토트는 설교단이 교만해지기 매우 쉬운 장소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설교자를 우러러보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의심의 여지 없이 설교자가 빠질 수 있는 최고의 위험 위소다."(Stott 1982, 251) "설교단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높이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의 영광을 추구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Stott 1982, 252) 

존 스토트는 설교자의 겸손을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설교자는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구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지도 빼지도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바리새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면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중요한 요소를 삭제했다.(Stott 1982, 254)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든 삭제하든 자신의 편의대로 편집하는 행위는 설교자의 교만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역할은 말씀의 편집자가 아니라 말씀의 청지기다. "기독교 설교자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어 성경이 담고 있는 진리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 신실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 (Stott 1982, 254) 

둘째는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존 스트토는 설교하는 이유를 질문한다. 왜 우리는 설교하는가? "너무도 자주 우리의 동기가 이기적이라는 사실이 나는 두렵다." (Stott 1982, 255) 설교는 하나의 매개체다. 회중은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랑이 되시고 성도들이 신부가 된다고 비유하는데 이 비유에 따르면 설교의 역할은 중매다. 그러므로 성도가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때 설교자는 그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 또한 설교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다. 지휘자의 지휘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사람은 음악을 듣기 위해 콘서트홀에 가기 때문이다. 지휘자가 사람들을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인도하듯, 설교자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목적을 이루면 그 자리에서 비켜주어야 한다. 설교의 영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성령의 능력이다. 설교자는 성령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왜 설교 현장에 성령의 역사가 그토록 희귀한가? 존 스토트는 스스로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 중요한 이유가 우리의 교만이라고 나는 강력히 의심한다."(Stott 1982, 259) 성령의 능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의 약함이 드러나야 한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기 때문이다(고후 12:10). 존 스토트는 설교자의 약함은 육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는 정신적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설교자는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 강한 능력을 펼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비록 인간적인 약점이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았을지라도 말이다.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1 _ 설교의 영광: 역사적 개요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2 _ 현대 교회의 설교 위기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3 _ 설교의 신학적 근거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4 - 교량으로서의 설교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5 - 설교자의 연구(공부)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6 _ 설교 준비 과정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7 - 진심 그리고 열정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8 - 용기 그리고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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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